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섹트녀의 이해 불가적 행동

2022. 7. 4. 18:59생각

위 짤은 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먼저 섹트녀 본인이 27살인 사실이 '할미'라고 자학적으로 표현할 만큼 약점이라고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섹트녀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인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짚어보자. 먼저 용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섹트'는 섹스 트위터를 의미한다. 즉, 섹스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트위터 활동을 뜻한다. '건오'는 건전한 오프라인의 준말로, 일단 오직 섹스만을 위한 만남을 지양하고, 데이트라는 명분을 통해 상대의 스펙을 재단하려는, 섹트계에서 갑 오브 갑의 권력을 가진 섹트녀들이 주로 취하는, '쉽게 몸 대주기 유보' 전략이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저 섹트녀는 저 나이 먹기까지 여러 섹트남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몸만 탐하는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섹트녀는 오직 섹스에만 관심이 있는 섹스 환장남들을 걸러내고,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더불어 성적으로도 만족을 줄 것 같은 유니콘 같은 스윗남을 물색하기 위해 '건오' 선언이라는, 자신의 하이퍼가미 본능을 충족할 효과적인 전략을 취택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계라서 얼굴 사진이 있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섹트녀가 7의 여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보정을 감안하더라도) 외모만으로 일상적으로 남자를 만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자는 관심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어떤 잘난 남자가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느냐에 휘둘리는데, 작금의 sns가 일반 여성들의 가치를 대폭 상승시켰다는 점에서 섹트녀는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효과적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남자는 관심을 지불하고 여자의 성을 사고, 여자는 자신의 성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관심을 수령한다. 이러한 현상은 오프라인보다 sns 내에서 더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서로의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도 어폐가 있기는 하다. 일상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이든 온라인상에서의 계획된 만남이든, 이성의 만남에 성적 교환이 전제되지 않는다고 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그의 마누라가 플라토닉 러브의 표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한 케이스가 현실에 얼마나 될까 싶다. 상대로부터 성적 욕망(편의상 이성애로 한하자)이 일지 않는다면, 굳이 불편함을 감내하면서까지 이성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혹자는 여자(남자)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특성이 부재하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성적인 교합이 없거나 상대에게 성적 욕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성을 만날 이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성 애인에게 섹스를 원하지 않거나 앞으로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싶다. 말이 샜네, 돌아오자.

앞에서 건오는 건전한 오프라인 만남이라고 했다. 여기서 건전하다는 의미가 섹스를 함축하는지 우리는 결정 내리기가 까다롭다. 건오의 건전성 논의가 제일 시급한 부분이다. 건오가 모든 구합 행위를 불건전한 것으로 여기는지(좁은 해석), 아니면 오직 섹스만을 위한 만남만을 배제(넓은 해석)하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후자의 넓은 해석이 가장 개연적이며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섹트녀가 섹트녀이기 때문이다!(순환 논증의 오류) 즉 우리는, 섹트녀가 자신이 섹트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섹스를 위한 만남을 목적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야 한다. 건오의 건전함을 좁은 해석을 통해 받아들이면 #건오와 #섹트는 모순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좁은 의미의 건오는 모든 섹스를 지양하고, 섹트는 섹스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향성으로 나누면 모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지향은 의도나 마음먹음이지 실현이나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정의하면, 좁은 의미의 건오는 모든 섹스를 금하는 만남을 의미하고, 섹트는 섹스를 반드시 할 것을 의도한다. 여기서 섹트가 반드시 섹스가 이루어지는 경우를 지시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의도'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좁은 의미의 건오와 섹트가 모순을 일으키기 않게 하기 위해 재정의가 필요할 듯이 보인다. 헷갈리니까 좁은 의미의 건오의 뜻은 그대로 두고, 중립적인 의미를 도입하도록 하자. 즉, 중립적인 의미의 건오는 오직 섹스만 목적하지 않고 섹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의 만남을 의미한다. 이로써 건오의 건전함은 섹스를 함축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섹트하고 해서 오직 섹스만을 목적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시작은 섹스만을 목적할 수 있지만, 섹스만을 의도했다가 건전한 만남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섹트로 만난 남녀가 어떠한 의미의 '정상'적인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섹트 역시 오직 섹스만을 목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를 위해 그 주된 경향을 본디 의도라고 여기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정리하면, 건오는 오직 섹스만을 목적하지 않고 섹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의 만남이고, 섹트는 오직 섹스만을 목적하는 만남이다. 이것을 기호화해보자.

건오 : ~오직 섹스 & 섹스

섹트 : 오직 섹스

이것은 '오직 섹스'를 섹스와 애매하게 구분 지어 놓아 착오에 빠지게 만들 수 있으므로, 다듬는다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건오 : (가능성으로서의) 섹스

섹트 : (목적으로서의 ∨ 가능성으로서의) 섹스

건오(중립적인 의미의 건오)는 섹스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섹트는 섹스의 실현을 목적하므로 역시 섹스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즉, 둘은 섹스에 도달하는 지향로路는 다르나 큰 틀에서 목적지가 겹친다고 보이므로 건오와 섹트는 양립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섹트녀는 건오를 지향하면서 섹트를 지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섹트의 섹스에의 도달을 지양하는 모순적인 행위가 아니라, 섹스로만의 도달을 지양하며 섹스에의 도달은 배제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행위이다.

시간이 없어서 대략만 논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논의해 봄직한 주제인 것 같다.

ps. 27살 할미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