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7. 14:42ㆍ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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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위 영상은 남녀 피트니스 모델이 피트니스 퍼포먼스를 하필 군부대에서 위문 공연으로 했다는 것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위문 공연은 관점에 따라 잘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해당 퍼포먼스는 문제가 아니라는 쪽에 중점을 두어 주장을 개진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해당 사안을 문제시하는 관점에 따르면 잘못일 수 있고,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아닐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선제되어야 할 논의가 많이 있다.
1.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는 문제인가?
2. 해당 공연이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2.1. 의도 : 오직 의도가 문제라면, 성 상품은 성 상품으로 여겨지는 당사자의 의도에 의해 결정되는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를 성 상품이라고 해석하는 자에 의해 결정되는가?
2.2. 복장 : 오직 복장이 문제라면, 복장의 어떤 형태, 기장의 어느 지점부터 성 상품으로 결정되는가? 과연 의복의 형태가 의복 착용자를 성 상품화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일시적인가, 영구적인가? 만약 후자라면 성상품성은 복장에 귀속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비키니 착용자는 모든 경우에 성 상품화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2.3. 동작 : 오직 동작이 문제라면, 피트니스 대회에서 심사 기준에 맞는 동작을 군 위문 공연에서 동일하게 선보였고 그것이 선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면, 피트니스 대회 역시 선정적인 대회라는 말이다.
2.4. 상황 : 오직 상황이 문제라면, 군부대에서 비키니를 착용한 여성이 피트니스 동작을 선보인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군부대에서의 이 상황은 '잘못'인가? 만인에게 개방된 해수욕장의 비키니 착용녀는 선정성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여름의 해수욕장 상황은 왜 군부대의 상황에 비해 덜 선정적이어야만 하는가? 어린이가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비키니 콘테스트를 관람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어린아이에게 선정적일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하필 군부대의 남성에게 비키니를 입은 여성은 선정적으로 여겨지는가?
3. 반드시 성적 위로가 필요한가? 그리고 위문 공연자는 반드시 성욕 해소의 도구로 소비되는가? 성 위문이 그르다면 다른 위문, 가령 식 위문은 정당한가? 식 위문이 생존에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생존의 문제라면 그것은 기본이지 '위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 위문 차 특별식을 제공하는 것마저 세금 낭비라느니, 캠핑 가서 배불리냐느니 소리를 듣는 마당에 성 위문까지 해주려니 얼마나 눈꼴이 시릴까? 성 위문은 정말 부당한가? 성 위문이 설령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분 전환'은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군인의 기분 전환이 식 위문보다 성 위문으로부터 더 압도적으로 일어난다면 가끔 그런 공연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것이 그리 과도하게 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4. 성은 사기를 진작하는가? 둘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5. 여자 아이돌의 위문 공연과 피트니스 모델의 위문 공연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6. 민간 피트니스 대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래 들어 미스코리아든 미스 유니버스든 보수적으로 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런데 국가가 위문 사업을 성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특별히 더 문제인가? 만약 그렇다면 민간은 괜찮고 국영은 괜찮지 않은 정당한 근거는 무엇인가?
7. 올바른 성적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8. 피트니스 대회의 복장은 객관적으로 선정적인가? 선정성이 객관성은 아니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선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다수의 주관을 점유한다는 점으로 보아, 해당 복장은 여타의 일상복에 비해 더 선정적인 여지는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복장 그 자체에 선정성이 귀속되지 않는 것이라면, 동일한 복장도 경우에 따라 선정적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따라서 선정성을 논하기 매우 어렵다는 결론을 맞게 된다. 맨 살의 노출도가 높을수록 더 선정적이라면, 여성의 짧은 평상복은 남성의 평상복에 비해 더 선정적이라고 여겨져야 한다. 그렇다는 것은 여성이 선정성을 스스로 선택해서 장착한다는 것이 된다. 음부 노출이 간당간당 할수록 더 선정적이라면, 핫팬츠를 입지 않아 고간의 노출이 덜한 남성에 비해, 살짝만 젖히면 음부가 드러나기 용이한 핫팬츠의 잦은 착용을 일삼는 여성은 더 선정적이다. 그리고 선정성이 신체가 아니라 단지 복장에만 귀속되는 것이라면,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남성이 나시만 착용한 여성에 비해 더 선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남성의 시각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일반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나시를 착용한 여성에 비해 상의를 탈의한 남성이 더 선정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남성의 관점에서 상의를 탈의한 남성에 비해 나시를 착용한 여성이 훨씬 선정적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선정성은 반드시 신체에만 귀속되지도, 복장에만 귀속되지도 않는다.
