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6. 14:20ㆍ생각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필자가 예전부터 매우 궁금했던 것이 있다. 왜 남성에 비해 유독, 동성 연예인에 대한 여성의 충성도가 압도적으로 높아 보이는 것일까? 게이에 대한 탄압이 레즈비언에 대한 탄압에 비해 강해서, 실은 동성 연예인 추종자(남성)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실제 통계나 설문으로 보더라도 게이의 비율보다 레즈비언의 비율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성 보수성이 낮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성 보수성이라는 가치관(개념, 믿음)이 자연계적 본능을 장악하거나 변형시킬 만큼의 힘을 가진 것이라면, 왜 하필 여성에게 그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 만약 여자 연예인에 대한 여자들의 연모가 단지 추종심이나 존경심의 발현인 것이라면, 왜 남자에게는 그것이 잘 나타나지 않는가? 이것은 정말 이상한 현상이다. 일반적인 편견에 의하면, 여성은 자신보다 조금 나은 여성에게 질투심을 심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물론 남성도 마찬가지다. 여자의 질투심과 남자의 질투심의 발현 양상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필자가 얘기하려는 건 이 질투심이 왜 서수진 같은 우상에게는 발현되지 않느냐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질투는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난 대상에게는 잘 발현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서수진을 포함한 여러 여성 연예인들을 광적으로 염모하는 여성들의 심리 상태는 일종의 탐구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존경심이나 추종심이라면, 그러니까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향의 모습을 염모의 대상이 갖춘 것이라면, 동성애적인 논의로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 물론 칼로 베듯이 경계를 딱 그을 수는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과한 관심과 사랑은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나 성적인 애정까지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관심에 대한 복합적인 요인을 분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단 성적이지 않은 추종과 성적 추종을 구분하지 않도록 한다. 즉 이 글에서 서수진에 대한 추종자(시녀)가 성적인 추종자인지 성적이지 않은 추종자인지는 논하지 않기로 하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조금 중구난방이 되었는데, 필자가 이 글을 통해 해소하고픈 궁금증은 다음과 같다.
1. 여성 연예인을 추종하는 여성 추종자가 남성 연예인을 추종하는 남성 추종자에 비해 많은 이유
2. 여성에 대한 여성의 질투는 남성에 대한 남성의 질투보다 강한가?(본문과 관련 없음. 여담)
3. 여성에게는 신념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4. 서수진의 시녀가 신념보다는 서수진을 택한 이유와, 서수진을 포기한 팬이 서수진보다는 신념을 택한 이유
5. 시녀들은 서수진을 성적으로 추종하는가?
1. 여성 연예인을 추종하는 여성 추종자가 남성 연예인을 추종하는 남성 추종자에 비해 많은 이유
이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러니까 사실 여성 추종자와 남성 추종자의 비율은 비슷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단지 분야가 다를 뿐이다. 여성은 연예의 분야에서, 남성은 정치나 스포츠의 분야에서 추종심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엄밀하게 따지면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구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앞에서도 성적인 추종에 대해 계속 언급한 것이다. 정치나 스포츠적인 면에서 남자들의 남성 대상에 대한 추종심은 광적인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성적인 추종심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연예 분야에서 여성의 추종심을 보자. 여성의 여성 연예인에 대한 추종심은 성적인 측면이 강한가? 이에 대해 차후에 설문을 실시하고자 한다. 여성이 여성 연예인을 성적으로 추종하는지, 성적이지 않은 이유로 추종하는지, 성적이면서 성적이지 않은 이유로 좋아하는지 말이다(이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합집합적으로 참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지금은 이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지 않도록 하겠다. 아무튼 돌아와서, 연예 분야에 있어 동성에 대한 추종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인 것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검증이 된 문제인데, 걸그룹 팬덤의 남녀 성비를 확인해 보자.
