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있는 드립 구사하는 방법

2023. 2. 22. 21:40생각

이 글은 일상에서의 센스 있는 말 하기를 위한 필자의 숙고와 연구의 집적이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몇 시간도 생각 안 함).

나는 말을 못 한다. 여기서 말을 못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말을 재미없게 한다는 것인가, 신체적·정신적 이유로 말을 입 밖으로 제대로 내뱉지 못한다는 뜻인가? 전자는 성향이나 사회성의 문제이고 후자는 기능 상의 문제이다.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얘기라도 텐션이 떨어지게 구사한다면 아무리 내용이 재미있어도 맛깔나게 살리지 못하여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분명히, 말의 기능성 문제는 말을 잘하기 위한 필요조건 정도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의 경우, 전자의 기능이 결여됨이 명백하고, 후자의 기량 역시 현저히 떨어짐이 자명하다. 후자의 기본적 기능성 문제 일부는 어느 정도 해결했다. 발음이 좋지 못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심한 비음이나 하이톤, 빠른 템포로 인한 발음 뭉개짐 현상 따위의 자질구레한 문제는 여전히 잔존해 있다. 이것들을 꾸준한 의식적 연습을 통해 천천히 해결한다고 치더라도, 낮은 텐션과 영혼 없는 리액션 따위의 문제는 대화를 무미건조하고 맥빠지게 만드는 데에 지대하게 일조한다. 하지만 본고는 이러한 기능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지 않았다. 내용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연구는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센스 있는 드립과 그렇지 못한(실패한) 많은 사례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공통분모를 파악하여 핵심 원리를 추출해 낼 것이다. 여러 성공하는 드립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들의 유형들은 다양할 것이고, 이러한 기본 원리를 숙지하게 된다면 이것들을 응용하여 여러 사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식을 단순히 머리로만 안다고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터다. 임기응변 능력은 오직 개인의 능력만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주눅이 들 만한 관계와 환경에서 어느 누구나 센스 넘치고 능글맞은 애드리브를 거리낌 없이 구사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초 데이터를 철저하게 쌓고 평상시에 꾸준한 연습을 통해 체계적으로 체화시킨다면 부담스럽고 불편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이 터질 가능성이 충분히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구는 필자의 입담 향상을 위해 시행되었지만, 필자뿐만 아니라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머 있는 남성이 되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 한국의 많은 노잼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본 연구에서 제시되는 여러 사례의 모범 답안은 없다. 또한 '재미'의 객관적인 기준 또한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필자의 경험 데이터와 주관적인 조사를 통해 연구가 진행될 것이므로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신빙성 높은 결과를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많은 이들의 센스력을 함양하는 데에 지대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이 재미없다는 건 함정)

좋은 드립들은 관통하는 단일한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 여기서 '좋은' 드립의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협의의 의미로 한정하도록 한다. 일차적으로는 보통의 젊은 여성에게 '저 남자 센스 있다', '입담 좋다', '재밌다', '유머러스하다', '느낌 있다' 정도로 평가될 수준의 언어 구사력을 뜻하고 그것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러한 애드리브가 여성에게 성적 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에 한해야지, 성적 어필이 되는 것과는 반대로 개그캐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지경에는 다다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능력은 관계적·상황적 맥락을 잘 파악하는 능력, 즉 사회적 지능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례를 통해 하나하나 따지도록 하겠다.

본 연구가 도움이 될 대상이란, 씹노잼, 최악의 無 텐션, 영혼 없음, 뻔함의 극치, 임기응변 제로, 사회적 지능 낮음, 공감 능력 결여, 학습능력 결여, 대화 데이터 전무 혹은 최저 등의 수식을 달고 있는 남초 사회의 극 내향형, 집돌이, 겜창, 아싸, 찐따인데 사회적 관계에서 조금이나마 말을 잘하는 인간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부류이다. 필자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다. 낮은 텐션. 분명 문제다. 단, 낮은 텐션은 언제나 불리한 것이 아니다. '낮은 텐션 + 재미있는 드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경우 많은 사람을 빵 터뜨릴 수 있고, 부조화를 이루는 경우 노잼 분위기로 이끌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드립이 발화되는 맥락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능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는 않겠다고 앞에서 언급했었다. 사례를 통해 잠깐씩 언급하는 정도로만 끝내겠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뻔하고corny(진부함trite, 고리타분함stale, 예상됨, 따분함banal, 시시함hackneyed) 단조롭고(monotonous) 지루하다(dull, boring)는 것이다. 다음 문제를 풀어 보자.