9. 정상적인 위문 공연이란 무엇인가? 피트니스 위문 공연은 비정상인가?
10. 선정성은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하는가? 가령, 여성의 젖꼭지가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만으로 선정성의 차이를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젖꼭지의 노출 여부가 선정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가령 aa컵 여성의 젖꼭지와, 꼭지 노출 없이 브래지어를 착용한 d컵 여성의 가슴을 비교한다고 하자. 아무래도 일반적인 남성은 후자에 더 선정성을 부여할 것으로 추측되는 반면 소아성애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전자에 더 선정성을 부여할 것 같다.
이상의 것을 심도 있게 논하기 전에, 문제 되는 본 공연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가감 없이 말하고자 한다. 그 어떠한 분석 없이 직관적으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대상이 야하다는 느낌과 그것으로부터의 강렬한 자극이, 적어도 필자 개인에게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물론 위 영상이 성적 정동을 자극한다는 것은 모델분이 매우 매력적이거나 필자의 취향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 모델이거나, 단체 퍼포먼스였다면 덜 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위 영상 속 모델이 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앞으로 논하겠지만 여러가지일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한 필자의 대략적인 분석은, 당연히 종합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졌듯이, 모델 주체의 특수성과 그에 대한 취향과 해석, 그리고 착물의 형태와 기장에 따름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도 선정성에 한몫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적 대상에 대한 해석자의 해석 역시 상이한데, 남성 피트니스 모델에 대한 대부분의 군인의 해석은 주로 동경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지만, 여성 피트니스 모델에 대한 군인의 해석은 주로 성적 자극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으로 강하게 추측한다. 어쨌든 필자도 아직 결론을 정당화할 만한 근거를 수집하지 아니한 관계로 차근차근 근거 도출을 시도하도록 하자. 물론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억지 논리로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대한 정당화 근거를 나중에 도입해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근거 역시 상이한 결론에 맞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정당화 후에 이 문제에 반발하는 작자들의 주장에 반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는 문제인가?
https://blog.naver.com/rnaelf/222106874107
제니의 간호사 복장은 문제인가?
https://www.instiz.net/pt/6815077?green=1 ※ 필자는 이 글에서 '성적 대상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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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의 글은 필자가 일전에 각고의 노력을 들여 쓴 글이다. 성적 대상화는 중의적 표현이므로 엄밀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sexual objectification은 명백하게 성적 사물화이지만, 성적 대상화의 '대상'은 인간과 사물(~인간)을 동시에 함축한다. 따라서 필자는 성적 대상화의 의미를 구분하는 바이다. 필자는 성적 인간화는 옳다고 간주하는 반면, 성적 사물화는 옳지만은 않다고 간주한다. 이 점 유의하였으면 한다. 성적 대상화 용어를 사용할 때, 두 의미를 확실하게 구분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심도 있게 투찰할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논의의 복잡성을 줄이고 힘을 빼도록 하겠다.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를 조금 구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품이라고 하여 그 판매 상품이 전부 사물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의 신체를 판매하는 행위는 신체를 판매하는 것이라고만 여기면 되지, '신체의 사물화'라고 한 번 꼬아서는, 신체를 사물로 여긴다고, 따라서 신체를 사물로 전환하여 판매한다고 여길 필요가 없다. 신체든 비신체든, 시장 경제 체제 내에서는 단지 판매물이 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 시간과 노동이라는 행위를 회사에 돈을 받고 판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때로는 신성하게까지 여겨진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주장에 실소가 터져 나오는 이유는 인간의 이러한 이중성 때문이리라. 어쨌든 오직 사물만을 파는 것이라거나 파는 모든 것이 사물화된다는 주장은 다소 이상하다. 어떤 매매혼은 단지 한 사람의 인생을 거래하는 것이지 팔린 인생이 물질화된 것은 딱히 아니다. 