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3. 19:59ㆍ생각
- 여자가 어떤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하면 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싶어야 할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아이를 갖는 두려움을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현재는 결혼이나 아이 생각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할 만한' 여자가 나타나면 생각을 바꿔 먹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애를 갖는 건 별개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상대를 진정 좋아하면 애를 갖고 싶어 할 거라는 게 99%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시대나 문화적 양상에 따라 가변적이라 고정된 경향성이 나타나는 건 어려울 거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이는, 언제나 유사하게 치우친 경향성이 나타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과 동치이다.
- 여자는 적나라한 진실보다는 각색된 허위에 불쾌감을 덜 갖는다. 여자의 프사는 자신의 평균적 외모가 아니라 순간의 특출함이고, 그것조차 각색된다. 그리고 남자에게도 그럴 것을 요구한다.
- 위선자에도 두 부류가 있다. 둘 다 악한 기질을 가진 것 같으나, 하나는 그냥 자신을 놔버리는 경우,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더 도덕적이려고 자신을 통제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다. 후자는 바람직하지만 전자는 상종하면 해를 입는다. 이런 이들이 요즘에 자주 보이는데, 나름 자기 딴에는 솔직함의 어필인 양 쿨 내를 풍기며 자신을 방기하는 행위를 자랑한다. 별로 좋아 보이진 않으며, 그런 솔직함은 오히려 그들을 기피하게끔 유도한다.
- 남의 개인사가 대강이라도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안부를 묻지 않는 이유는, 자칫 범람할 말의 쓰나미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나는 누군가의 속속들이까지는 알고 싶지 않다.
- 천천히 친해지다가 성적 호감이 있다는 시그널을 넌지시 던지는 전략은 굉장한 시간적, 심적 부담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연애의 관심이 있다고 접근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전략을 수정하는 게 아니라 타깃을 수정한다. 썩 좋아하는 이라 어떻게든 쟁취하고픈 자가 아니라면 이제는 굳이 상대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따라서 첫인상에도 호감이 생길 만한 정도의 비주얼은 갖춰야 한다. 내 외모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의 마음을 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처음부터 나에게 호감을 가진 상대를 공략하는 것만큼 시간 절약에 일사천리인 경우가 없다.
- 손해 보는 거 싫어하는 사람 곁에서는 손해 볼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 애인을 택할 것인가 100억을 택할 것인가? 애인을 너무 사랑하고, 애인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애인을 선택하겠지만, 애인이 배신할 수 있다는 조건만 충족해도 100억을 택할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해도, 척애는 힘든 법이다.
- 여자는 남자가 외모 하나만 달리고 다른 것이 다 괜찮으면 그래도 한 번 만나보지만, 남자는 여자가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외모가 달리면 만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자에게 여자의 외모는 성적 관심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 몸만 탐하고 싶을 만큼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 그런 여자에겐 사랑도 반드시 생긴다.
- 여자를 만나고 싶긴 한데 여자에 시간과 정력을 쏟긴 아깝거나 귀찮다. 참 곤란한 상황이다.
특히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많은 인지적 부담을 필요로 한다. 결국 자신감, 그러니까 저항감의 극복을 필요로 하는데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 "오늘 바람이 많이 부네"
"그래? 아침엔 안 불었는데"
왜 난 저렇게 대답했을까? 아침엔 안 불었어도 잠깐 뒤에 불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아침엔 안 불었다고 했으니 지금 부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오히려 오늘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 친구의 발언이 오늘 전체를 지시하는 것이니 잘못된 지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 나는 아침엔 안 불었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뉘앙스 상 아까는 안 불었는데 왜 지금은 부느냐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 단순히 아까는 바람이 안 불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한 대답이 아니었다. '아까는 안 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부느냐?' 이런 식으로 들릴 만한 뉘앙스로도 보인다.
- 미시이기 때문에 꼴리는 게 아니라 꼴리는 여성이 미시가 된 것이다.
- 누군가는 나에게 보살이냐고 한다. 어떻게 말을 그렇게 착하게 하냐면서. 근데 사실 이러한 이유는 성격 때문이다. 나는 논쟁을 즐기지만 면전에서 맞아야 하는 분란에는 소극적이다. 성격적으로 잘 대처하기가 어렵다. 표정 관리도 잘 안되고 임기응변이 떨어져 적절히 대응도 못하며 무엇보다 마음이 약해 쫄 때(불편할)가 많다. 그래서 그냥 분란을 만들지 않는 쪽으로 나를 발달시켰다. 그래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넘어갈 때도 많다. 다름을 인정하면 화가 덜 나기도 하는데, 최대한의 이해심(관용)을 발동시켜 나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기도 한다.
- 사람들은 쉽게 말하는 능력을 이해의 완성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다. 누구나 다 이해가 되게끔 설명한다는 게 말이 쉽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게끔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애초에 누구나 알 만한 것을 설명한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더 나은 유식을 지향한다면, 즉발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공을 들여 이해해야 하는 말을 하는 사람과 어울릴 필요도 있다. 지잡대 교수들의 강의가 괜히 후진 게 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이해가 낮은 자를 이해시키려면 그 무언가에 대한 설명을 간략화할 수밖에는 없다. 내가 하는 말을 돌이켜 보더라도 그렇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가 쓰는 이 용어가 적절할지를 계속 따져가며 쉬운 대체어를 고르곤 한다. 물론 같은 의미의 어려운 용어를 쓸 필요는 없고 그것이 사고의 지평을 좌우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무지자와는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나보다 수준이 조금 높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 클럽에 간다. 스테이지에 나간다. 잘 놀지도 못해 흐느적거리는 거리는 고추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리듬을 타(는 척하)며 흐느적의 대열에 합류한다. 남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술을 먹지도 않아 남 신경이 더 쓰인다. 내 모양새가 얼마나 추할지 제3자로 빙의하여 나를 검열한다. 그래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저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클럽 같은 데는 가지 않는 게 좋다. 춤을 배워서 현란하게 몸을 놀릴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억지로 클럽에 적응하려는 샌님들은 도서관에서 스펙업이나 하는 게 낫다.
- 성매매 특별법의 정당성 기준은 통념에 의존한다. 통념에 의존하는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 따라서 성매매 특별법이 불변의 공리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법이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