물론 위의 지표만으로는 동성 연예인에 대한 남성 팬이 여성에 비해 적다는 확실한 증좌가 될 수 없다. 또한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원/앨범 구입한 자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간혹 남자 아이돌의 음원 스트리밍 성비가 남녀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도 포착되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예시는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스트리밍 남녀 성비 50 대 50 이었다.). 물론 스밍을 돌린 성비에 따라 그 아이돌의 팬의 성비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했다의 경우 남녀노소 대중적인 곡이기 때문이다.
일단 인터넷을 검색하면 남자 아이돌 팬덤의 남녀 성비에 대한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남자 아이돌에 대한 수요는 여성이 압도적이라는 말이다. 콘서트 티켓 구매 성비를 보면 남녀 팬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남자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는 남자 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단지 성 보수성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라면 너무도 쉽게 끝날 일이다. 어쨌든 이에 대해 필자는 판단 유보를 택하도록 하겠다. 뭐가 되었든 사실만 보면 여성 연예인에 대한 여성 추종자는 남성 연예인에 대한 남성 추종자보다 많다.
2. 여성에 대한 여성의 질투는 남성에 대한 남성의 질투보다 강한가?
경향성을 따지는 문제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질투의 발현 양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계측하기가 지난하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경향성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데 그것을 따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는 점에서 이 논제에 대한 논의는 진전이 어렵다. 동성에 대한 남성의 질투가 여성의 그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두드러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황과 사람의 차이이지 집단의 일반성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다. 서수진 얘기하려다가 조금 삼천포에 빠진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김에 잠깐 짚고 넘어가련다.
3. 여성에게는 신념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래야 서수진에 대한 광적 추종심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여성을 언급한 이유는 지금 이 글이 여성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참고로 3의 제목의 여성을 남성으로 바꿔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신념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고 사람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케바케인데, 아무튼 서수진의 시녀는 학폭이 그르다는 도덕적 가치보다는 서수진이라는 우상의 보호를 택했다. 물론 아직 학폭이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정황적 근거가 있을 뿐이며, 그것은 결과 이전에 사실을 구성하지 않는다. 정황은 일의 사정과 상황이다. 언의의 미묘한 차이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사정이나 상황이 사실을 반드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필자는 확정된 학폭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피해 주장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고 있지 않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니까 서수진이 학폭 가해자가 적실하게'는' 아니라는 사실이 참이라면(한국어의 미묘한 차이인데 '적실하게는'의 '는'의 유무에 따라 의미가 확 달라진다. 가령 '는'이 들어가면 아직 사실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 강하고 '는'이 빠지면 확실하게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말의 의미를 최대한 혼동되게 하지 않으려면 이 괄호가 적용되는 문장에 '아직'이 포함되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그러니까 서수진이 '아직' 학폭 가해자가 적실하게는 아니라는..."), 시녀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튼 논리를 전개하다 보니, 이번 학폭 논란 의혹에서 시녀의 존재성이 '아직' 확립된 것은 아님을 밝혀냈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를 위해 밑도 끝도 논리도 없이 무턱대고 오직 서수진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악성 팬을 시녀라고 전제하도록 하자.
여성에게 신념이 중요한지 사람이 중요한지를 논하기 전에 필자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단 필자 역시 상황에 따라 신념을 우선하기도, 사람을 우선하기도 한다. 필자가 고의적 살인을 그다지 옹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의도적인 살인 행위를 어떠한 상황적 고려도 없이 옹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살인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적어도 그래야 하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 가령 도주나 여타 편법 없이 자신의 일신의 보호를 위해 오직 적군만을 살해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병사라는 전제하에 그의 살인 행위는 그다지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병사가 살기 위한 방법이 오직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오직 그 행위 자체만으로 악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절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맞는 생각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관점에 따라 가치 평가를 달리할 수 있다면 병사의 행동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신념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폐할 수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 그 자체가 너무 좋아 그의 신념에 동화되어 같이 살육을 저지를 수도 있다. 시녀는 서수진이 너무 좋아 그녀의 학폭 의혹을 부정하길 택했거나 그 정황이 사실로 믿겼다면 그 사실(부도덕)을 포용함에도 불구하고 서수진을 보호하기로 택했다. 그리고 서수진의 시녀가 되지 않기로 택한 사람은 서수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추종심을 버리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갔다.