더불어, 돈으로 산 한 사람의 인생을 물건으로 치부하여 함부로 다루는 것이 용인되는 것 역시 아니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이 돈으로 체결된 계약에 의해 묶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게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계약이 불공정한 것이 아니거나 계약의 당사자들이 서로 행복하다면, 타인이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두 인생에 대한 지나친 월권과 패악이다. 어쨌든 행위자에 의해 사고 팔리는 거래물은 값이 부여되고 거래의 대상이 되는 유형물과 무형물 전반을 지시한다. 지식 콘텐츠는 관념을 그 자체로 송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질을 매개하여 관념이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우리는 오프라인 강의를 결제할 때 지식이나 가치를 산다고 하지, 강사의 발화와 동작을 관람할 권리를 산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 '권리' 역시 무형의 관념에 불과하다. 어쨌든 더 깊게 들어갈 것 없이, 현재 기준에서 불법적이지 않은 거래를 그다지 문제 삼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만약 더 깊은 가치의 문제를 삼아야 한다면, 우리가 원만한 거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경에 놓이게 되고 만다.
성 상품은 말 그대로 성이라는 가치를 파는 것이다. 성을 파는 것이 가치를 파는 것이라니,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체가 단지 물질로 치부되는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거래에 그다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신체는 규범과 통례에 의해 해석되기 마련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따위의 교조적 가치가 선 부여되고 그것을 다루는 행위나 동작에 이차적인 가치가 부여된다. 자신의 신체가 성스러운 것이라면 그 성스러운 것들의 교접은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아무튼 섹스는 단지 물리적 교접이 아니라 더욱 고차적인 정신적 작용이라고 보는 것이다. 강간은 몸의 훼손을 넘어 가치와 관념의 훼손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장례식이 죽은 자에게 직접적으로 향하는 실체적 작용이 아니라, 오직 산자에게만 존재하는 관념의 제의祭儀인 것과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사피엔스에서도 언급되듯이, 사피엔스를 질서 있게 결집하도록 하고 월등하게 진보하게 만든 것은 허구를 탁월하게 다루는 능력이 다른 종에 비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의 공통된 픽션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구성물은 인간의 삶을 더욱 고도한 관념의 세계에 정착시켰다. 성의 매매가 다른 가치나 관념의 매매에 비해 더욱 신성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압도적인 신성성으로 매매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통념이고, 필자는 그것에 반발한다. 성의 가치가 매매 불가능하게 되어야 할 만큼 그에 대한 보호 가치가 월등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단지 보호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개인의 판단만으로 그 거래를 허용할 수 있다면 여타 마약이나, 살인, 경제 범죄 등에 대한 제재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허용될 수 있다. 이는 적절한 처사가 아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법적 제재를 받는 성매매와 법적 제재가 없는 성 상품화는 구분될 필요가 있고, 양자 모두에 대한 일치된 동의는 존재하기 어렵다.
2. 해당 공연이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2.1. 의도
공연자(피트니스 모델이나 공연 관계자)는 국군 장병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의도하는가, 자신의 성 상품화를 의도하는가, 아니면 단지 그게 어떤 위문이든 간에, 위문의 취지를 떠나서 자신의 퍼포먼스에 충실하기를 의도하는가? 오직 의도가 문제라면 해석자의 해석은 고려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만약 공연자가 위문 공연을 하는 의도가 단지 돈을 받고 자신이 본래 하던 것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공격자(성 상품화라고 지적하는 무리)가 어떤 논리로 그 부당성을 지적하든 그것은 배격된다. 이 위문 공연의 공연자는 자신의 신체가 성적으로 해석되고 소비될 것을 인지하지 아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연자가 자신의 신체가 성적으로 소비되길 바라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신체가 성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성 모델이 성 상품으로 여겨져 그 가치가 거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사자들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자발성에 의한 공정 계약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격자는 의도건 뭐건 그게 문제가 아니라 행위 자체가 선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 같다.
