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그룹을 외국인 멤버로만 결성할 수 있는가?

2021. 11. 17. 14:47생각

모든 멤버가 비 한국인인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결성될 수 있는 것인가? 케이팝이란 무엇인가? 케이팝이 한국의 팝이라면, 그것은 단지 케이팝이라는 이름만 걸고 있으면 되는가? 케이팝이라는 장르만의 독특한 특성이 존재하는가?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J-pop 그룹도 가능한 것 아닌가? 한국인 3명 외국인 3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명의 한국인이 탈퇴하고 한 명의 외국인을 영입하여 2: 1의 비율을 만들고, 한국인 한 명이 더 빠지고 외국인 한 명을 더 영입하여 5 : 1이 되는 경우까지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남아있는 한 명까지 빠져 모든 구성원이 비 한국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케이팝 그룹이 아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Z-GIRLS'와 '유학소녀'라는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걸그룹을 예로 들어보자.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의 음악이 케이팝임을 주장하며, 소속사 역시 한국으로 알고 있다(전자는 애초에 해외를 겨냥한 듯이 보이고 후자는 엠넷에서 주관한 프로젝트 그룹). 그런데 지걸스의 경우 케이팝이지만 (필자가 찾아본 바로는)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가 없다. 반면 유학소녀의 팝시클이라는 곡은 한국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우 지걸스에 비해 유학소녀가 더욱 케이팝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가? 케이팝의 필요조건이 '한국어'가 아니라면 지걸스는 케이팝 그룹일 수 있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필요조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소속사가 한국의 연예 기획사여야 하는가? 한국에서 활동해야 하는가? 만약 한국에서 활동해야 한다면 그 활동 기준은 무엇인가? 케이팝의 고유성이 있다면 그것을 위시하면 되는 것인가? 케이팝의 고유성은 어떤 춤의 형태인가? 아니면 곡의 작법 형태인가? 단지 케이팝이라고 주장하면 케이팝이 될 수 있는가? 그룹이 케이팝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유 역시 케이팝 가수이기 때문이다. 아이유가 부르는 곡의 형식이나 느낌은 통상적인 아이돌 그룹의 그것과는 매우 상이하다. 그렇다면 아이유와 지걸스가 동시에 케이팝일 수 있는 연결 고리는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개념을 중심으로 그 연결고리를 파악해 보도록 하자.

그전에 exp edition이라는 백인 4인조(원래 6인조였다고 함) 남성 케이팝 그룹도 끼도록 하자. 이들은 2015년 미국에서 소속사 대표인 김보라 씨의 대학원 석사 논문을 발단으로 하여 프로젝트성으로 결성되었다. 이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외국인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는 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작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에 멤버들의 작심에 의해 한국행이 결정됐다. 김보라 대표(대학원 당시에는 사업자가 아니었으므로 초기의 exp edition은 엔터테인먼트 소속사가 존재하지 않았음)의 프로젝트는 애초에 '케이팝' 그룹 결성을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이 그룹은 탄생부터 케이팝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때부터 정말 케이팝 그룹이었는가? 이제 이 셋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아이유 Z-GIRLS EXP Edition
정식 가수인가?
처음부터 케이팝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는가?
누구에게나 케이팝으로 인정받는가? ? ?
한국에서 결성되었는가? ? x
소속사가 한국 엔터인가? x → ○
그룹 멤버에 한국인이 있는가? x x

 