4. 서수진의 시녀가 신념보다는 서수진을 택한 이유와, 서수진을 포기한 팬이 서수진보다는 신념을 택한 이유
사실 이에 대한 내용을 이미 3에서 거진 다 언술했다. 아무튼 서수진의 시녀가 서수진을 택한 이유는 그들에게 신념보다 서수진이 더 우월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고, 서수진을 포기한 팬이 신념을 택한 이유는 그들에게 신념보다 서수진이 더 우월한 가치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폭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학폭에 대한 평가나 해석이 행위에 나쁨이라는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가치 부여가 없는 학폭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행위 사건이다. 시녀가 되지 않기로 택한 전직 팬이 학폭 행위에 악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시녀로 잔류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학폭이 나쁜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결국 서수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택하게 했다. 결론이 허무하게 난 것 같다. 그냥 개개의 중요도의 차이가 핵심이었다. 쓰고 보니 별 게 없다. 혹 여기까지 읽었다면 미안함을 표한다.
5. 시녀들은 서수진을 성적으로 추종하는가?
끝내려다가 내용을 조금 추가한다. 앞에 뿌린 떡밥을 수습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시녀들이 서수진을 성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에 과잉보호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학폭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은 것인지, 성적이지 않은 추종이건 아니건, 자신이 믿었던 우상이 한순간에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이 안타까워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별것 아닌 부도덕한 악한惡漢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혹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한심스러울까 봐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변론하는 것인지 등, 시녀 짓의 여러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단순하게 따지면, 서수진을 추종하는 마음이 학폭에 대한 심각성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성적 추종심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본다. 다른 케이스도 있다. 가령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남편이 한순간에 나쁜 놈으로 전락한 경우, 그의 아내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까지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자기방어적으로 남편을 옹호할 수도 있다. 물론 남편을 너무도 신뢰해서, 혹은 다른 이유로 남편을 옹호할 수도 있다. 명망가 남편의 몰락에 대한 옹호 행위가 남편에 대한 성적 추종심 때문에 발현되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냥 추종심 때문에 발현되었다고 하는 것은 더 개연성 있다. 왜냐하면 그냥 추종심은 성적인 추종심에 비해 외연이 넓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연언지 명제의 좁은 외연을 피하는 식으로 사고한다면, 서수진에 대한 시녀들의 추종심은 성적 추종심에 의할 확률보다 그냥 추종심에 의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그냥'을 별다른 조건으로 간주하지 않고 모든을 지시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쨌든 '단지 추종심'인데, 그것은 성적인 추종심까지 함축한다. 아무튼 추종심에 있어 외연은 최대치다. 성적이지 않은 추종심과 성적인 추종심의 외연을 비교하는 것은 이전의 비교에 비해 조금 까다롭다. 왜냐하면 성적인 추종심에는 무수한 성적 속성이 존재하며, 성적이지 않은 추종심에는 또한 무수한 성적이지 않은 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껄끄럽다. 앞의 그냥 추종심은 성적 추종심을 깔끔하게 포섭하지만, 성적 추종심과 성적이지 않은 추종심은 모순 관계이다. 둘의 양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단지 네이밍에 따라 각각 하나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적이지 않은' 것이 성적이지 않은 것 딱 한 요소만을 의미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성적이지 않은 것은 성적인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시한다. 반면 성적인 것 또한 상당히 많은 것을 지시할 수 있다. 어쨌든 서수진의 시녀들이 서수진을 성적으로 추종하든 성적이지 않은 추종심으로 추종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도덕적 신념을 뛰어넘은 추종심이 작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ps. '정뚝떨'의 요인을 잘 따져보자. 