2.2. 복장
복장이 문제일 개연성이 높다. 가령 아이돌의 경우 역시 크고 작게 문제시가 되어왔지만, 복장이 노골적이거나 오직 몸매 부각을 위한 동작을 취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는 주장이다. 여성 아이돌의 복장이 노골적이지 않아서 문제가 덜 되는 것이라면, 모든 아이돌은 노골적이지 않은 옷을 입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복장은 노골적이지 않으므로 선정성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돌의 복장은 피트니스 모델의 복장에 비해 어느 부분이 노골적이지 않은가? 링크를 굳이 걸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많은 여성 댄스팀의 위문 공연 복장은 팬티까지는 아니더라도, 음부가 드러날 정도의 복장은 착장하여왔다. 물론 실제로 음부가 드러나도록 입는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선 '정도의'를 사실 지시가 아니라 강조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쨌든 가슴골이 드러나는 상의나 겨드랑이와 복부가 드러나는 복장 역시 애용되었다. 그리고 속옷과 비키니를 구분하는 여성들의 관점에 의한다면, 피트니스 모델의 대회복 역시 정정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복장이다. 그렇다고 속옷의 노출이 부끄러운 수치라는 것은 아니다. 비키니나 대회복의 착용이 부끄럽지 않다면 속옷의 착용 역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속옷이나 비키니나 부끄러운 복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비키니나 속옷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다른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문제 때문이리라. 어쨌든 복장 그 자체에는 '부끄러움'이라는 속성이 내재해있지 않다.
부끄러움이 해석의 영역이라면 선정성 역시 해석으로 봄이 응당 합리적이다. 오직 복장이 문제라면, 즉 피트니스 모델의 대회 복장이 장소나 상황을 불문하고 언제나 다소 선정적으로 해석된다면, 비키니 역시 해수욕장에서 선정적으로 해석되며, TV 홈쇼핑의 속옷 모델 역시 선정적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선정성 철폐 작업의 결과 홈쇼핑 속옷 모델이 거의 사라지는 등, 여타 분야에서 신체의 노출로 벌어먹고사는 여성이 위기에 처하고, '바르지 않은 성적 가치관을 퍼뜨리는 부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러한 낙인은 해석자 편향적이지 않다. 그 말인즉슨, 성 상품화가 해석자의 해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을 근거로 피해석자인 성 상품 여성을 공격하지 않아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피해란 피해는 그 여성들이 모두 떠안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 관점의 해석에 불과하다. 성 상품화 기조에 일조하는 흉자 여성은 차치하더라도, 여성 보편에 대한 성적 상품화를 의도하고 조장하는 한남이라는 불특정 잠재 범죄 무리를 규탄하는 일환으로써의 움직임은 현 급진 페미니스트의 주 관점으로 보인다.
2.3. 동작
아무래도 피트니스 심사 규정에 부합하는 특정 동작이 일반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피트니스 평가의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데, 가령 노출된 신체 부위의 근질이나 선명도를 평가해야 하는 대회의 특성상 특수 부위를 부각하는 동작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엉덩이를 과하게 뒤로 빼는 동작은 다소 성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남성의 경우 둔근을 평가하기 위해 엉덩이를 여성처럼 빼지는 않는데 이는 여성의 경우와 매우 다른 점이다. 평가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미적 가치 역시 다른 것인데, 이것의 당부당을 떠나서 이 특수성을 인정한다면 동작 자체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설령 모델의 백 포징이 무릇 많은 남성으로 하여금 스탠딩 뒤치기를 상상하게끔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해석자 주관이지 동작 그 자체에 성적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닐 수 있다. 여성의 업된 힙이 성적 가치가 높고, 피트니스 대회의 포징이 그러한 일환에서 도입된 것이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 피트니스 모델이 엉덩이를 뒤로 과하게 빼는 것은 둔근의 근질이나 선명도 따위를 평가받기 위함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엉덩이의 근육을 평가받으려면 엉덩이를 뒤로 뺄 게 아니라 남자처럼 쥐어 짜야 한다. 남녀의 미적 평가의 차이 때문에 이러한 동작의 구분을 두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피트니스 대회 종류도 다양하고 심사 기준도 상이하다. 보디빌딩 대회 말고도 피지크 대회가 있고 그 외 다양한 종목이 있다. 필자가 이 각각의 대회의 여성 심사 기준을 속속들이 모르기 때문에 섣부르게 주장할 수는 없지만,까지 썼다가 혹시나 해서 유튜브에 검색해 본 결과, 필자의 크나큰 착오가 있었음을 밝히며 내용의 정정이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fQBzyk1t0o
