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7. 23:43ㆍ생각
나는 2010년 고3 6월 모의평가 언어(현재 국어) 27번 선지 ①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선 지문 한 문단만 그대로 기술하겠다.
[지문]
16세기 중반 일본에 도입된 조총은 다루는 데 특별한 무예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분이 낮은 계층인 조총 무장 보병이 주요한 전투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의 절강병법은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로,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이었다.
조선군의 전술은 절강병법을 일부 수용하면서 기병 중심에서 보병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선지]
①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다 먼저 조총을 실전에 사용했다.
이 문제의 ①번은 옳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선지의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차근차근 접근해보자. 16세기 중반에 일본에 조총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여기서는 조총이 일본에 한, 중, 일 중 가장 먼저 도입되었다고 명기되어 있지 않다. 1문단의 문장 3에서 중국의 절강병법은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이 가리키는 것은 '조총이 도입된 그 당시의 일본군'임이 확실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 콤마 다음에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이라고 언급한다. 이제 ①번을 보자.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다 먼저 조총을 '실전'에 사용했는가? 일본이 조총을 다른 국가에 비해 실전에 먼저 사용했는지는 지금까지의 문장 안의 단서로는 확실하게 유추할 수는 없다. 지문의 나머지 부분은 단서가 없어 굳이 싣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지문은 저만큼이 전부이다. 편의를 위해, 위 지문이 총 네 문장이므로 순서에 따라 번호로 호명할 것이라는 점 양지 바란다.
1.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다 먼저 조총을 도입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문장 1에서 일본이 16세기에 조총을 도입했다는 단순 사실이 적시된다. 그 후 문장 3에서 '이러한' 즉, 조총이 도입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절강병법이 도입되었다고 적시된다. 그런데 절강병법을 고안하면서 동시에 조총을 도입하였다는 언급이 없다. 즉 조총은 이미 사용 중이었으나 새로 고안된 절강병법이라는 전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총과 다른 근접전 병기를 융합하는 '새로운 전술'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이라는 명제가 '이러한 일본군에 맞서 그제서야 조총을 도입함'을 반드시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장 3의 쉼표를 기점으로 그 사이에 '그제서야', '부랴부랴', '마지못해' 따위의 시간적 후행 명시하는 지시어가 있으면 더 확실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2. 1의 입장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다 먼저 조총을 실전에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일본이 조선이나 중국보다 조총을 먼저 도입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조총을 실전에까지 먼저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문장 2의 '조총 무장 보병이 주요한 전투원으로 등장'이, 일본이 한, 중에 비해 조총을 실전에 반드시 먼저 사용했다는 뜻을 함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요한 전투원'이라는 지시어가 '이미 실전에서 조총병이 주요하다는 판단을 마쳤음'을 반드시 함축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럴 수 있다고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다.
3.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조총을 먼저 도입했을 수 있다.
문장 4만으로는 조선이 중국에 뒤져, 중국을 모방하여 조총을 도입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절강병법의 '일부'가 조총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조총이 이미 있었고 단지 전술의 일부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보다 조총을 먼저 도입하지 않고 한국이나 중국보다 조총을 실전에 먼저 사용할 수는 있다. 중국과 한국이 조총을 이미 가지고는 있지만 실전 사용은 일본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문 어디에도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다 조총을 먼저 실전에 사용했다는 확실한 언급이 없다. 문장 1의 '조총을 다루는 데'를 아무리 실전에서 다루는 것으로 생각하려 한들 끼워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고, 조총을 다루는 행위는 반드시 실전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4. 문장 3의 '대응'을 '일본의 조총 공격에 대한 응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다. 그 가능성의 실현은 '일본의 조총 선제공격'을 함축한다. 하지만 '대응'이 '이러한 일본군(조총을 도입한 일본군)'의 조총 실전 사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 일명 단순 군사적 견제의 대응이라면 조총 사용 기회를 자신들보다 먼저 일본에 넘겨주지 않을 수 있다.
5. 왜 평가원은 순서의 구분을 명확히 적시하지 않았는가?
내 생각에 평가원의 의도는 글의 순서 상 '일본 → 중국 → 조선' 순으로 조총의 '도입과 사용'을 적당히 유추하라는 요구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지문을 아무리 뒤져봐도 일본이 다른 국가보다 먼저 조총을 실전에 사용했다는 명확한 표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치명적이다. 이 문제를 논자의 의도에 적합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비의 원칙이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문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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