가수이기만 하고, 거기에다 스스로가 케이팝이라는 목적으로 결성되기만 해도 케이팝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직관적으로는 다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꼭 처음부터 케이팝을 목적으로 결성해야만 하는가? 흑인 음악을 하던 사람이 케이팝 가수가 되기로 선언한다고 해서 그는 그 선언 이후로, 혹은 앞으로 계속 케이팝 가수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이는 장르적 정체성을 넘어선 문제로 보이긴 한다. 가령 메탈을 하던 사람이 발라더로 전향하는 것은 매우 쉬워 보이고 누구에게나 용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J-메탈 그룹인 babymetal이 이제부터 자신들을 k-밴드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선언만으로는 그들이 k-pop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조건이, (그룹 탄생의 관점에서) 후천적으로 이들을 k-pop 가수가 될 수 없게 만드는가? 국적 변경도 가능한데 말이다. 물론 국적 변경을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제이팝 가수가 케이팝 가수로 전향하는 것 역시 필요한 조건만 갖춘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세 케이팝 가수의 유사성 조건을 포함한 다른 어떠한 사례를 찾아보더라도 이러한 국가적 음악(?)의 변경의 전례가 없다. 케이팝이 국적이나 한글 가사, 한국 인종 등의 한국적인 조건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K'라는 한국성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논제는 테세우스의 배 역설과 심히 유사해 보인다. 테세우스의 배 문제란 그리스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탄 배에 관한 것인데,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기간을 두어 하나씩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한다고 하였을 때, 모든 부품을 신품으로 갈아치운 시점에서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이다. 만약 한국인 멤버가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필요조건이라면, 한국인의 존재 유무는 그 그룹이 케이팝 그룹일 수 있게 하는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조건도 그것이 케이팝을 이루는 필요조건이기만 하다면, 언제든지 어떤 그룹을 케이팝 그룹에서 비 케이팝 그룹으로 혹은 그 반대로 만들 수 있다.

홉스가 변형한 테세우스의 배 심화 문제를 살펴보자. 테세우스의 배의 모든 부품을 기간을 두어 교체할 때, 빼낸 부품을 버리지 아니하고 모아두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구현해 낸 새로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 이때 기존의 배를 배 1, 오리지널 부품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배를 배 2라고 하자. 이에 대한 반론을 케이팝 그룹에 비유하여 보자.

 

https://namu.wiki/w/%ED%85%8C%EC%84%B8%EC%9A%B0%EC%8A%A4%EC%9D%98%20%EB%B0%B0

 

자세한 설명은 위 링크에서 참고 바란다.

1. 배 1이 테세우스의 배이다. 즉 배 1은 테세우스의 소유이므로 다른 사람이 기존의 부품으로 본품을 똑같이 모사하든 말든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

반론 : 정의의 문제. 테세우스의 '소유'와 테세우스가 '사용'한 것에 대한 구분 필요.

2. 배 2가 테세우스의 배이다. 오리지널리티의 문제.

반론 : 배 2가 어느 시점부터 테세우스의 배가 되는가? 가령 기존의 테세우스의 배의 부품을 51% 교체하고 배 2는 아직 본품의 49%만 구현해 내었다고 하자. 이때 무엇이 테세우스의 배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 총원이 각각 6명인 케이팝과 제이팝 그룹이 있다. 이들은 각각 순수 한국인과 순수 일본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제 이들의 구성원을 한 명씩 교환한다고 하자. 3명씩 교환했을 때 전자는 케이팝 그룹이지만 기존의 케이팝 멤버 3명과 새로운 제이팝 멤버 3명으로 구성되었다. 제이팝 멤버가 케이팝 멤버로 편입되면서 제이팝에 관한 성질은 없어진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가능한 해석인가? 물론 이것은 서로 암묵적으로라도 약조된 경우에 그러하다고 할 것이다. 가령 아이즈원의 일본인 멤버 세 명은 본래 제이팝 가수이다. 이들은 아이즈원에서 제이팝 가수로서가 아닌 케이팝 가수로 활동하겠다는 암묵적인 룰에 시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암묵적 룰을 무시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 케이팝을 기치로 활동하겠다는 천명 없이, 케이팝 멤버 3명과 제이팝 멤버 3명으로 결성된 그룹이 한국도 일본도 아닌 중립국에서 활동한다고 하자. 이들은 어떤 팝 가수인가? 이들을 케이팝 가수라고 가정하고, 이들이 미국 할렘가에서 흑인들 사이에서 케이팝이 아니라 랩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들은 이때에도 케이팝 가수인가?