위 국제 대회의 백 포징을 보라. 엉덩이를 남자에 비해 빼긴 빼지만 과하게는 빼지 않는 듯이 보인다. 즉 이는 엉덩이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단지 성적 정동을 유발하는 것에 부합하는가가 아닐 수 있다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근육을 뽐내는 대회에서 근육을 극대화하는 포징을 평가 기준으로 하지, 특별히 부차적이거나, 근육 부각에 비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을 도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긴 하다. 어쨌든 오직 동작이 성 상품화를 부추기거나 성적 추동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따지면 명백하게 여성 상위 섹스 동작으로부터 파생된 트월킹을 남발하는 댄스팀이나 아이돌의 댄스 동작이 문제면 문제겠다.
2.4. 상황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오직 상황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상황은 매우 다양한 유형의 넓은 외연을 복합적으로 함축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리적 부정)상황을 상황이 아닌 모든 것이라고까지 따지지는 말고, 단지 개인에 귀속되는 것 정도라고만 받아들인다면 개인적 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여건을 상황에 편입시킬 수 있겠다. 오직 상황이 문제라면, 복장의 형태, 동작의 특수성,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 관람객의 특성,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해석자의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는 것이므로,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최대한으로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나 유교적 가부장제의 관점에 따르면 이러저러한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해당 공연이 잘못일 수 있다. 둘의 결과가 왜 같냐면, 여성이 성 상품이 되는 것에는 생각이 다르지만 여성이 공중에 과하게 노출하는 것에는 평가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다. ㅋㅋ 이렇게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개 꼰대 조선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와 가부장제에 찌든 부류가 싫어하는 여성 상위 주장자인 급진 페미가 한뜻은 아니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같은 결과를 지지하는 아이러니한 지경에 봉착하게 된다. 어쨌든 이 사안은 관점에 따라 문제인 상황으로 언제든지 구성하고 변형할 수 있다. 이래서 사회과학의 문제가 참으로 소모적이고 투쟁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움직임은 정의나 객관적인 가치의 보호가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크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3. 반드시 성적 위로가 필요한가?
그리고 위문 공연자는 반드시 성욕 해소의 도구로 소비되는가? 성 위문이 그르다면 다른 위문, 가령 식 위문은 정당한가? 식 위문이 생존에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생존의 문제라면 그것은 기본이지 '위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 위문 차 특별식을 제공하는 것마저 세금 낭비라느니, 캠핑 가서 배불리냐느니 소리를 듣는 마당에 성 위문까지 해주려니 얼마나 눈꼴이 시릴까? 성 위문은 정말 부당한가? 성 위문이 설령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분 전환'은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군인의 기분 전환이 식 위문보다 성 위문으로부터 더 압도적으로 일어난다면 가끔 그런 공연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것이 그리 과도하게 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피트니스 모델의 공연이 '성 위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설령 그것이 성 위문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시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태가 공중의 풍속을 심대하게 저해하거나 도의에 반하거나 대중에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피해를 야기하거나 성 가치를 과도하게 저해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한 검열이 가해져야 할 만큼 범죄적이지도 아니하거니와 상당히 많은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내지도 않는다. 물론 다수의 주관성의 결집이 반드시 객관성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다수의 동의나 불변적 가치가 아니라고 해서 자유로운 민주 시민의 행동 주권을 저해하고 검열할 타당한 근거 역시 없다. 강제로 위안부로 징발되어 성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도 아니고, 위문 공연은 엄연하고 정당한 직업 활동이다. 많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상품화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이유는 여성 착취에 의한 여성 인격 말살 저지와 더불어 남성 권력의 강화를 방해하기 위함이다. 이는 시대착오적인가? 