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6. 14:16ㆍ생각
몇 년 전부터 논쟁이 있어온 난제이다. 국립국어원에도 많은 질의가 이어질 만큼 답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문제인 듯이 보인다. 필자가 확인한 국립국어원의 대답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였는데 필자 역시 이와 동일한 주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위의 상황은 의미론적이 아니라 화용론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로 보이며, 따라서 둘 중 하나의 상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10분 빠르게 맞춰달라고 한 요청자의 관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글의 맥락만으로 그것을 추론해내야 한다. 이제 험난한 길에 올랐다. 긴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난상토론은 '빠르다'와 '먼저(앞)'의 의미 사용(이해)의 애매성 때문에 발생했으며, 따라서 각 용어의 상황적 이해도에 따라 각자의 해석은 모두 옳을 수 있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위의 상황을 전제한 후에 상식을 기준으로 화용론적으로 접근하여 혼동을 일으키곤 했다. 단순하게 10시를 기준으로 그것보다 '이전'을 '빠르다'와 동치로 취급하여 9시 50분으로 해석한 경우, 정확한 시간이 10시인데, 차 시계가 그보다 '앞서 나간'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보다 빠른 10시로 모순적인 해석을 한 경우, 통상적인 약속 시간이라는 상황을 근거로 하여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10시보다 '나중에 오는 시간'인 10시 10분이라고 해석한 경우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먼저 의미론적인 파악이 중요하다. 일단 '빠르다'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 '빠르다'가 시간의 흐름과 결합했을 때 어떤 의미로 변모하게 되는지 따지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이 문제에서 각자만의 해석을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시간을 나아간다고 표현한다. 이 표현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는 앞에 있고 과거는 뒤에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빠르다의 의미를 적용하기 애매하다. 만약 현재의 나, 또는 현재의 시간을 기준으로 앞에 먼저 나아가는 것을 빠르다고 해석한다면, 현재를 기준으로 뒤에 따라오는 것을 빠르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나아감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과거를 '이전以前'으로 해석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뒤(後)에 있는 것은 앞이 되고, 따라서 '빠르다'와 '이전(과거)'을 동치로 취급하는 사람은 현재보다 과거의 시간을 빠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이해에 도움이 된다.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라. 그리고 자신을 기준으로 앞을 미래, 뒤를 과거라고 하자. 그런데 여기서 이전과 이후는 무엇인가? 그리고 여기서 도대체 빠르게란 무엇인가? 일단 속도 개념은 배제하도록 하자. 일단 나아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전을 뒤(과거)의 것으로 이후(벌어질 일)를 앞(미래)에 닥칠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이해했다고 하자. 그런데 여기서 도대체 빠르다는 무엇을 기준으로 적용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빠르다'를 시간적 이전(과거)으로 해석해야 할지, 방향적 앞(미래)으로 해석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빠르다'와 '前'을 동치로 여길 수 있다면 두 해석 모두 옳다.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것뿐이다.
종이에 선을 하나 그어보자. 선 가운데를 현재라고 하고 그 왼쪽을 과거, 오른쪽을 미래라고 하자. 이 중 어디가 현재를 기준으로 '이전'인가? 이전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지어지는가? 설령 이전의 기준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이때 '빠르다'는 또 어떤 기준으로 결정지어지는가? '이전'을 '빠르다'와 같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전'이나 '빠르다'라는 표현이 시간을 맞추는 데에 있어 그다지 효과적이고 엄밀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는 관점에 따라 앞이 될 수도 뒤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간다는 관점에서 미래는 앞에서 다가오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동일한 관점에 따르더라도 나중(사후, 추후, 뒷날)에 일어날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반드시 앞일 필요도, 뒤일 필요도 없다. '나중(사후, 추후, 뒷날)'이라는 용어를 기준으로 하면 미래는 현재를 기준으로 '뒤'에 있다. 반면 시간의 흐름이라는 상황 속에서 미래를 마주하면서 나아가는 양태를 근거로 한다면 미래는 현재를 기준으로 '앞'에 놓인 것 같이 느껴진다. 기준점으로부터 바라보는 방향에 대한 이해의 차이이다. 어쨌든 '앞과 뒤'의 문제는 해석의 차이에 따른다는 것으로 결론짓도록 하자.
문제는 '빠르다'이다.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을 상정하자.
1. 앞-미래-빠르다
2. 앞-과거-빠르다
3. 뒤-미래-빠르다
4. 뒤-과거-빠르다
그리고 아래의 일차원 시간 좌표를 상정하자.
과거-----현재-----미래
이것에 1~4를 대입해보자.
1. 과거-----현재-----미래
2. 과거-----현재-----미래
3. 과거-----현재-----미래
4. 과거-----현재-----미래
위의 배타성 관계, 즉 각각의 '빠르다'에 대응하는 '빠르지 않다'는 다음과 같이 현재를 모두 포함한다.
5. 과거-----현재-----미래
6. 과거-----현재-----미래
7. 과거-----현재-----미래
8. 과거-----현재-----미래
만약 '앞-미래-빠르지 않다'를 전제한다면, 이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는 빠르다. 즉 위의 상황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10분 빠르지 않게 맞춰달라"라고 했다면 고려할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난다.
