8500억 vs 친한 친구

2022. 7. 4. 18:57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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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어려울지 모른다. 반면,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매우 쉬운 고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쉽고 어렵고를 떠나, 숙고하는 타입이라, 선택하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직관적으로는 전자를 택하겠지만,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먼저, 왜 하필 애매한 수인 8500억인지에 대한 불필요한 의문은 차치하기로 하겠다.

친한 친구는 8500억 만큼의 가치를 나에게 제공하는가? 더쿠 댓글에, 가족이니 반려동물이니 들먹이면서 1조 원을 줘도 바꾸지 못하는 소중한 존재라며 후자를 택하는 이들이 더러 보인다.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8500억 원이라는 돈은 내 개인적 감정, 소중한 관계성, 친구의 존재의 가치를 상회하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이 아닌 친구가 나에게 어떠한 유·무형의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8500억 원어치 만큼의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8500억 원이 없다면 불행할 것이 확실하고 친구가 있더라도 그 불행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면, 그 친구는 내 인생의 문제 해결에 있어 돈보다 도움이 덜 된다고 보아야 한다. 8500만 원의 빚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자. 웬만하게 저축, 투자를 통하더라도 그 빚을 상환하기까지 수 년이 걸릴 것이 예상된다고 하자. 빚의 청산이 있기까지 채무자인 당신은 하루하루를 매우 힘겹게 살아내야 한다. 그 경우에 당신은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친구를 만나서 소주로 채무에 대한 심적 부담을 일시적으로나마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날 숙취와 함께 맞을 허탈감과 절망감을 당신은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는가? 친구는 당신의 빚을 대신 갚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친구가 그 짐을 함께 져 준다고 해도, 그것은 친구에게 못할 짓이다. 따라서 전자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내 빚이 청산되는 대신 친구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소거된다는 것은 내 잘못 때문에 친구가 손해를 보는 것이니, 전자의 선택은 친구에게 잘못을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전자를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 선택은 나를 위하면서 동시에 친구를 위하지 않는 선택이다. 결국 이는 둘의 이해의 가치 비교를 넘어, 남에게 해악을 가하는 선택을 할 것이냐를 묻는 도덕 문제이다. 전자가 나에게 압도적인 가치를 선사하고, 그 가치가 친구의 희생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만으로는 후자의 선택을 배제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건전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전자의 가치가 후자의 가치를 압도한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무고한 희생자도 생산해선 안 된다는 대원칙을 전제한다면 무턱대고 합리주의적 기준으로만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8500억이 무수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로 전자의 선택이 정당화되어선 안 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선택에 의해 희생될 자는 희생할 필요가 없었던 자이고, 전자의 선택으로 인해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는 자들은 그 선택이 아니었다면 본래 손해 보았을 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제는 결과주의자들에 의해 처참히 무산된다. 어쨌든 전자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후자의 선택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라짐이 죽음을 함축한다면, 내 선택은 친구라는 존재의 소멸을 불러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돈을 선택할 것 같기는 하다. 8500억으로는 그 친구만이 제공할 수 있었던 가치를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8500억은 친구에 대한 죄책감이라든가, 도덕률에 대한 내 신념의 배반도 일거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