물론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가 반드시 여성에 대한 지배 의지를 부추긴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필자의 성욕을 자극하는 여성을 보면 그녀와 성관계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지언정, 권력적 우위에서 그녀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추동하는 것은 아닌 점으로 보아, 상이한 가치 판단을 고려하여 논의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지배욕은 언제나 일방향인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페티시에 멜섭, 펨돔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전자는 남성이 여성에 복종하는 행위를 일컬으며, 후자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성적 취향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소수일지는 모르겠으나(최근 들어 트위터를 필두로 하여 굉장히 많은 수의 사례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남성이 반드시 여성에 대한 지배욕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가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에 대한 지배욕을 반드시 부추기는 것도 아니다. 만약 여성 성 상품화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욕을 끓게 한다면, 마찬가지로 정당한 마케팅이라면 의복이나 화장품 따위의 공산물이나 음식 같은 식품, 애완동물 따위의 생명에 대한 지배욕을 부추긴다고 할 것이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구매하기 위해 브래지어를 착용한 여성 모델이 필요 없다면(그 모델의 존재가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를 부추기기 때문에), 역으로 남성이 속옷을 구매하기 위해 팬티를 착용한 남성 모델이 필요 없어지는가(그 모델의 존재가 남성에 대한 성 상품화를 부추기기 때문에)? 남성은 남성 일반이 성 상품화가 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그다지 갖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은 여성 일반이 성 상품화가 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성범죄와 권력 불균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단지 이중성으로 치부할 만한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이에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 대하여, 그것이 성욕과 연관이 있는지 힘의 불균형과 연관이 있는지는 나중에 따로 논하도록 하겠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성범죄는 성욕에 의해 일어난다기보다는 힘의 불균형에 의해 일어난다. 성범죄에서 성욕은 사소한 문제다. 왜냐하면 성욕이 왕성하더라도 그 성욕에 의해 자신보다 강한 생물에게 무리하게 성범죄를 시도하는 우를 범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의 성욕과 여성의 성욕의 차이를 엄밀하게 계측하기 어렵다는 문제, 사고 실험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치적인 우위를 점한다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범죄가 만연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어려운 점, 만약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성범죄를 그다지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요인(성격, 기질, 특유의 신체적 특성, 유전자, 사고 체계 등)은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점 등에 의해 정확한 판단은 어렵겠다.
어쨌든 조금 삼천포로 빠졌는데 돌아오면, 군대에 반드시 성 위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성 위문만큼 효과적인 위문은 없다. 그리고 강조하지만, 피트니스 위문이 '성 위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4. 성은 사기를 진작하는가? 둘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사기가 불굴의 기세라면 성적 만족이 사기를 반드시 진작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전쟁 시의 자신감이나 기세를 알찬 휴식으로 충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령, 간접적으로 알게 모르게 휴식이 잘 되어서 실전 투입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물론 직접적인 사기 진작도 불가능하지는 않는데, 가령 위문 공연 일주일 후에 전쟁에 나가게 된 김 상병에게 위문 공연에서 본 여성이란, 이 전쟁에서 '살아나가야만 하는 중차대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성적 가치가 우월한 여성을 품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허무하게 바스러져가는 인생이란 대단히도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동정으로 전쟁터에서 죽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일주일 전에 본 위문 공연의 그녀가 떠오름과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샘솟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직면한 총알 세례 앞에서 그런 것이 떠오를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전쟁이 총질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심신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희망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5. 