아무래도 과거와 미래의 용어적 엄밀성이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이로 보아 '빠르다'의 애매성은 사실상 정의의 문제이며, 애초에 위와 같은 상황에 이런 애매한 용어가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사전적 정의를 토대로 이 문제를 다시 진단하도록 하자. 지금까지는 용어 의미 적용의 임의성을 논한 것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비교적 고정적이므로 논의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국어사전에서 '빠르다'를 검색하면, '어떤 것이 기준이나 비교 대상보다 시간 순서상으로 앞선 상태에 있다'라고 나온다. '앞선다'의 의미로 보아 '먼저', 즉 '나중'의 반대 개념이다. '나중'은 시간 순서상 미래를 지시하므로, 먼저는 '과거'를 지시한다고 간주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과거'와 '빠르다'가 동치이니, 사실상 위의 논의는 어쩌면 불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재를 기준으로, 이전(과거)은 빠르다.
그러면 이제 문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도 기준이 또 여러 개가 존재한다. 남편이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남편이 현재 시간이 10시임을 알고 있는데, 차량 시계가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면 아내는 시계를 10시로 맞춰야 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르다'의 의미에만 시선이 쏠려 간과한 부분이다. 이미 첫 문단에 '차량 시계가 맞지 않으니'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니까, 현재 차량의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물론 남편이 '맞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맥락에 의하면 애초에 시계가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겠다. 물론 이는 남편이 '빠르다'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가정 하에 할 수 있는 전제이다. 남편이 '빠르다'의 의미를 반대로 알고 있었다면, 시계는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해석 역시 차고 넘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애초에, '맞지 않는 차량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빠르다'의 사전적 의미에 따라 아내는 시계를 10시로 맞춰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확한 결론이 될 수 없다. '그때 정확한 시간은 10시 정각이라고 한다면'의 의미가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시간이 10시라는 것인지, 그때 정확하게 '맞는' 시간이 10시라는 것인지 각각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라면 위의 결론은 옳다. 그러나 전자라면 10시 정각을 기준으로 '빠르다'의 의미를 통해 '맞는' 시간을 추론해내야 함이 마땅하다. 아무튼 이제 슬슬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이 빠르다의 사전적 의미(먼저(앞서다) = 과거, 나중 = 미래, 먼저 = 빠르다(앞서다))를 정확히 알고 있고, 현재 차량의 시계가 맞지 않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면 아내는 차량의 시계를 10시로 맞춰야 한다. 또는 남편이 빠르다의 사전적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고, 현재 시간이 10시를 가리키고 있다면 아내는 차량의 시계를 9시 50분으로 맞춰야 한다.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약속 시간이라는 가정된 상황을 근거로 10시 10분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10시에 약속이 있는 경우, 10시보다 뒤의 시간으로 맞추는 편이 약속을 어기지 않는 데에 편리하기 때문인데, 이는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빠르다'와 '나중'을 동치로 여겨 범한 착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남편은, '빠르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어야 한다.
'맞는' 시간이 10시일 때, 시계가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통상 우리는 "시계가 빠르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여기서 '빠르다'의 의미는 시간 순서상으로 '앞서다'의 의미를 반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각이다. '빠르다'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시간 순서상으로 앞선 상태'라고 나온다. '앞서다'를 검색하면, '먼저 이루어지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먼저'를 검색하면, '시간으로나 순서상으로 앞선 때'라도 나온다. 순환 고리인 것을 보아 셋의 의미는 동치라고 여김이 자명하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먼저의 뜻이 반드시 과거를 지시하는가?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앞서다'의 뜻을 다시 보면, '동작 따위가 먼저 이루어지다'라고 나온다. 즉 시간상으로 볼 때, 무언가가 먼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현재에 이루어진 것에 비해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함이 마땅하다. 따라서 '과거 = 먼저 = 앞서다 = 빠르다' 관계성을 전제하는 것이 옳다. 10시 10분을 10시에 비해 빠르다고 표현하는 것은, 통일되지 않은 일상적인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데, 필자의 사견에 따르면 그들이 시간적 앞섬을 '본래의 상태보다 빨리 달려나간다'라고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10시 10분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이동의 관점인 것이다. 또는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을 기준으로, 10분이 본래보다 앞에 놓였다고 해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실수는 단순한 비유의 비통일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단지 사전적 정의를 전제하지 않은 판단에 불과하다.
어쨌든 세 결론 다 관점에 따라 맞지만, 필자는, '빠르다'의 사전적 의미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9시 50분'을 선호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비유적 관점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틀린 것 또한 아니다. 어쨌든 이에 대한 적절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 9시 50분 ∧ 10시 ∧ 10시 10분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수진의 시녀들은 왜 서수진을 택했을까? (0) | 2021.11.16 |
---|---|
군인 두발 규정 개선안에 대한 처참한 반응 (0) | 2021.11.16 |
장애인 부부는 왜 애를 낳는가? (0) | 2021.11.16 |
자기 연민과 이타적 삶 (0) | 2021.11.16 |
'한남'과 '앙 기모띠'는 혐오 표현인가? (1)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