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4. 18:55ㆍ생각
https://www.youtube.com/watch?v=h5YOB6HY-x4&list=WL&index=3
(왜 하나같이 다 손을 모으고 있지?)
표준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위 영상을 보고 나면, 개인적인 경험·믿음에 의존한 표준 추측의 신뢰도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연봉이 5천만 원이고 주변 친구들의 수준도 그와 유사하다면, 전체에 대한 표준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즉,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조건이 자신의 조건과 유사하다면 그러한 개인적이고 편중된 경험에 따라 자의적으로 표준을 설정한다. 왜 인간은 이토록 전체의 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걸까? 표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왜 대부분 자기를 전체의 표준으로 설정하는 걸까. 애초에 스스로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출연한 걸까(표본 편향)?
필자는 예전부터 '나는 대한민국 20대 남자 전체 표준 이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는 나를 구성하는 여러 요건을 총체적으로 종합하여 내린 임의적·잠정적 결론이다. 내가 나를 표준보다 밑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여러 경험과 준 통계적 감각을 기반으로 한다. 룩(Look)이나 사회적 지위는 표준 혹은 평균 정도라고 여기지만, 직업, 자산, 학력, 연애 횟수 따위는 표준보다 많이 밑이라고 보는 바이다. 외형은 전형적인 한남콘 상에 평균 키, 사회적 지위의 경우 애초에 20대 남성 대부분이 비기득권자이므로 논할 바 없고, 직업은 성장 가능성이 저조한 최저 급여 단순 노무직, 학력은 고졸 그리고 자산은 채무 없음 정도이며 연애 횟수는 1회이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에 대한 평가는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 이유는 서로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평가하는 내 여자친구의 관점은 그가 살아온 환경과 신념, 가치관 등,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고 나에 대한 자평 역시 내 개인적인 믿음에 따른다. 그래서 전자와 후자의 평가가 다소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한 물리적인 시각의 차이에 의하기도 한다. 일단 나는 나를 나 아닌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내 면상이나 체형을 접하고, 녹음을 통해 내 목소리의 낯섦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직접적인 객관적 관찰이라고 보긴 어렵다.
돌아와서, 일단 영상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고 여겨져야 한다. 해당 영상 출연자가 전체 표본에서 무작위로 추출되지 않는 한(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표본이 너무 적어 편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출연자 각각은 표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위 영상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진짜 표준이라고 할 만한 자가 대체로 관종적인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즉 미디어에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면 위 출연진들은 그 점에서 아웃라이어다. 만약 객관적으로 전체 표준인 부류가 주관적인 관점에서 표준보다 낮게 자평하여 영상에 출연하길 꺼리고, 객관적으로 전체 표준에서 벗어난 자들이 자신을 표준이라고 믿고 하필 그게 영상 출연자들이라면 위 영상의 정보는 편향되었다. 영상을 보면 한 명은 기혼자이고 나머지는 미혼자이다. 대한민국 20대 남성 미혼율은 95%에 달한다. 마침 10명 중 1명이 기혼이라 우연히 그 통계에 얼추 들어맞았다. 연봉이나 자산, 학력 역시 10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 천차만별이지만 비율적으로는 전체를 미약하게나마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빚이 없기만 하면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5천 이상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고졸이 있는 반면 4년제 명문대졸인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 모두 동일하게, 자기 조건 정도면 평균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이는, 자기의 삶이 평범하다고 믿기 때문만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믿음 이외의 것이 있다. 바로 환경이다. 저들 중 누군가는 딱히 큰 행복이나 불행도, 큰 부와 권력이나 빈곤함도 없이 무난 무난하게 사회적으로 정석이라고 불리는 루트를 밟은 우리네 모습을 대변한다. 연애를 한두 번 한 사람은 스스로를 표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일고여덟 번을 한 사람도 표준보다 조금 높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위 출연자들 대부분은 30살까지 표준 연애 횟수를 4~5회 정도라고 보고 있다. 연애 경험이 전무한 경우부터 10회 이상의 극단적인 경우까지 포함하여 전체 통계를 냈을 때, 극단값은 현저히 낮은 수치를 나타낼 것이고, 중간·표준에 대부분의 수치 분포가 이루어질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전체 시스템계로 보자면 대부분이 평균에 수렴·분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에 해당하지 못하는 아웃라이어는 대다수 표준과 일치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앰생이라고 믿는 부류가 실제로 대다수이고(객관적 표준), 스스로의 인생이 표준이라고 믿는 부류가 실제로 소수(주관적 표준(거짓 표준))를 구성한다고 가정한다면, 위 영상은 다분히 편향되었다. 왜냐하면 스스로 앰생이라고 믿는 부류가 당당하게 영상에 출연하여 스스로를 표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떠벌리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했어도 그 경험의 총체는 편향성을 극복하기에 터무니없을 만큼 적은 표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또한 주체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가변하므로 어느 평가 시점에 특정하게 성립된 믿음에 의존한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도 어려워진다. 우리는, 영상 출연자들이 본인의 인생을 전체 통계를 기준으로 표준화하지 않았다고 봐야 함이 합리적이다. 애당초, 기혼자가(물론 기혼이 표준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겠지만) 본인이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출연했다는 사실로부터 신뢰도가 떨어진다(물론 기혼 같은 부수적인 조건을 배제하고라도 스스로 평균이라고 믿었을 수 있다). 외형에서도 아웃라이어인 자가 눈에 띄는데, 그는 자신이 모아 놓은 자산이 없다는 평균 이하의 조건으로 인해 평균 이상의 외모 조건을 상쇄하여 표준이 되었다고 믿는 것일까? 우리는 영상 출연자들 개인이 믿고 있는 표준에 일희일비하고 휘둘릴 이유가 없다. 매우 주관적이고 편향된 표본에 의거한 해당 영상물을 우리는 MBTI 급 신뢰도를 가진 것으로 치부하고 재미로 소비하는 것이 낫다. 저런 삶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되,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하고 싶다면, 평가 대상의 표본을 넓히고 자칫하면 주관적이게 될 수 있는 '표준'의 기준을 엄밀히 설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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