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혐오란 무엇인가?

2021. 11. 17. 10:52생각

"굴절질투라고도 한다. 자신보다 능력과 조건이 좋은 남성에 대해 느끼는 패배감과 분노를 그 남성에게 차마 풀지 못하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분노를 전치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국내 페미니즘 커뮤니티에는 매우 폭넓게 퍼져 있는 용어이나, RISS 및 구글 스칼라에서의 검색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명확한 출전 확인 필요." - 나무위키

 

https://twitter.com/kim_noonsong/status/1003218843370602496

 

김눈송 on Twitter

“굴절혐오👉"특히 남성 집단 내부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격차가 커지게 되면, 맨 꼭대기에 있는 보이지 않는 최상위 기득권 계층 대신 (만만한)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향성을 보인다."

twitter.com

 

저들이나 저들과 비슷한 부류가 구사하는 논리는 편협한 무지로부터 기인할 때가 있다. 특정 집단을 공격하기 위해 그와 유사한 반대 사례를 감춘다. 가령 자신들이 혐오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남자들이 "질투는 여자'만' 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일단 최대한 건전하고 안전한 판단을 해보자면(할 수 있다면), "어떤 남자는 어떤 여자가 질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반대 사례란, 굴절혐오가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 집단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를 일컫는다. 가령 아프리카 tv에서 별창남에게 돈을 쓰는 여자 역시 별창녀에게 돈을 쓰는 남자만큼 욕을 먹기도 한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도록 한다.). 왜 뻔히 보이는 반대 사례를 언급하지 않거나 감춤으로써 한쪽 주장을 극화시킬까? 이는 필시 특정한 목적을 위함이거나 무지에서 기인한다고 강하게 예상되는 바이다. 본격적인 짤에 대한 비판에 앞서 저들이 혼동하는 논리를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질투는 여성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모든 여자는 질투의 화신이다.

질투는 여자만 하는 것이다.'

위 세 문장은 저들이 만든 자료의 일부를 구성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은 의미가 같다. 그러나 세 번째 문장은 앞의 두 문장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 만약 위의 자료를 만든 사람이 저 세 문장을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크나큰 오류이다. 물론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이나 세 번째 문장 중 하나를 취택할 필요는 없다. 물론 세 문장 모두를 참이라고 한다면 여성과 질투는 필요충분조건을 이루기 때문에 더욱 방어하기 어려운 비판을 직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말이다. 편의를 위해 순서에 따라 문장에 번호를 매기겠다. 아무튼 문장 1과 문장 2는 다음과 같다.

여성 → 질투

반면 문장 3은 다음과 같다.

질투 → 여성

그런데 문장 3은 단순히 필요조건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상 언어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약 위 조건문을 일상 언어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필요조건 관계만으로 따진다면, 여성이 질투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남자 역시 질투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 조건문을 일상 언어적으로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질투의 필요조건에서 남자는 제외된다. 그러니까 문장 3이 사용된 맥락을 보면, 질투는 남자를 제외한 오직 여자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가 매우 왜곡된 것이다. 만약 모든 남자가 질투를 하지 않는 부류로 이해되고 있었다면 그 명제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남자가 질투를 하는 사례만으로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명제는 거짓이라는 것이 쉽게 판명 나는데, 그 근거는 필자의 질투심에 의한다. 어쨌든 위 자료의 제작자의 의도는, 기존의 전제가 틀렸다면서 한남 역시 질투심이 강하며 그것을 굴절혐오에 뒷받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에 모든 남자는 질투심으로부터 배제된 적이 없었다. 저치들은 공허한 가정(이미 존재하지 않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문장 1과 2는 여성이 질투심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성이 질투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함축한다. 왜냐하면 해당 문장은 남성이 질투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의미의 지시를 위해서는 남성의 질투심에 관한 문장이 추가로 언급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성별에 편향된 사회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일견 동의하는 바이며, 그런 오해가 매우 잘못된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질투심이 강하다'라고 했다면 그 경향성이나 선입견적인 측면에서 용인할 만했다. 그러나 '오직 여성만 질투를 한다'라고 여겨진다는 주장은 너무 비약이고 과한 설정이다. 어떠한 경향성이라는 것, 특히 위의 경우처럼 계측하기 어려운 감정 개념에 대한 집단적 경향에 대해 그 경향성의 정도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인다.

