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19

2023. 2. 22. 21:40생각

- 뚱뚱한 여자는 몸집에 비해 얼굴에 살이 덜 붙어도, 이목구비가 뚜렷해도, 살만 빼면 무조건 복권 당첨일 거라는 예상이 돼도 이상하게 성적으로 끌리지가 않는다.

- 자기 얼굴이 너무 싫은 게 아니라면 성형은 최대한 신중하자.

- 그 누구도 당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져 주지도 않을뿐더러 애초에 책임도 없고, 당신의 선택을 극구 말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부모도.

- 외모 조금 바뀐 것도 이렇게 신경 쓰이는데, 삶의 형태의 변형인 죽음은 얼마나 무서울까.

- 앞으로, 내가 잘 됐다고 남에게 함부로 권하거나 조언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으리.

- 관계에 살고 관계에 죽는 여자에게 천억 가진 황금 고블린(돈 많은 못생긴 남자)이 무슨 소용이랴.

- 신은 논리적 가능성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가능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물리 법칙을 초월해야 하기 때문. 그렇다고 그것이 논리적 정합성을 넘어설 수는 없으니, 신은 논리적 가능성과 물리적 가능성 사이에 있는 무언가다.

- 나쁘지 않음은 좋거나 좋지 않을 수 있음과 동치이지 좋지 않음과 동치는 아니다.

- 수면마취 두 번 해본 경험에 따르면, 깨는 시점에 꼭 마약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마치 내가 디지털 월드로 빙글빙글 돌며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 중학생 때 나는 주말에 어디 나갈 일이 있으면 입을 옷이 없어서 교복을 입었다. 한두 번 정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가지고 있던 사복이 부끄러웠나 보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참 주체의식이 없었지 싶다.

- 나는 말을 하고 싶은 욕구보다 말을 듣기 싫은 욕구가 더 커서 차라리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 우리 아빠는 부자 아빠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아빠까진 아니나 굳이 분류하자면 가난한 축에 속하리라. 금융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는 부자 아빠인가? 그렇다고 볼 수만도 없겠다. 당신 딴에는 지적 자부심이 있을지 모르나, 자식인 내가 느끼기로, 당신께선 자식을 어떠한 괜찮은 길로 인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 웹 소설을 보면, 확실히 남성의 글에선 좆고딩이 퇴고도 없이 휘갈겨 쓴 것 같은 투박스러움이 느껴지고, 여성의 문체에선 유려함이라는 게 물씬 묻어난다.

- 성형이 현명하거나 그른 판단이라거나, 그것의 되돌림이 현명하거나 그른 판단이라고 딱 정해서 평가하긴 어렵다. 한 번의 결정이 현명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형을 물림으로써만 얻을 깨달음이라면 실수 한 번 해보는 게 현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 남 지적하는 사람 치고 결점 없는 사람 없더라. 놀라운 건, 자기가 지적한 부분에서조차 결점을 보인다는 것.

- 나이 문화를 없애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연에 의해 자리 잡힌 위계가 하위계자에게 부당하기 때문이다.

- 길냥이들이 겪는 기한飢寒에 비하면, 그들에 의해 겪는 우리의 불편은 조금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계를 독점하여 그들에게 조금의 터전도 내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 앞에서는 개새끼 쇠새끼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다르게 진심으로 위한다는 츤데레적 남성 친구 관계를 진정으로 친한 것이라고 보는 풍조가 있다. 나는 이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데, 나는 그 정도로 허물 없이 터놓고 툭툭 건드려 대는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면서 그렇게 허울 없고 이물 없이 쉽게 쉽게 대했던 친구가 둘 밖에는 없다. 나는 점잖은 노잼이기에 상대도 나를 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점이 좋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게끔 하는 재주가 있고, 나는 그것을 나를 지키는 용도로 활용한다.

- 모든 개비짱은 그의 마누라, 즉 누군가의 어머니가 꼴려서 음경을 들이댔다. 우리들의 부모는 구강성교와 항문 성교를 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 말 많은 사람은 남 생각을 안 한다. 남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말을 많이 할 수가 없다.

- 나는 친구나 지인의 여친을 되도록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여친이 나에게 상상 겁탈 당하도록 허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질시의 이유도 있는데, 그들의 여친이 예쁘면 빡치기 때문에 꼭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애당초 내 본심을 사실대로 얘기하고는 보여 주지 말라고 한다.

- 해서 후회하는 경우는 그것이 비가역적일 때이다. 따라서 무엇을 행할 때 그것을 얼마만큼 되돌릴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 무언가를 지적하면 자신이 지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지적하기가 꺼려질 때가 많다. 가령 약속 시간 늦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했다면 나는 어떻게든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발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로남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격한 자기 통제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리끼지 않고 지적하는 것은 '말 많음'이다. 나는 말 많은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모든 관계의 초장부터 선언한다. 이는 많은 이들을 걸러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떤 경우에는 필요한 사람까지도 멀어지게 하지만, 말 많은 필요한 사람은 그 필요를 넘어서는 해악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사실 필요가 없다.

- 내가 남들보다 몸이 좋은 이유는 처먹는 욕구를 남들보다 더 억제했기 때문이고, 남들보다 빈한하고 무지한 이유는 공부하기 싫은 욕구를 남들보다 더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 왜 이렇게 사람들은 남의 시간을 못 빼앗아서 안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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