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제는 이상한 제도인가?

2022. 4. 7. 20:47생각

- 상속제는 허용되지만 연좌제는 허용되지 않는 이유

- 왜 부를 물려받는 건 정당하고 죄를 물려받는 건 부당한가?

한 번 상상을 해봅시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유산을 1억을 물려받게 되었어요. 기분이 좋으신가? 네 그럴 겁니다. 다른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부모가 죄를 지었는데 그걸 나한테 책임을 물어요. 이때도 기분이 좋으신가요?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죠. 전자는 흔히 아는 상속제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후자는 연좌제로, 이상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선 법으로 금지하고 있죠. 물론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동시에 빚도 물려받는 경우가 있지만, 한정 승인 제도를 통해 자식의 대리 책임의 면탈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아무래도, 상속제 존속과 연좌제 금지가 일관적인 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둘 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계수하는 행위'인데 하나는 합법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이니, 이로부터 의구심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법률에 대한 몰이해가 얼토당토않는 무의미한 질문을 낳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사법 체계가 흔들릴 공산은 희박하거니와, 이런 유의 이의 제기는 지성인이 되고자 한다면 응당 갖춰야 할 소양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궁금증 해결 차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법적으로가 아니라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의 재력은 내가 일군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부모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도록 종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의 의지로 발생한 범죄의 책임이 자식에게 있는 경우는 드물어 보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대가 없이 계수하는 행위'가 부당하지 않다면, 재산 상속이나 연좌제는 동시에 부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좌제는 부당하다고 평가됩니다. 즉 이러한 결과에 따르면, '내 것이 아닌 것을 대가 없이 계수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부당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내 것이 아닌 것을 대가 없이 계수하는 행위'만으로는 어떤 사안의 당부당을 논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논리는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이중성과 내로남불을 면피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어떤 여성이, 자신이 클럽에 가서 춤을 추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가 클럽에 가는 건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여성은 내로남불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성에게는, 적어도 이 상황에서, 여자와 남자가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여성이 내로남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클럽에 가는 사건이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추론합니다. 이는, 남자가 클럽에 가는 것과 여자가 클럽에 가는 것이 인간이 클럽에 가는 것이라는 일관된 범주 속에서 논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의 사례의) 여성의 생각은 다릅니다. 남자가 클럽에 가는 것과 여자가 클럽에 가는 것은 애초에 동일한 범주 내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논해질 사건이 아닙니다. 즉, 여성 자신은 클럽에 가도 한눈을 팔지 않을 수 있는 (가상의) 능력이 있다고 전제하여 스스로 면책 특권을 부여합니다. '인간이 클럽에 가면 한눈을 팔 수 있다'라는 대전제에 '여성은 논 외'라는 파쇄 불능의 조건을 부여한다면, 인간을 규준으로 하는 대전제를 가지고 추론했을 때 도출되는 내로남불적인 결론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서로가 전제하는 기준이 다르니까요.

말이 좀 샜는데, 어쨌든 상속제와 연좌제도 이와 유사한 논리 관계를 갖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대가 없이 계수하는 행위'에서 대가가 없다는 조건을 뺍니다. 재산 상속의 경우에는 상속세를 내죠. 이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대가를 지불하고 계수하는 행위'입니다. 반면에 연좌제의 경우에는, 대가 지불 여부와는 별개로, '내 것이 아닌 것을 계수하는 행위'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종족입니까? 있는 죄 없는 죄 죄다 끌어와서 비난 파티를 일삼는 종족이 아닙니까? 법의 처벌은 피했지만 대중의 처벌은 못 피하죠.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이 욕먹고,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욕먹는 게 우리네 따뜻한 정 나눔 문화죠. 스스로의 잘못 발생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만 해도, 과실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몸을 사려야 하는데, 어떻게 주변인의 잘못까지 컨트롤하겠습니까? 적어도 죄의 인과관계는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지성인이 넘쳐나는 사회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