예시 1)

"재벌집 막내아들 이성민 연기 존나 잘하지 않냐?"

" ? "

위 대화에서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보통의 경우의 필자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어 진짜 잘하긴 하더라."

 

어떤가? 대답에 어떠한 센스가 보이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저기에 텐션까지 낮다면 정말 최악의, 혹은 아무 소득 없는 리액션이라고 할 만하다. 여자와의 대화라면 더욱 모범적이지 않는 대답이다. 뻔하고, 센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미건조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센스 있는 답변이 될까? 단순히 텐션을 높여서 '와, 존나 찰지게 잘하더라. 거의 인생 배역인 듯. 쏼라쏼라~~~"라고 하면 그나마 성의 있는 리액션이라고 할 만한가? 내가 원하는 센스는 이러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센스라기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의존하는 답변 같다. 이성민의 연기에 평소에 놀라고 있고, 친구의 질문에 공감까지 한다면 개인의 성향 차이에 따라 답변의 장단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뻔하다. 센스 있는 답변이라고 할 만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센스 있음'이란 무엇인가? 획기적인 발상, 예상치 못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맥락을 무시하지 않는 적정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애드리브를 뜻한다. 여기서 필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싶었으나 필자 자체가 워낙 센스가 없는 터라 곧바로 제시할 수 없음에 양해 바란다. 고로 여러 답안을 제시해 볼 터인데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하는 편협한 센스임을 감안해 주길 바란다.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독자들도 계속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센스 있는 애드리브들을 관통하는 기초 원칙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예시 2)

"머리숱이 많네."

당신이라면 이것을 어떤 센스 있는 표현으로 대체하겠는가? 필자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머리에 인플레이션이 왔나 보네."

이것은 오늘 일상생활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애드리브이다. 내 머리에 곧바로 떠오른 것인지, 어디서 주워들은 걸 무의식중에 떠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이 표현이 굉장히 센스 있다고 자평한다. 철저한 자기 객관화가 안 된 평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억지로 웃기려고 하지 않는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어떠한 텐션에서도 상용 가능하고, 어렵지 않은 전문 용어가 포함되어 다소 이지적으로 비칠 수도 있고, 바로 이해가 용이하고, 경우에 따라 능글맞고 여유 있어 보일 수 있는 고급 진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센스 있는 애드리브라면, 여기에 담긴 기초 원칙은 무엇인가? 이 경우에는 뻔하지 않은 용어를 뻔한 용어가 사용될 수 있는 곳에 적절히 배치했다는 것이다. 즉 이는 숱이 많다는 표현을 인플레이션이 왔다고 함으로써 센스 있는 대체가 이루어진 케이스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오늘 실제로 필자가 겪었던 일).

예시 3)

지하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린 상태에서, 지하철 문이 언제 닫힐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 여자가 "예수 믿으세요!" 하고 외치면서 지하철로 느긋하게 걸어가는데 이를 보고,

"지하철 놓치는 것보다 천국행 열차 놓치는 게 더 두려운 듯"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친구에게 저 문장 그대로 얘기하지는 않았었다. 지금 쓰면서 조금 각색한 것이다. 웃음이 터질 만한 애드리브는 아니지만, '천국행 열차'라는 표현이 다소 일상적이라는 점, 지하철과 천국행 '열차'의 관계성을 이용했다는 점, 이해가 용이하다는 점, 상황의 비일상성이 애드리브의 효과를 증폭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종교라는 주제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는 점에서 나름 센스가 있는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 정도는 생각해 내기 어려운 애드리브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도해 봄직하다. 이 드립에 담긴 기초 원칙은 '관계성'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에, 어떠한 대상어를 다른 재미있고 공감되는 표현으로 대체함으로써 재미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지하철 역사라는 상황적 조건 하에서 종교와 천국행 열차라는 관용 표현이 곧바로 떠오를 수 있었기에 발휘 가능한 센스였지, 다른 조건이 더해졌다면 다른 식으로 애드리브가 구사되었든지, 별다른 획기적인 생각이 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인적인 능력인 임기응변도 중요하지만 환경적 맥락 역시 애드리브 구사에 중요한 요건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없는 드립은 삼가야 한다. 특히 게임이나 스포츠. 나는 롤을 아예 모른다. 스포츠도 관심이 없다. 남들이 스포츠 얘기하면 귀를 닫는다. 누가 봐도 뻔하게 롤 드립인 것 같으면 일말의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아..." 하고 만다. 만화영화 역시 마찬가지. 유튜버 흑자가 구독자 몸평 콘텐츠에서 몸 사진을 보고 '탐켄치'를 닮았다고 빠개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나루토를 보지 않았기에 이 드립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검색해서 탐켄치의 형상을 알고, 그것이 그 구독자의 몸과 비슷하게 생겼음을 알았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 드립은 이미 '아...'로 끝나버린 것을.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군대 얘기만큼 악수를 두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재미있게 군대 썰을 풀어도 이미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는 여성이 아니라면 본전도 못 뽑는다. 군대 얘기는, 특히 길게 풀어야만 하는 썰이라면, 철저히 금하자.