어떤 사람은 애인이 아무리 좋아도 특정한 행동이나 사건에 의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나 애정을 모두 털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아무리 정뚝떨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너무 강해(다른 말로 콩깍지가 씌어) 끝까지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케바케다. 필자의 경우는 다수의 사람에게 폭격을 맞는 사람에게 기묘하게도 연민이 생긴다. 설령 그 사람이 아무리 악한이라고 한들 말이다. 물론 그 대상도 케바케이긴 하다. 서수진의 경우도 그렇고 에이프릴 멤버들에게도 너무나도 과한 원산폭격이 가해지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이 한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변론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아니다. 필자의 주장은 왜 그들이 제3자에 의해 이러한 과도한 테러를 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에이프릴 멤버들이 현주를 괴롭힌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현주를 가해했을 뿐이지 대중을 어떠한 이유로도 기망하거나 가해한 적이 없다. 그런데 대중은 에이프릴이 자신들을 속였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이나 팬은 비교적 공적 속성이 강한 인물에 대해 '도덕성'을 기준으로 재단하겠다는 방증이다. 대중 앞에 서려면 그 이유가 공직 때문이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그리 도덕적이지 않은 채로 대중 앞에 나선다면, 필자는 차후에 도덕 규탄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자라면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리고 최소한의 비판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에이프릴 멤버들의 가족이 출연한 리얼리티 동영상의 댓글에 그 부모를 규탄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을 보면,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 정당한 비판은 수용될 필요가 있지만 도가 지나친 비난에는 경계해야 한다. 몇 사람의 실수(혹은 고의)는 상당한 파급을 주위에 끼친다. 그러한 점에서 항상 자중하고 자신의 언행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공인이나 공인에 준하는 자라면 더욱 조심해서 행동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대중이 관심 역시 적절한 질타의 선에서 필요할지도 모른다. 특정인의 사회적 물의에 대한 무관심은 아무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다. 뭐든지 적당하고 정당한 비판은 좋다. 선을 넘으면 개판이 되고, 공격의 타깃은 적정선을 초과하는 폭격을 맞고 갈기갈기 찢겨 회생 불가의 지경에 놓이게 된다. 가해자인지 아닌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가해자라고 믿는 자에게 철퇴를 내릴 수 있는 익명성과 손가락의 권력은 참으로 막강하며,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신중하게 사태를 진단하고, 건전하고 정당한 비판을 애용하기를 희원한다.
추가) 연좌제에 관해 추가로 덧붙이겠다. 당신은 에이프릴 멤버들의 부모가 에이프릴 멤버들을 악하게 키웠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말은 어떠한 점에서 이상한가? 만약 에이프릴 멤버(이하 에이프릴 생략)들의 부모가 멤버들에게 악하게 행위 할 것을 직접적으로 지시했다면 명확하게 멤버들을 악하게 키운 것인가? 물론 이는 중의적이다. 악하게 키운 방식 자체가 악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 방식으로부터 실제로 멤버들이 악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부모들이 멤버들에게 악하게 행위 할 것을 직접 지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가능성의 측면에서 완전 배제는 할 수 없다.
관점에 따라 멤버들의 부모는 멤버들이 악하게 자라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가령 어떤 멤버의 가정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그 멤버가 비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수 있다.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끼친 전반적인 영향력은 아이의 비행에 대한 부재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재 인과의 관점에서 잘못을 확정해버린다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이가 없다. 부모의 존재가 멤버의 악행에 필요조건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즉 부모의 어떤 행위가 없었다면 멤버의 악행이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정확한 논의는 어렵겠지만 확실한 것 넓은 관점에서 부모의 존재 자체는 멤버의 악행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왜냐하면 그 부모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멤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것은 확실한 판단이다. 상식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이런 식의 무자비한 규준으로 부모의 죄를 만들어 연좌제를 감행하는 것은 매우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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