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2. 21:42ㆍ생각
- 일본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 취미 스무 개를 보니 대개가 정적인 것들이더라. 그것들이 여성스러운 것들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여성들이 많이 하는 것들이더라. 특히 아이돌 오타쿠를 제일 혐오했는데, 아이돌 오타쿠인 여성들조차 아이도루 오타쿠인 남성을 혐오한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쌍이거나 유쌍이려고 하는 여자들이 무쌍인 남성을 선호하는 것처럼 단지 비-내로남불적 취향일 수 있다.
- '설빔하다'
저번 벽창호 사태 때처럼 반지성주의 논란이 불거진 어휘다. 나는 94년생이고 뜻을 모르는 어휘다. 어렸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든 책에서든 접했을 수 있지만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는 듯하다. 워낙 안 쓰거나 듣지 못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네티즌의 반응을 보니 상당히 많은 이들이 설빔하다까지는 모르더라도 설빔의 뜻은 알고 있다. 거개가 바람의 나라나 테일즈 런너 같은 게임을 통해 알았단다.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야 할 단어일까 싶다. 단오가 언제인가, 단오엔 뭘 하는가? 동지는 무엇을 뜻하는가? 경칩은 뭔가? 경첩과의 차이는? 이처럼 우리는 애매하게 아는 것들도 많고,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많다. 꼭 알아야 한다고 판단되는 것들도 어떤 이들에게는 알 필요가 없다. 난 영어의 to 부정사 원리를 모르지만 그것을 모르고 살아도 문제가 없는 맥락에서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것을 알고 싶지만, 그것을 왜 알아야 하는지는 개인의 목적의식에 의존한다. 모두가 상식이란 걸 알 수는 없다. 애초에 절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알아야만 상식인 것이지, 이제 와서 논쟁이 붙는 게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의 상식은 지금의 상용이 아니기에, 지금의 상식이 아닐 수 있다. 설날이 구정인지 몰라도, 구정이 구정물인지 신정과 관련된 개념인지 몰라도 설을 쇨 수 있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무한한 관용도 문제이지만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반지성주의의 탄압 역시 문제다. 나는 단지 내가 설빔하다의 뜻을 몰라서 나와 같은 이들에 대해 관대한 게 아니라, 내가 모를 수 있는 것을 남들은 알거나 내가 아는 것을 남들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관대할 수 있다. '모르면 지금부터 알면 될 일~' 하며 쿨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상식에 대한 고찰이 없이 나오는 태도다.
- 설빔이 중학교 수준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혹 그것이 중학교 교과과목 내에 언급되는 단어라고 하더라도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책을 제대로 보지 않는 등, 기억에 담을 수 없는 상황이나 맥락에 있었다면 그것을 모른 채로 클 수 있다. 나 역시 영어 기초 문법을 모른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지만 나는 그것을 기억에 담아 두지 않았다. 나는 몰상식한 사람인가? 절대다수가 to 부정사의 의미를 안다면 나는 상식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게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특정한 조건 하에서 나는 비상식의 범주에 들지 않을 수 있다. to 부정사가 상식이 아닌 맥락에서 나는 비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내가 그런 맥락에 들고 싶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설빔이 상식이라고 여기는 맥락에는 들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설빔 따위 알 필요가 없다고 나 스스로가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학의 공리를 모르는 게 더 부끄럽지, 설빔이니 설빙이니 삼고빔이니 모른다고 쪽팔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벽창호 때도 마찬가지. 쪽팔림보다는 화가 나더라. 왜 내가 그걸 모른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아야 하는지 참 답답하더라. 나는 반지성주의를 대변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상식이라고 믿는 걸 남이 모를 때 반지성주의 들먹이며 계도하려는 꼴이 그다지 현명한 판단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항심이 드는 것이다.
- 법률가에게 어떠한 상용되는 법률 용어는 상식이다. 그런 법률가에게도 생소한 용어가 있을 수 있다. 법률적 맥락에서 법률적 상식이 아닌 용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것처럼 과연 설빔은 국민적 맥락에서 국민적 상식이라고 봐야 할까?
- 내가 생각하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란, 논리적이지 않고, 곧이곧대로 직관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다 따르니까 따를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식의 사고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게 비상식이 아닐 만한 맥락이 있음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
- 키작남들이 머리에 물들이고 복잡한 패션에 꾸러기 짓을 하는 게 꼴불견이라는 생각은 원초적 거부감에 기인할까? 그러한 생각이 형성되기 위한 복합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즉, 어떤 생각이 오직 나로부터 나왔다고 단정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없다면 즉발적 직관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 고향? 내려와서 버스를 보니 광고 표지가 붙어 있다. 지금 보니 서울만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 여자는 눈으로 홀린다.
- 선천적 동성애자가 존재할 수 없다면 모든 인간은 반드시 선천적 이성애자여야(였어야) 한다는 건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 쉽게 쉽게 성교하려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전에 내가 매력적이어야 하겠지만, 내 말의 저의는 남자가 성적으로 매력적이고 아니고와는 별개로 성교를 갈망하고 결행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남자가 그러는 것처럼.
- 자신의 키가 작기 때문에, 혹은 크기 때문에 남자의 키가 커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전제의 가부와 상관없이 결론이 참이어야 함을 함축한다. 그냥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데 굳이 이유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은 남성이, 자신의 발기된 음경이 왜소하기 때문에, 혹은 비대하기 때문에 여자의 질 내부가 좁아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자는 소추든 대추든 질이 좁은 여성을 선호한다. 여성은 이에 발작하며 자신들의 선호는 건전하며 너희들의 선호는 불건전하다고 내로남불을 시전한다. 여자들은 키 선호가 성적 선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성의 유방 크기든 골반과 둔부의 유려한 굴곡이든 잘록한 허리나 탐스러운 허벅지든 모두 성적 선호 대상이다. 동시에 남성의 넓은 어깨, 탄탄한 대흉근, 우람한 팔뚝과 탐스러운 허벅지, 섹시한 복근 역시 성적 선호 대상이다.
- 왜 집에만 내려오면 성교가 하고 싶을까.
- 합법 유흥업소에 늦은 나이에 처음 가본 남성에 대해 여성들의 평가는 갈릴 것이다. 병신, 숙맥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건전하고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건에 따라 비율이 달라질 것이다. 가령 존못 루저 찐따남에 대해서는 유흥업소를 극혐하는 여성이라도 병신 취급할 것이다. 왜냐하면 찐따남의 병신성이 비유흥의 건전성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찐따에게 유흥을 늦게 가본 경험이란 스펙이 아니라 애휴 찐따가 그럼 그렇지 식의 천대를 받게 하기 딱인 것이다. 반면 상남자, 수컷의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남자가 애초에 유흥업소를 갈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간다고 하더라도 여성은 관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남자는 그런 델 가지 않아도 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비약이긴 한데 어쨌든 나 역시 별 성적 매력도 없는 여자가 비싸게 구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게 없고, 예쁜 여자가 성적으로 개방적인 것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다.
- 안전벨트 착용 강제는 자유롭게 다치거나 죽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리의 박탈이 사회 질서를 위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임의적이고 이현령비현령이다. 그 자유의 박탈이 사회 질서 보장에 압도적일 때 그것은 임의적으로 허용될 것이나, 그 압도적 이익이 절대적 권리를 박탈할 만큼의 우월성을 가지는지 비교형량 할 필요가 있다.
- 큰고모보다 훨씬 어린 우리 엄마가 몸이 더 안 좋은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개개가 처한 맥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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