다음은 한 유튜브 영상에서 나온 애드리브이다.

예시 4)

못생긴 남자 사진을 보고,

"어느 바다 오징어야?"

여기서 포인트는 '어느 바다'이다. 못생긴 남자를 '오징어'라고 비하하는 건 이미 일상의 클리셰로 자리 잡았다. 사례의 화자는 클리셰를 한 번 감았다. 즉, 클리셰를 센스 있게 포장했다. 다른 포장지보다 해당 포장지가 더 센스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오징어가 여러 바다에 서식하고, 못생긴 남자 역시 여기저기 분포한다는 공통 맥락을 장소성과 결부 지었다는 데에 있다. '갑오징어야, 숙회야?', '얼굴에 먹물 많이 묻었네', '한 번 데쳐진 오징어인가?', '(주변 남자들을 돌아보며) 너네 서식지가 같나 보네' 따위의 드립보다 간결하고 깔끔하다.

겸손이 습관인 우리 같은 부류는 칭찬도 겸손하게 받아낸다. 문제는 이것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 눈을 본 친구가 "너 눈이 옆으로 길다. 나는 좁은데."라고 칭찬했을 때(단 여기서 눈이 옆으로 길다는 사실이 칭찬임을 서로가 인정한다고 하자), 나는 "아냐 너 보고 그렇다는 생각 든 적 없어."라고 하며 상대의 겸손을 추켜세우는 반응을 보였다. 이 경우 그냥 "얼굴도 큰데 눈으로라도 여백 메워야지" 하고 능청스럽게 인정하고 넘어가면 될 일인 것을, 굳이 공자도 아닌 것이 사양지심 발휘한답시고 재미없게 받아칠 필요가 무엇인가. 상대의 칭찬은 칭찬으로 수용하고 대신 다른 부족한 점을 부각함으로써 겸손을 잃지 않는 방법은 다양하다. 못생긴 얼굴 부위 중 그나마 나은 거 하나 칭찬해 줬다고 뻐팅기는 작태는 꼴 보기 싫은 법이다. 기껏 뭐 하나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조합이 부자연스럽다면 단지 상등품 오징어가 될 뿐이다. 어쨌든 지나친 겸손은 언어의 한계를 제한하여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언표를 유도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물론 노잼 드립이 예절로부터 인과적으로 기인하는 것은 아니나, 예의를 차리기 위해 선을 타는 드립이 현격하게 자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센스 있는 표현의 많은 부분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드립으로부터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분에 긴장감 높은 재미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시 5)

결혼한 직장 동료가 나에게 묻기를, "여자친구 있으세요?"

이에 나는 "아니오"

참 뻔할 뻔 자요, 놀라지 않을 no 자다. 이렇게 답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모범 답안은 이것이었다.

"마누라 친구 좀 소개해 주세요"

무미건조하게 없다고 직접적으로 언표하지 않으면서, 간접적으로 돌려서 넌지시 언표하는 센스.

예시 6)

예시 5의 동료는 31살인데 살짝 노안으로 보인다. 직원 a가 예시 5의 동료(b)에게 나이를 물은 뒤 답을 듣고는 "31살로 안 보여요"라고 했더니 다른 동료 c가 "41살 같아요"라며 듣는 사람 무안하게 인신공격을 자행했다.

외모같이 민감한 부위, 특히나 결점이 있는 곳을 건드리는 애드리브는 매우 좋지 않다. 남을 깎아내려서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추한 게 없다. 애초에 인정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남 기분 생각 안 하고 막 내뱉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해 가면서 센스 있다는 소리 듣기를 지향하자.

 

예시 7)

영화 공조 2에서 현빈(북한인)이 장어를 먹으면서 曰,

"기름이 혁명적으로 흐릅니다"

이 대사를 듣자마자 웃겼고 곧바로 감탄했는데, 북한의 사상성과 혁명의 의미가 연관되고, 윤기가 좔좔 흐른다는 표현을 북한식(?) 극적 어휘로 버무렸다는 점에서 센스 있다고 할 만했다.