여자 아이돌의 위문 공연과 피트니스 모델의 위문 공연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구애의 동작을 열정적으로 구사하는 여자 아이돌이 핫팬츠와 끈 나시를 입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 피트니스 모델이 있다. 둘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만약 전자가 성 위문이 아니고 후자가 성 위문이라고 하자. 그리고 여기 성적으로 오래 굶주린 22살의 혈기왕성한 김 상병이 있다. 김 상병에게 전자의 아이돌의 경우는, 은밀하게 가려진 음부를 쭉 내밀어 자신을 유혹하는 구애로 여겨지며 그에 반응하여 음경이 불끈해진다. 반면 후자의 피트니스 모델의 경우는, 마침 열심히 몸을 만들던 김 상병에게 순수한 동경의 대상이 된다. 이때 김 상병에게 전자는 성 위문이고 후자는 진정한 예술 조각의 현현이다. 그런데 앞에서는 전자가 성 위문이 아니고 후자가 성 위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김 상병에게는 기존의 전제가 적용되지 않는가? 당연하지만 성적 가치 부여는 해석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둘의 근본적인 차이를 필자는 잘 모르겠다. 섹시 콘셉트가 주인 걸그룹인 스텔라가 성 위문으로 분류된다면, 귀여움이나 엽기가 주인 크레용팝은 도대체 '어떤 위문'으로 분류되는가? 복장의 문제인가 동작의 문제인가? 아니면 두 요소 모두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스텔라가 노출 의상을 입고 허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성 위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크레용팝이 헬멧을 쓰고 트월킹을 한다면 성 위문을 하는 것인가? 두 요소 모두가 문제시되는 거라면, 야한 동작을 하지 않는 피트니스 모델의 공연은 성 위문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니 이런 단순 요소의 구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피트니스 모델이 최소한 크롭 탑에 핫팬츠라도 입었다면 성 위문 논란까지 갔을까? 음.. 잘 모르겠다. 워낙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트집 잡기 좋아하는 부류한테 걸려서, 아무래도 거센 질타로부터 살아나가지 못하고 사과로 마무리될 것이 뻔하다.
6~10은 귀찮아서 생략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CkuqZ_xdQ4
이제 이 영상의 댓글에서 몇 개만 골라 반박하겠다. 귀찮으므로 빨리해야겠다.
"정말로 '위로'를 위한 방법이 '성'밖에 없는 건가. 미개하다."
→ 일전에 언급했듯이 위로를 위한 방법은 성밖에 없지 않다. 그런데 (만약 저것이 성 위문이라면) 성을 위로하는 것은 다른 위로에 비해 매우 탁월하다. 필자 역시 군 생활 당시 그다지 선정적이지 않은 걸그룹의 공연에도 활기가 돌았던 기억이 있다. 단지 유명인을 봐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남자만 있는 공간에서 여성의 존재란 굉장히 신비하다고 할 수 있다. 크레용팝이 성적 자극을 의도하는 그룹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예쁜 여자라는 그러한 사실이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도 한다. 눈이 호강한다는 말은 무릇 남성에게만 쓰이는 말이 아니다. 여성 역시 남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적 소비를 할 수 있다.
필자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발언은 '미개하다'라는 발언이다. 피트니스 위문이 발전되지 않고 수준이 낮고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라는 뜻이다. 그래. 일단 저게 미개한 행위라고 가정해보자. 위 댓글러가 생각하는 미개하지 않은 위문이 있을 텐데, 일단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러면 도대체 위문 공연의 미개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단 위 댓글러의 주장의 맥락을 미루어 보면, 성 위문 전체를 미개한 위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성 위문이 아닌 위문을 미개하지 않은 위문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므로 어떤 위문이 미개하지 않은 위문인지 논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식 위문이나 그 외의 교양? 위문, 혹은 포상 휴가나 여타 성적이지 않은 복지를 미개하지 않은 위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식 위문은 성 위문에 비해 왜 덜 미개한가? 잘 모르겠다. 남자 아이돌의 방문은 사기를 떨어뜨릴 여지가 있어 고려하지 않겠지만(왜냐하면 여자 아이돌에 대한 기대 심리와 비교 때문에) 가령 국방부 장관이 훈련소에 방문하여 병사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식사도 같이 하고 건의 사항도 들어주고 병사들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원초적인 자극이 최고긴 하다. 식 위문 역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며 성 위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덜 미개한 것은 아니다. 가령 위문 공연하지 말고 휴가를 더 보내라는 미필자의 규탄은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일 여지가 있다. 휴가 인가가 그렇게 쉽게 아무한테나 나는 것은 아니다(물론 경우에 따라 쉽게 나기도 한다.). 어쨌든 휴가가 걸그룹이나 이번 피트니스 모델의 위문에 비해 덜 미개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휴가가 위문 공연에 비해 덜 미개한 이유가 성적이 않기 때문이라면, 도대체 성적인 것이 미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적인 것은 앞으로도 인류가 멸절하지 않는 한 압도적인 고가치를 점할 것이다. 성 산업은 압도적으로 크며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문제도 많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그것이 성 자체가 미개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댓글러의 사고 건전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더럽다 진짜"
