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5. 13:00ㆍ생각
원래 나는 글을 쓸 때, 웬만하면 한 주제 당 하나의 글을 작성한다. 그러니까, 가령 제니의 간호사 코스프레가 대중으로부터 그렇게까지 질타를 받을 문제인지에 대해 논하는 주제에 대하여 하나의 글을 작성한 것이나, 대깨문과 반대깨문, 대깨반문의 의미에 관한 문제 역시 하나의 글로 다뤘다. 그런데 길게 늘일 수 없을 것 같은 의문을 하나의 글로 작성하는 것은 너무 블로그가 산만하게 되고 편법적으로 글의 양만 늘리는 것이 되어, 여기 하나의 글로 모으고자 한다. 나는 그냥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 놓는다. 그에 관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유언'과 '생의 마지막 말'은 외연이 같은가?
2. 몸 좋네, 멋있네 vs 머리 좋네, 멋있네
3. 띵장면, 머머리 등은 왜 야민정음을 끝까지 쓰지 않을까?
일단 위의 세 개만 다루도록 하겠다. 3은 예전에 한 번 다뤘는데, 최근에 [띵장면]이라고 적힌 걸 보고, 너무 답답했다. 말을 쓸 거면 제대로 끝까지 다 바꿔서 쓸 것이지, 왜 바꾸다 마는지 굉장히 의문스러워 한 번 다뤄보려 한다.
1. '유언'과 '생의 마지막 말'은 외연이 같은가?
유언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아니, 당장 '유'의 뜻만 봐도 남긴다는 뜻인데, 유언이란 '남기는 말'이다. 관용적으로 생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에, 같은 말로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될 것이다. 유언은 죽어서는 남길 수 없다. 오직 살아있는 경우에, 화자가 주체가 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생의 마지막 말 역시 오직 살아서만 가능하다. 즉 생존 시의 마지막 발화가 '생의 마지막 말'의 지시체가 된다. 법적 유언은 고려하지 말고,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을 유언이라고 해보자. 이때 유언에는 횟수 제한이 없다. 죽음에 이른다는 개념이 애매하지만, 어쨌든 죽음이라는 결과와 그에 근접한 시간이라는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적당한 범위를 정한다고 한다면, 가령 죽기 1시간 전부터 속사포처럼 쏟아낸 1만여 개의 문장 모두를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언이라는 것은 그 발화의 의미나 의도, 목적에 의존하는 감이 없지 않다. 만약 그 1만 문구 중, "아 배고프네"라고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평서형으로 발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유언으로 간주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에 이르러 한 말의 모든 것을 유언이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뜻이더라도 어떤 것은 유언이 될 수도, 다른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은 유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가령 죽음 5시간 전부터 5만여 개의 문장을 발화하던 노인에게서 어쩌다가 나온 "나는 간다"라는 말과, 죽기 5시간 전부터 한 마디도 없다가 죽기 1분 전에 "나는 간다"라고 하는 경우, 두 발화된 문장의 의미, 그리고 발화의 의도나 목적이 동일하더라도, 그 발화 상황에 의해, 그 발화를 받아들이는 해석자에게 둘은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후자의 경우는 유언으로, 그러니까 임팩트 있고 진중한 말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어쩌다가 나온 말, 많은 말 중에 하나로 여겨질 수 있고, 애초에 영면에 드는 자의 그 말이 아무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유언만으로 생기는 이러한 애매한 경우를 논의할 수 있음을 보았다.
어쨌든 생의 마지막 말은 유언과 동치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후자의 범위가 더 넓다. 유언은 생의 마지막 말을 포섭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언을, 단지 유언장에 기재된 문자적 의미로만 받아들인다면, 생에 육성으로 발화된 마지막 말은 유언으로 간주되지 아니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둘의 성격이 애초에 다른 것이다. 그러나 조금 유연하게 받아들이자면 어쨌든 앞서 논의한 것처럼 유언의 외연이 생의 마지막 말에 비해 넓다고 보인다.