예시 8)

일하다 보면 고객들이 반말을 찍찍 싸지를 때가 있다. 오늘도 어떤 노인네가 "어이" 하길래 속으로 어이가 없네... 하고 생각한 건 아니고, '어의는 조선시대에서나 찾지', '저 한의대 안 나왔는데요' 등, 어의御醫와 관련된 애드리브가 떠올랐다.

예시 9)

나는 스파(목욕탕)에서 근무하는데 탕이 여러 종류 있다. 열탕, 냉탕, 버블탕, 안마탕, 온탕, 이벤트탕 등. 어느 날 직장 동료가 몸이 안 좋은지 죽겠다는 소리를 하면서 曰,

"나 죽으면 이벤트 탕에 뿌려줘"

하는 것이다. 굉장히 센스 있는 애드립이라고 생각됐다. 센스 있는 말은 맥락이다. 주변 지형지물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센스 있는 말을 좌우한다.

예시 10)

근무지에는 locker가 세 구역으로 되어 있다. A부터 C까지. 나와 동료 친구가 마감 근무였을 때, A 로커를 청소해야 했었다. 그런데 그날 빨리 가고픈 마음에 청소할 범위가 가장 적은 B 로커를 청소하고 갔다. 다음 날 친구가, "형(매니저), 어제 B 라카 청소했어"라고 하니 매니저 曰,

"B 라카로 맞을래?"

B 로커는 사물함 개체를 지시하는 게 아니다. 대학교 같은 개념이다. 서울대학교란 무엇인가? 정확하게 실물을 가리키기 어렵다. 서울대학교가 가리키는 대상은 굉장히 애매모호하다. 'B 라카로 맞을래' 드립이 어떤 느낌이냐면, '서울대학교 인문대 건물에 들어간다'를 '서울대학교에 들어간다'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 B 로커는 하나의 로커가 아니라 B 구역을 가리킨다. 구역, 즉 어떠한 '장소'로 사람을 어떻게 때리겠는가? 이는 언어로 때린 것이다. 참으로 센스 있다고 느꼈다.

예시 11)

중앙 사무실에서는 관리자들이 근무한다. 이 관리자들은 깐깐한 면도 있고, 어쨌든 직원들을 관리하기에 다소 껄끄러운 관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불편한 관계다. 여하튼, 여기서 근무하는 주임이 근무지 내부에 바퀴벌레가 나올 만한 길목에 끈끈이 트랩을 설치하라고 했단다. 내가 이 말을 친구에게 전했더니 친구 曰,

"중앙 사무실에 설치하면 되겠군"

친구는 중앙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관리자들을 바퀴벌레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직원들이 그들을 벌레 취급까진 아니더라도 껄끄러운 자들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다소 과격하긴 하나 납득할 만한 애드립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인신공격은 그다지 좋지 못한 애드립이다. 아무리 센스 있다고 한들, 다소 안전하고 건전한 애드립을 구사하는 게 낫겠다. 저질에 인신공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센스 있는 애드립을 구사할 수 있다.

예시 12)

일하다가 다른 동료의 업무를 잠깐 도와줬는데 그 동료 曰,

"수호천사네"

이에 나의 대답은?

"ㅎㅎ 아니에요"

전형적인 찐따 특징이 발현되는 걸 도대체 언제쯤 막을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말하고 곰곰이까지도 아니고 조금만 생각해 봐도 충분히 더 능청스럽고 센스 있게 대답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왜 직접적인 상황에만 직면하면 당황하고 단조로운 대답만 하는지 모르겠다. 습관이 매우 잘못되었다. 이는 성격적인 문제도 크다. 워낙 칭찬의 수용에 인색하다 보니, 별것도 아닌 겸손으로만 일관한다. 차라리, "제가 (남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요." 혹은 "에이 천사라뇨. 그쪽(여자)이 천사죠. 날개 없는 천사(하고 찡긋 해 주면 팬티가 서서히 젖어 오리라)"라고 능청스럽게 받아 쳐야 한다(두 번째 대답은 농담).

대충 글을 마치면서, 여러분은 예시 1의 답변으로 적절할 만한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생각한 답변은,

"사실은 송중기가 아니라 이성민이 (진양철로) 빙의한 거 아닐까?"

당장 연결할 수 있는 재료들은, 재막아(쟤 막아!!!)가 빙의물이라는 것, 배우가 배역으로 빙의했다는 것을 돌려서 표현.

생각나는 좋은 사례가 있으면 계속 보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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