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젠더는 다른 개념인가?

2021. 11. 17. 14:49생각

https://www.youtube.com/watch?v=0RTYsuHHMcU 

 

위 영상은 좌익 진영이 성 개념의 혼돈된 사용으로 과학의 권위를 붕괴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고 구축驅逐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위 영상의 일부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영상에서는 3분 1초 즈음에 "젠더는 뇌 안에 있는 것"이라는 좌익 진영의 주장에 대해, 3분 7초에 "그러면 젠더 역시 생물학적인 의미인 거죠"라며 응수하는데, 이러한 지적은 사회적 성이나 제3의 성에 대한 올바른 공격이 아니다. 왜냐하면 좌익의 주장은, 젠더라는 개념이 뇌 안에 있다는 것이지, 뇌 그 자체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영상은 전자의 주장을 후자의 것으로 둔갑시켜 공격하는 전형적인 허수아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필자가 보더라도 좌익의 주장은 다분히 과학적이지 않은 소지가 있다. 개념은 말 그대로 사상에 불과하다. 젠더는 정신적인 내용이나 의미에 불과할 뿐이지 실물이 아니다. 어쨌든 좌익은 그러한 의미에 대응하는 실물을 후결적으로 설정한 것일 뿐, 별다른 논리적 하자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개념적 구성물은 정신 작용에 의해 의미와 해석으로 구현될 뿐이지, 뇌 안에 어떤 실재가 들어있다는 것이 아니므로, 좌익의 주장 '뇌 안에 있다'를 '뇌 안에서 나온 것' 또는 '뇌로부터 도출된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뇌 안에 있는 그것(젠더)을 단지 사고의 구성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뇌 안에 있다'를 '뇌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결과물(젠더라는 개념)을 '생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과잉 해석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뇌로부터 도출된 모든 개념(생각)이 '생물학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뇌로 '정의(justice)'라는 개념을 생각해 낼 수 있고, 앞의 논리에 따르면 정의란 곧 생물학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라는 개념은 '뇌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좌익이 젠더라는 성 정체성을 정말 뇌 안에 있는 어떠한 물질(실물)을 지시한 것이라면 위 영상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좌익이, 뇌 안에 시스 젠더나 안드로진 따위의 개념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가령 시스 젠더는 단어의 의미나 정의대로 개념에 불과한 것이거나, 자신이 어떠한 성적 경향성을 띤다고 해석자 스스로가 믿는 내용인 것이지, 그것이 물질 '뇌'에 상응하는 물리적 실체라고까지 주장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 역시 필자의 믿음이나 해석에 불과하므로, 만약 정말 좌익이 젠더성이라는 추상적 개념, 혹은 그 개념의 정의(definition)를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믿었다면 필자는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3분 23초에서는 "어떻게 우리의 생물학적 몸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가질 수 있느냐"라는 의문에 이어, (염색체나 생식기에 어떤 혼란이 있는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한다는 예외를 둔다.) 3분 39초에 "어떻게 동시에 '이것이면서 이것이 아닐'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생물학적 남성이, 자신의 젠더를 여성이라고 규정하였을 경우, 영상에서 제기되는 반론(젠더 역시 생물학적 성)에 의하면, 특별한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a와 ~a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이 주장의 오점은 영상의 주장자가 성을 단지 생물학적 성으로만 이분화하였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화에서도 남자의 논리적 부정을 남자가 아닌 모든 것을 제외하고 단지 여성이라고만 제한한 것도 문제이다. 설령 성이 오직 생물학적 성으로만 이분된다고 하더라도, 남자의 논리적 부정을 여성이라고 간주하여 양립 불가능을 주장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잘못된 추론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남자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신발이나 사랑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범주 내에서, 또는 이미 전제한 조건에 한하여 결론을 조작적으로 도출해내는 시도를 모색할 수 있고 통상 그러한 작업이 행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신체가 남자나 여성을 제외하고 핸드폰이 될 수는 아무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자나 컴퓨터 따위가 생물학적 성의 범주 안에서 성을 이룰 수 있는 조건으로서 성립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 보이며,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에 따라 생물학적 성이 될 수 있는 것만 따진다면 남성과 여성, 양성구유兩性具有 정도만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데 양성구유는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제한다고 한다면 오직 남성과 여성만을 논할 수 있을 경우에만 오직 여성만이 남성의 ~남성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성을 생물학적 성으로만 간주하였다는 문제, 좌익의 젠더 정의를 생물학적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에 의하여 허수아비 치기 논증의 오류를 피할 수 없다.

4분 1초의 젠더 운동가의 주장에 의하면, 생물학적으로 여성 음경(female penises)과 남성 자궁(male uteruses)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여성 음경을 가진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임과 동시에 생물학적 남성까지 함축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4분 13초의 주장, 남성이라는 '단어'가 여성 또는 남성 둘 다를 의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 대한 반론은 없다. 왜냐하면 '여성'이라는 지시어는 여성 자궁을 가진 여성과 여성 음경을 가진 여성, 그리고 남성 자궁을 가진 남성을 모두 지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위 영상의 주장에 대한 필자의 결론은, 사회적 성은 개념에 불과하여 생물학적 성과 같은 범주 층위에 두고 논의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둘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