2. 몸 좋네, 멋있네 vs 머리 좋네, 멋있네
이것 역시 알바 출근하면서 떠오른 의문인데, 대개 몸이 좋은 남자에게 그 몸을 칭찬할 때에는 "몸 좋네"와 "몸 멋있네"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머리의 경우는 다르다. '머리 좋네'는 보통 피칭찬자의 두뇌 센스나 지능 등을 칭찬하는 것으로 쓰이며, '머리 멋있네'는 헤어스타일이 예쁘거나 세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지 언어 사용의 관용성 문제 정도로 보이긴 한다. 그런데 그 관용성을 무시하고 적절한 의미 전달이 가능할까? 가령, 두뇌 센스가 좋은 사람에게 "머리 멋있네"라고 칭찬하는 것은 화용론적으로 올바른 발화인가? 언어는 합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아무도 내 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언표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 '좋다'와 '멋있다'의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몸에 대한 칭찬에서 '좋네'와 '멋있네'가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게 잘못인가? 분명 둘의 의미는 다르다. 그런데 하필 몸에 대한 칭찬과 연계될 때에 둘의 의미가 변형되는 것인가?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몸이 좋다는 말과 멋있다는 말이 어떤 경우에 쓰이는지 살펴볼 것도 없이, 조금의 생각만으로 우리는 둘의 사용이 유사함을 추측할 수 있다. 한 장의 피트니스 모델 사진을 100명의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그들에게 사진 속의 몸이 어떻게 보이는지 질문한다고 하자. 그러면 물론 다양한 반응이 나오겠지만, 대개 사회의 미적 기준에 의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 '과하다'라거나 '우락부락하다'라거나 '징그럽다'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기대하는 '좋다'라거나 '멋있다'라거나 '노력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다소 부정적으로 쓰인 '우락부락'과 '징그럽다'가 유사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분명 둘의 의미는 다르고, 설령 동일하게 부정적인 의미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둘의 의미는 다르게 쓰인다. 그리고 애초에 이 경우에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것이 다른 경우에는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 가령 보디빌딩 대회에서 '과하다'는 칭찬이다. 물론 평가 요소에 따르면 균형이 중요시되지만, 어쨌든 어깨가 다른 곳보다 커서 나쁠 것이 없는 게 보디빌딩이다. 아무튼 돌아와서 '멋있다'와 '좋다'는 분명 긍정적인 칭찬의 상황, 그리고 동일한 지시체인 몸을 놓고 보더라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는 프레게가 지시체를 뜻과 의미미론적 값으로 구분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피트니스 모델의 몸 x라는 동일한 지시체에 대하여 '좋은 x'와 '멋있는 x'의 지시체가 같지만 뜻이 다르다. 아무튼 내가 프레게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비슷한 말을 프레게는 하고 있다.
3. 띵장면을 왜 띵튽띤이라고, 끝까지 야민정음화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단지 전달력의 문제로 보인다. 가령, 팔도비빔면을 보라. '괄도네넴띤'으로 야민정음화 되는데, 더 심화로 들어가면 '괄ㅌ네넴띤'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도'가 'ㅌ'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아까 일베 용어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ㅁㅈㅎ(민주화)'를 '뮿'이라고 표기한단다. 'ㅈ'과 뮿의 'ㅠ'가 유사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한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다고 하고, 예전에 위메프가 '읶메뜨'로 자신들을 지시한 적이 있었다. 이 경우 딱히 '읶메프'라거나 '위메뜨'라고 하는 것은 재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아쉬운 감이 있다. 완성형으로 '읶메뜨'라고 하는 것은 균형도 맞고 재치가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른가 보다. '숲튽훈' 역시 '숲장훈'이나 '김튽훈'이라고 하면 균형이 맞지 않고 어색하다. 이제 띵장면을 보자. '띵튽면'의 경우, 숲튽훈의 대중화 때문에 '장=튽' 구도를 쉬이 추리할 수 있다. '띵장띤'의 경우, 균형이 맞아 보기가 좋다. 그런데 굳이 띵장면이라고 해야 했을까? 이것은 '머머리'를 떠올리게 한다. '머머'의 음률 때문에 저렇게 사용하는지 모르겠는데, 머대리라고 하지 않는 것이 너무 불완전해 보인다. 그렇다면 댕기머리 샴푸는 멍기머리 샴푸라거나 댕기대리 샴푸라고 해야 하는데, 둘 다 라임이 맞아 시각적으로나 발화적으로 균형감은 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는 불완전하며, 나는 그것이 거슬린다. 어떤 식으로 사용하든 상관은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체계 역시 규칙에 맞지 않는 이상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데, 고작 인터넷 밈 하나에 몰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나는 그 밈들이 그렇게 사용되는 의도나 현상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나는 머머리를 머대리로, 머머리 독수리는 머대리 독수리로, 댕기머리 샴푸는 멍기대리 샴푸로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논의의 핵심인 띵장면 역시 전달력 측면에서 장의 튽화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띵장띤으로 균형이라도 맞출 것을 제안한다. 완벽하게는 띵튽띤으로 하자. 이상 뻘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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