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7. 20:47ㆍ생각
- 패드립에 흥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 패드립에 타격 안 받는 마음가짐
예전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욕은 참아도 부모에 대한 욕은 못 참는다는 거죠. 이에 저는 이러한 주류적인 경향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저는 패드립에 그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경험으로 강철 멘탈을 체득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화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는 패드립을 들으면, 상대가 제 욕을 하지 않은 것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는, 부모가 단지 내 잘못에 대한 면책용 방패 역할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합시다. 이러한 내 과오에 대한 질책은 자유입니다. 다만, 그 잘못에 대해서만 언급하여야지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타하는 건 다소 무의미하고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한 것을 질타하는 작태는, 단지 자기 분을 못 이긴 화풀이에 지나지 않으며, 그 어떠한 계도의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내 잘못 그 자체에 대해서나 혹은 그 잘못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문책하는 건 건전할지도 모르고, 의미도 있지만, 내 잘못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 부모를 향한 비난은, 마치 메아리 없는 외침과도 같습니다. 사실 관계를 따져보더라도, 내 부모는 내 잘못을 결정짓거나, 내가 잘못을 하도록 유도, 종용하거나, 내 잘못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가 없기에,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화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지요. 물론 혹자는 내 잘못이 아주 긴 양육의 시간을 거쳐 부모로부터 기인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 환경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만, 고려해야 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게임을 못 해서 팀원에게 피해를 줬다는 잘못이 내 부모로부터 기인한 것일까요?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팀킬을 하여 팀에게 피해를 입히는 비뚤어진 심보가, 부모의 잦은 학대가 빚은 성격적 결함이 확실하다면, 부모를 향한 욕은 오히려 정당할 수 있고, 그 결함 있는 자의 잘못은 언제든지 부모에게로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을 하는 사람이 왜 욕을 하는지, 그리고 왜 하필 내 부모의 욕을 하는지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내 잘못이 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고 전제합시다. 이때 내 잘못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패드리퍼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요? 이 상황에서 패드리퍼에게 분노가 일었다면, 그것은 내 잘못에 기인합니다. 즉, 그 분노를 일으킨 원인이 내 잘못에 있다면, 그 분노가 어떤 형태로 표시되든 간에 나를 향한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부모를 욕하고 있어도, 본심은 결국 잘못의 당사자를 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지를 받아들인다면, 제가 앞에서 취했던 스탠스와 다소 간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앞에서 저는, 제가 패드립에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가 그 패드립이 어느 곳도 제대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까보니 결국 그 패드립은 어쩌면 나를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어, 그럼 앞으로 패드립을 들으면 화가 나야 하는 건가?
아무튼, 이런 자기모순을 견뎌내는 게, 요즘의 불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농담이고, 우리가 설령 어떤 잘못을 하였든 간에, 자기 분에 못 이겨, 잘못의 당사자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하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스마트폰 들여다보고 계신 우리 부모님을 끌어오는 놈들이 잘못인 거죠. 패드립은 내 잘못에 대한 비판의 적절성을 넘어서는, 불필요한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잘못한 만큼만 혼나면 됩니다. 앞으로 내 잘못에 대해 남들이 패드립을 박는다면, 그것은 본인의 잘못과는 별개인 다른 잘못이 신생되는 꼴이므로, 내 잘못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가볍게 무시하는 게 낫습니다. 똑같이 패드립을 날리는 건 하수나 하는 짓입니다.
여담으로, 간혹 연예인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그 잘못한 당사자들의 부모가 대중들로부터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다소 잘못된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무분별한 분노는 잘못한 당사자의 가정 환경 상태나 그의 부모에 대한 잘못을 결정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어떤 부모도 연예인인 자식이 잘못을 일으키길 원하지 않을 겁니다. 다 떠나서, 우리가 그들 가정에 대한 그 어떠한 확실한 정보도 가지기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의 하나하나의 언행에 신중을 기하게 하기 충분합니다. 대중의 어리석음은 단순히 마녀재판을 쉽게 벌일 수 있다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마녀의 친인척까지 깡그리 몰아 처결하는 연좌제를 서슴지 않는다는 무분별한 광포함 역시 경계해야 할 우치입니다.
패드립 관련하여 첨언을 좀 하겠습니다. 패드리퍼가 진심으로, 내가 아닌 나의 부모를 욕하고 싶어 한다면, 그 진심은, 내 잘못이 진정으로 내 부모 탓이라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경우라도 역시 결론은 똑같지만, 그냥 화나실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라잖아요. 이 경우에는 부모에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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