아이즈원이 일본인 과반으로 결성되었다고 하자. 이들은 한국인 멤버가 과반에 미치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케이팝 그룹이 아니었는가?

3. 배 1과 배 2 모두 테세우스의 배이다.

반론 : 테세우스의 배는 본래 하나인데 갑자기 두 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 증식이 가능하다고 하자. 그리고 2의 예시를 다시 보자. 케이팝 그룹의 구성원과 제이팝 그룹의 구성원을 시간 차를 두어 모두 교환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케이팝 그룹은 멤버가 모두 교체된 현재의 그룹 형태를 케이팝이라고 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멤버들이 모두 넘어간 제이팝 역시 케이팝이라고 해야 한다.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케이팝 그룹은 케이팝 그룹이면서 제이팝 그룹임과 동시에 제이팝 그룹은 제이팝 그룹이면서 케이팝 그룹이게 된다.

4. 배 1과 배 2 모두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

반론 :

경우 1. 테세우스의 배를 그냥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여 배 2만 있다.

경우 2. 테세우스의 배의 부품을 떼어낸 후 모두 불태워서 배 1만 있다.

케이팝 걸그룹인 에이프릴을 해체하여 그 구성원을 모아 제이팝 걸그룹으로 결성하였다고 하자. 이때 이들은 케이팝 걸그룹이 아니게 되는가? 구성원은 이 전과 동일하므로 이들이 재결성하여 제이팝 그룹이 되었다는 사실을 쉬이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들이 재결성한 후에도 케이팝 걸그룹이라면, 그들을 케이팝 걸그룹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 에이프릴 멤버를 전부 교체하면서 기존의 멤버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자. 바뀐 에이프릴에 나은이 채원이 등 기존 멤버는 없지만 그래도 에이프릴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은 에이프릴인가? 에이프릴이 지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가령 서울 대학교를 지시하는 것이 서울대의 건물인지 서울대 학생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이는 형이상학적 문제이면서 지시와 대응의 문제이다. 언어적 문제로도 보인다. 가령 이나은은 에이프릴 그 자체를 지시하지는 않는다. 즉, '에이프릴은 이나은이다'는 허용되지 않는 반면, '이나은은 에이프릴이다'는 허용된다. 그런데 전자의 대우도 참이 아니다. '이나은이 아니라면 에이프릴이 아니다'는 거짓인데 왜냐하면 전건인 ~이나은에 윤채경이 대응될 수 있어, '윤채경이라면 에이프릴이 아니다'가 되어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에이프릴이라면 이나은이다'라는 조건문의 전건 에이프릴에 해당하는 것이 반드시 이나은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첼이라면 이나은이다'는 거짓이고, 마찬가지로 '서울대라면 서울대 부지이다'는 '서울대 학생이라면 서울대 부지이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테세우스의 배 관련해서는 더욱 심화된 부분까지 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냥 재미로만 참고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이 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가능하냐는 것에 대해 필자가 결론지을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왜냐하면 케이팝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이팝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정의하기 어렵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단지 'K'가 나라의 특성이라면 그것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ZGIRLS나 EXP Edition이 흉내 내는 한국적 특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기는 다소 어려운 것 같다. "과거에는 대한민국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느낌이었다면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댄스 음악이나 아이돌 음악을 일컫는 것 같다"라는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그 대한민국 아이돌 음악 특유의 느낌은 대충 안다. 이것은 다소 더미의 역설 같은 문제로도 보인다. 기존의 케이팝 분위기에서 어떤 특성에 조금의 변화를 주면 미국 팝 같은 느낌으로, 다른 식으로 춤을 변형하면 제이팝 같은 느낌으로 변하는데 이것의 문제는 그 변화의 경계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물론 이러한 정체성 정의의 문제는 단지 개인의 느낌이나 집단적 동의만으로 결정지어질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필자는 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