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25

2023. 2. 23. 20:03생각

-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엄감嚴勘하는 이유는 자신이 판관으로서 항상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비난의 대상에게 쉽게 죄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의 자격은 도덕적 우월성 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 사람들은 어떤 상식에는 관대하고 다른 어떤 상식에는 엄격하다. 왜 경제, 역사적 상식 따위는 반드시 알아야 하고 논리적, 과학적 상식 따위는 조금 몰라도 되는가? 왜 어떤 상식이 더 상식적이어야 하는가? 그런 기준은 자신들의 믿음에 따른 임의적 기준일 뿐이다.

- 나는 화 많은 사람, 무비판적으로 상식에만 의존하는 사람에게는 논박이 주가 되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 '...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 - 미스 함무라비

- '이 집안은 서로 통화할 때마다 통화를 녹음하는 가풍이 있나 보다.' - 미스 함무라비

재산 분할 문제로 소송 중인 형제들. 웃겨서 메모했다.

- 사과 상자에 든 사과 중 단 한 개가 썩었어도 그 상자는 썩은 사과가 든 상자. - 미스 함무라비

내용물 중 일부가 썩었다고 그 상자 자체가 썩은 건 아니다. 설령 대부분이 썩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가령 기독교인 대부분이 썩었다면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 교리가 썩었다고 할 수는 없다. 교리의 썩음 여부는 교리 행위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교리 그 자체의 정당성과 무모순성에 있다.

- 우월감으로 똘똘 뭉친 이는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엄격하다. 자기가 아는 건 상대도 알아야 한다고 믿는 모양인데, 자기가 모르는 것을 지적당하면 터무니없는 걸로 꼬투리 잡는 양 여기며 자신에게 이중적 관대함을 선보인다.

- '법이나 재판이란 건,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안온한 중산층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 미스 함무라비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 의지의 보편 준칙이라는 게 확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면 행위자가 처한 맥락에 따라 그의 행위를 형량하여야 한다.

- 아나 나는 언러키 최성호고 최성호 교수는 러키 나가 아닐까. 최성호 교수가 쓴 책들 보면 나랑 성향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회문제를 치밀한 논리로 풀어가는 게 내 과다. 다만 나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여 그 성향을 적절히 발휘하지 못할 뿐. 주장의 설득력은 정합적 근거도 근거지만 현실적으로 학적 권위에서도 크게 나온다. 하지만 어떤 권위 그 자체는 그것이 직접적 근거가 되지 않는 어떠한 주장의 직접적이고 명백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 드라마 www의 대사를 왠지 사회학을 전공한 여성 작가가 썼을 거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건 왜일까. 대사는 내 스타일이다.

- 빈자, 상 무식쟁이, 악인 등의 부류가 왜 인간 취급받지 않아야 하는가? 그들이 살아가는 상황과 맥락 안에서 그들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아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 기세가 꺾인다.

- 평택대 컴공과 중퇴생 친구에게 공부 정말 안 했구나 소리 듣고 수학 공부 좀 해야겠다고 느꼈다. 나는 로그함수나 시그마 공식의 이해에 문외한이다(물론 그 친구도 원리를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알았었느냐 몰랐었느냐의 차이는 있다). 그런 걸 몰라서 무시당하는 것에 충격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왜 중고등학교 공부를 어느 정도 하지 못한 이들은 나이가 먹어서도 계속 무시당하는가? 그런 이들이 태반일 텐데 말이다.

- 난 내가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남의 무지에 관대할 수밖에 없더라.

- 이래서 나를 이루는 환경 풀은 내 실력에 비례한다는 거구나.

- 기초 학문은 중등 교육 수준까지는 철저하게 익혀야겠다.

- 모든 걸 다 알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중등 교과 범위 내의 내용은 어느 정도라도 숙지해 놔야겠다. 진짜 어디 가서 상무식 소리 듣기 딱이겠다.

- 아빠가 엄마한테 개무시 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비참할지 이제야 동감하겠다.

- 무지함을 변론하기 위해 무지해지지 않으리라. 무지한 자가 무지함이 괜찮다고 하는 것은 무지하지 않은 자에게 설득력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무지하지 않은 자가 대리 변론해 줘야 한다. 나는 무지해도 괜찮다고 하기 위해 무지해지지 않으리라. 물론 무지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무지해지지 않으려는 이유가 더 크지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스스로 만족하는 것만큼 덜 무지해지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미래의 덜 무지한, 그럼에도 누군가보다는 더 무지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변론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덜 무지해지리라. 사실 근본적인 명분은 무지의 탈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식자 취급을 받을 때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 자기모멸감에 있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斷想 27  (0) 2023.02.23
斷想 26  (0) 2023.02.23
타인에게 엄격한 사회, 왜 우리는 평균 미달인 자를 조롱하는가?  (0) 2023.02.23
斷想 24  (1) 2023.02.23
斷想 23  (1) 202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