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3. 20:02ㆍ생각
마사 누스바움은 낙인을 찍는 등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형벌 체계에 도입할 수 있는지를 논하면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문제인 것은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단을 형성하며, 보다 힘이 약한 일부 집단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을 '정상인'으로 정의한다."
판결과 정의. 21p

상대에게 수치심을 부여함으로써 서열화하려는 시도가 만연하고 있다. 정상, 상식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자기와 조금만 달라도 상대를 비정상, 몰상식으로 몰아버린다. 이것이 정말 '정상'적인 것일까? 그들이 바라는 정상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수입이 적다고 무조건 적게 쓰는 게 정상일까? 물론 필자는 이 경우는 예외적으로, 적은 수익의 과소비를 그다지 좋은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다 맥락이 있다. 당장의 수입은 적지만 잠깐의 무리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소비를 하는 삶이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행복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과소비가 언제나 잘못이 될 순 없다. 다만 적게 쓸 수 있는데도 적게 벌고 많이 쓰면서 현실의 비루함을 자책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건 정신적인 문제라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남자가 키가 160대라고 비정상일까. 남자 키가 평균보다 못하면 저질인 걸까? 174가 평균인데 173이면 저질인가? 172면 더 저질이 되는가? 175는 덜 저질인가? 176은 왜 더 나은가. 이 경우는 모든 기준이 여성에게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키의 기준이 남성에게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키가 아니라 여성이 여성에게 바라는 키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남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키의 기준에 굳이 맞추려고 하지 않고,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 남성을 키로 조롱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도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키를 놀리는 것이지, 남성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놀리는 게 아니다. 물론 여성이 부재하거나 여성의 기준이 부존한다면, 그래서 남성들이 여성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면 남성들은 서열화를 위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힘의 논리로 정할 것이다. 다만 현대에는 그 기준의 근본이 여성의 시선에 있을 따름이다.
신체적 조건이 거의 평균인 나는 평균 이하의 삶을 모른다. 다만 그 비참함이 짐작될 뿐. 물론 신체 조건이 극단값인 이들이라도 그 신체를 통해 이룩하길 갈망하는 목적(젊어서는 연애나 성교, 늙어서는 건강 등)을 잘만 이루는 이들이 간혹 있다. 하위 극단값에서 평균으로 갈수록 목적의 달성도가 높아지고 달성자도 많아진다. 평균에서 상위 극단으로 나아가면서 목적의 달성도는 월등히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면서 매우 극단에 도달하면서 줄어들게 된다. 여하튼 신체만 가지고 봤을 때 나는 평균적인 한남인데, 아쉬운 점은 평균에서 모자라는 지능과 능력 때문에 평균적인 연애와 성교 횟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래에 되게 모자라 보이는 33세 남성을 보았다. 그런데 그 자는 기혼자였고 그전에도 연애를 더러 했었나 보다. 물론 현재 아내가 상당한 뚱녀로 추정되고(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자의 카톡 프사에 전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있는 사진(마누라가 뚱녀가 확실하다면, 프사에 걸린 여성의 가는 팔로 미루어 보아, 그 팔이 그 뚱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매치가 안 되기에, 뚱녀가 마누라가 아니든가, 프사의 여성의 손이 마누라이든가 해야 아다리가 맞다)을 올린,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는 자이기에 단지 평균에 근접하는 수치만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평균적이지 않은 이는 평균적이지 않은 삶을 살면 되고 그것이 잘못인 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을 한다. 그런 삶은 잘못이라면서. 지능이 낮고 무능한 존못 비실남이라면 좀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는 여성이라도 무는 게 자신의 성전략에 합당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정상적인' 여자라면 남성의 비루한 조건이 논리곱으로 더 많이 묶일수록 그 남성을 택하지 않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존못인데 사회성도 떨어지면 연애 시장에선 거의 나가리다. 도태남 확정인 셈. 여자들은 찐따남 판별기다. 그냥 태생이 그렇다. 찐따들은 연애 시장에서 절대 생존할 수 없다. 운이 좋은 찐따는 잘생긴 찐따남인데, 애초에 잘생기면 성격이 좀 모나고 지능이 떨어져도 찐따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운이 좋은 찐따라는 말은 형용모순인 셈. 물론 입만 열면 깨는 소심하고 덜떨어진 존잘 찐따를 자기 남친이라며 지인한테 소개해 줄 사회적 지능 낮은 여자는 드물리라. 물론 요즘 데리고 노는 애야, 하며 자기들끼리 하하 호호 하며 품평회를 열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특수한 케이스이므로 요점이 아니다.
서평 쓰려다가 말이 새서 이어가기가 좀 뭐 하여 서평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생각 카테고리로 넘겨야겠다. 뭐 아무튼 알아서 잘 사는 평균 이하의 사람들을 멸시할 이유가 뭐가 있나? 누구나 누군가에 비해 비교열위, 타인과 상관없이 절대 열위일 수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나보다 못한 이를 공격하여 얻을 이익이 우월감 말고 무언가? 나는 우월감으로부터 미안함이 도출되던데 다른 누군가는 아닌가 보다. 그리고 사회가 바라보는 우월성이 언제나 우월성인 건 아니다. 물론 연애 시장에서 남자의 작은 키가 큰 키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기란 가세연이 민주당 찍는 격으로, 오은영이 에코백 메는 격으로 드물 것이 예상되지 아니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작은 키가 큰 키에 비해 우월할 맥락이 없진 않다. 다만, 대다수의 키작남들은 자신의 작은 키가 어떠한 분야에서 유리할 경우보단, 차라리 어중간하게라도 조금 더 커서 연애 시장에서 현재보다는 덜 불리하게끔 되는 게 낫다고 여길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안다.
피터 딘클리지라는 배우는 135cm의 키작남이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보면 바로 알 것이다. 그 배우의 키처럼 극단적으로 작기만 하면 당연히 그런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릴 여성은 희소할 것이다. 하지만 피터는 키 빼고 많은 걸 가졌다. 다른 건 몰라도 키만은 중요시하게 여기는, 키가 성적 이끌림의 필요조건이라는 여자를 제외한다면, 피터를 거부할 여자는 드물지도 모르겠다. 물론 왜소증이라서 음경 역시 왜소할 것이 예상되므로, 성교를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단지 피터의 작은 키만이 그에 대한 거절의 근인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작은 몸집을 제외하고는 알파메일의 조건은 다 갖춘 남성의 표본이다. 그런 남성에게 어찌 매력을 아니 느낄 수가 있으랴? 그러나 우리는 피터가 아니다. 키 작은 한남들은 피터가 아니다. 키작남 하니까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또 있다. BJ(blowjob) 세자라고 아프리카tv에서 방송하던 키 150대 남성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몸집에 비해 성격이나 행동, 언변이 꽤나 남성적이었다. 여자친구가 되게 예뻤는데 키가 140대였고, 방송용 정략 연애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주 여친을 휘어잡더라. 타고난 열등성이 후천적 조건을 다 뒤흔드는 건 아니라는 걸 그런 예외적인 케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대체로 그 키로는 기죽은 채 쭈구리로 살 확률이 높다.
어쨌든 나를 죽이기만 하는 표준에는 거부할 필요가 있다. 나를 성장시킬 표준이라면 따를 필요도 있다. 반드시 성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를 즐겁게 할, 내 삶에 조금의 행복을 가져다줄 나아짐이라면 뭐가 되었든 시도해 볼 필요는 있다. "걔는 작은 키 때문에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짓이 이상해서 못 하는 거라니까?"라던 친구의 말에, "그 이상한 짓이 작은 키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