아프리카 tv 사례를 이용한 것을 보면, 위 자료의 제작자가 매우 우매한 단견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단지 반대 사례를 언급하지만 않은 것뿐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아프리카 tv 여캠들 보고 '별창녀'라고 하는데 정작 그 별창녀에게 '돈을 쓰는 남자'는 비난의 타깃이 되지 않음. 근데 반대로 잘생긴 남캠들이 돈 많이 번다는 얘기 나오면 그 남캠을 '별창남'이라 욕하는 게 아니라 그 남캠한테 돈 쏟아붓는 '여자'들 보고 개념 없다고 욕함"

위 발언은 매우 편협하다. 남자가 여성 집단의 이중성을 돌려까기 위해 일부러 만든 자료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우선 너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 첫 문장부터 보이는데, '돈을 쓰는 남자'가 비난의 타깃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이다. 너무 웃기다. 별창녀에게 돈을 쓰는 남자가 비난의 타깃이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온 사람으로서, 이 자료의 제작자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장 인터넷에 '물소', '호구남' 따위의 키워드만 검색해도 인터넷 방송 관련한 남초 커뮤니티의 여론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남 이사 돈을 어떻게 쓰든 오지랖 부리지 말자는 부류가 있는 반면 그 돈을 여캠에게 주느니 차라리 성매매를 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남성을 질타하는 시선도 많다. 두 번째 문장의 사실관계도 착인된 경향(이 경향이 통계적 사실이라면 허용)이 있다. 확실히 별창녀보다 별창남에 대한 시선이 덜 두드러진 것은 사실인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는 소비층의 불균형에 있다. 아프리카는 확실히 남초 판이고, 남자가 압도적으로 돈을 쓰는 정황이 많이 포착된다. 그렇기 때문에 별창남보다 별창녀가 많을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별창남을 생성하는 것 역시 남성 후원자가 압도적이다. 일명 큰손이라 불리는 거액 후원자인 뭉크뭉, 대령, 예비회장 같은 네임드 거부들은 모두 남성이며 별창남이나 별창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이들의 적선과 자비에 의존한다. 위의 발언을 그대로 아이돌의 경우로 바꿔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남자 아이돌들 보고 '성 상품'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남자 아이돌에게 '빠순이'는 비난의 타깃이 되지 않음. 근데 반대로 예쁜 여자 아이돌이 돈 많이 번다는 얘기 나오면 그 여자 아이돌을 '성 상품'이라 욕하는 게 아니라 그 여자 아이돌한테 돈 쏟아붓는 '남자'들 보고 개념 없다고 욕함"

이상한 느낌이 드는가? 이것을 또 위치만 바꿔보자.

"여자 아이돌들 보고 '성 상품'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여자 아이돌에게 '빠돌이'는 비난의 타깃이 되지 않음. 근데 반대로 잘생긴 남자 아이돌이 돈 많이 번다는 얘기 나오면 그 남자 아이돌을 '성 상품'이라 욕하는 게 아니라 그 남자 아이돌한테 돈 쏟아붓는 '여자'들 보고 개념 없다고 욕함"

물론 선정적인 콘셉트의 여자 아이돌은 어떤 부류에게 성 상품으로 여겨지고 빠돌이 역시 비난의 타깃이 된다. 그리고 남돌에게 돈을 쏟아붓는 여성 역시 욕을 먹기도 하며, 또는 개인의 취미라며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돌에게 돈을 쏟아붓는 남성 역시 욕을 먹기도 하며, 또는 개인의 취미라며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남혐 자료 제작자의 의도가 뻔히 보이며, 그것은 다변량 분석을 거치지 않은 협견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라고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는 모든 남자를 대변할 수도 없으며, 단지 '나'라는 한 명의 남자의 심정만 속속들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소한 어떤 남성은 질투심을 가지며, 모든 남성이 질투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뚜벅이인 필자는 외제차를 모는 재력가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재력가가 취하는 우월한 여성이 탐나기도 한다. 더불어 그러한 여건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왕왕 있으며 그것이 질투심으로 발현되어 세상에 대한 시기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소인배적 작태가 그다지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필자는 현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비루함과 열등감을 타인에 대한 혐오의 연료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열등성을 스스로가 더 나아지기 위한 발판을 삼는다. 그리고 설령 열패감이 부정적으로 표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중과 사회 질서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에 귀속시키고자 신경쓴다. 어느 집단에나 이상한 부류는 존재한다. 분규를 조장하고 상대를 음해하고 자신의 무지로 타인을 일반론에 편입시켜 그 틀에 맞게 재단하곤 한다. 이는 필시 현명하지는 않은 자기 표출이다. 분명 어떤 남성은 악에 받친 질투심을 극화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나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물을 흐리는 자들이 활개를 치게 놔두어선 안 된다. 물론 현 풍조가 혐오를 콘셉트로 잡은 것은 꽤나 두드러지는 사실로 보이긴 하나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현명해져 합심하여 당면한 문제를 타개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