→ '미개하다'와 유사한 뉘앙스로 보이는데 조금 다르다. 미개하다는 약간 시대에 못 미친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더럽다는 추잡하다, 방탕하다, 불건전하다 등의 뉘앙스로 읽힌다. 그리고 '더럽다'는 누굴 향한 질책일까? 공연자인가? 위문 공연 전반을 지시하는가? 만약 후자라면, 구체적으로 공연자를 더럽다고 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공연자에 대한 모욕이 함의한 발언임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가령 '군대 조직 더럽다'라고 해서, 그것이 병사들 각각에 대한 모욕인 것은 아니다. 개개의 것들에 문제가 없다고 할지라도 합성하여 추잡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피트니스 공연이 민간에서는 추잡하지 않지만 그것이 하필 군부대에서 이루어질 경우 추잡해진다는 것인데, 왜 꼭 그래야 하는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단지 잠재적 범죄자들이, 사회에서도 물의만 일으키다가 캠프에 징집돼서는 여자 불러서 방탕하게 노는 꼴이 보기 싫은가 보다. 어디까지나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여 이면은 모르고 가끔 드러나는 것만 보고 속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남성 병사는 그딴 위문 보고 즐기는 것보다 하루 휴가가 더 절실하고 그깟 위문 공연 본다고 해서 내재한 범죄성이 발현되려고 꿈틀거리고 그러지 않는다. 설령 어떤 특정한 신체를 가진 여성이 성 상품이 되고, 그것을 일관되게 원하게끔 유도하는 시류 정세가 만연하다고 하더라도 그 작위적인 성 관념에 대한 저항은 단지 특정 성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하게 막는 행위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쨌든 무엇이 더러운지, 더럽다는 의미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으므로 넘어가도록 한다.
"그 피트니스 공연이 상식 이하의 기획이었던 거지. 정상적인 위문 공연이 훨씬 많지."
→ 정상적인 위문이란 무엇인가? 피트니스 위문은 왜 비정상적인 위문인가? 여성 피트니스 모델의 형태와 행위가 어떤 이들에게 정상의 범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남성 피트니스 모델만 공연을 했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여성이 섞여있었다는 것은 공격자들에게 확실히 먹잇감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에게 비정상적인 것만 보이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러한 시각을 가진 자'들에게는 만물이 그러한 쪽으로만 해석되기 마련이다.
"저기서 보여주기란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거지 모델이 트레이닝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 필자는 아직도 이 댓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트레이닝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델이 트레이닝한 결과물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인지, 결과물이야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게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여성'을 드러내는 게 의도라는 것인지, 결과물이 몸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남성의 경우에도 이렇게 동일한 기준을 들이밀 수 있는지, 설령 저 자리에서 아무리 트레이닝의 결과물을 보이려고 해도 자리의 특성상 여성의 몸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인지 등 그 사고가 심히 의심스럽다. 그래, 설령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여성의 몸을 남성에게 보여주는 것은 문제인가? 물론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따라 판단 결과가 다를 수는 있겠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집단은 사회가 규정했다고 보이는 이상적인 신체를 소유한 여성이 그것을 이용하여 여기저기 휘젓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으며 오히려 저해하려는 시도까지 감행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자신들의 도구로 여긴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추론의 오류다. 물론 추론의 건전성을 따라야만 실제적인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어떤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이용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남성 일반이 여성을 도구로 이용한다고 간주하는 비약으로 집단 전체를 타도의 대상으로 모는 것은 무리한 처사다.
추가)
- 성적 자기 결정권이 우선하는가, 내 노출에 대한 타인의 우려(오지랖)가 우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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