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의 속성

2021. 12. 10. 18:38생각

1. (※3단 논법 아님)

x를 안다는 것을 안다 : 안다

x를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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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를 아는지 모르는지 안다 : 안다 ⊻ 모른다

2.

x를 안다는 것을 모른다 : 모른다

x를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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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 ?

1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용이하다. 그런데 2는 직관적으로 결론이 무엇인지 도출되지 않는다. '모른다'의 속성에 대한 고찰은 이로부터 발생한다. 이는 모른다의 애매성에 있다. 모른다가 안다의 '~(부정)'이 아닌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명료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2의 두 번째 문장을 분해해보자. 'x를 모른다'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로 분해된다. 나는 처음에 전자에는 '안다'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석을 거듭한 결과 전자와 후자 모두에 '안다'의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는 것을 모른다 ≡ 모른다

이 둘은 동치관계다. 즉 안다가 아무리 거듭 사용되더라도 모른다가 한 번 이상 사용되면 안다의 의미를 소거한다.

예를 들어, (편의상 주어 생략)

'x를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 안다'는 x를 모른다.

'x를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 모른다'는 x를 모른다.

'x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 안다'는 x를 모른다.

'x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 모른다'는 ?

이처럼 모른다의 거듭 사용은 '모른다' 자체의 애매한 속성 때문에 단정하여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는 논리학적 참, 거짓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1. (if x가 참이다 = T)

x가 참인 것은 참이다 : 참

x가 거짓인 것은 참이다 :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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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참이거나 거짓인 것은 참이다 : x ∨ ~x

2. (if x가 참이다 = T)

x가 참인 것은 거짓이다 : 거짓

x가 거짓인 것은 거짓이다 :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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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참이거나 거짓인 것은 거짓이다 : ~(x ∨ ~x) = ~x ∧ x

2의 절취선 아래의 선언문은 반드시 거짓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것이 아니다(=나는 나이고 나가 아니다). 그런데 '흰색 ∧ ~흰색'은 모든 색이다. 이는 같은 형식 같아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집합론적 기준을 따르기 때문이다.

x ∩ ~x = ∅, x∪ ~x = U인데, 흰색과 ~흰색의 연언이 합집합적 관계를 띄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색을 지시하게 된다. 조금 논점 이탈이지만 더 나아가서 '신∧ ~신'은 신과 신이 아닌 것을 지시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시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또, 'A ∧ ~A' 이것은 흔히 모순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이면서 ~자기인 것'이 모순인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은 ' '내가' 나이면서 ~나'인 경우에 모순인 것이지, '나 ∧ ~나'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지시하므로 즉, 피정의항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모순이 아닌 것 같다. 가장 이상한 것은 '모든 것 ∧ ~모든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지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시하는 것이고 '~모든 것'은 지시할 대상이 없거나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無를 지시한다기에는 무의미적이다.

'안다∨ ~안다'의 제3의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가령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와 같이 '아직 확정하지 않은'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

존재 함축도 중요한 요소로 다뤄질 수 있다. x의 개념을 아는 것과 x가 실재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가령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넌 이미 신의 존재를 전제하였으므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부정하는 꼴이군"이라고 한다면 개념, 단지 단어 의미 따위와 실재성을 혼동한 것이다. 그러므로 x의 존재 함축 문제를 고려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 아는'지' 모른다 + 모르는'지' 모른다

'지' → 잘못된(혼동되는) 표기이다. '지'에 '가능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안다거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 안다는 것을 모른다 +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알고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 안다는 것을 모른다 +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가 '알거나 모른다'라면, '안다는 것을 모른다'는 왜 '알거나 모른다'가 아닌가?

"정정" → 전자와 후자는 같은 상황이다. 즉, '안다는 것을 모른다'도 '알거나 모른다'이다. 구어체로 쉽게 이해해보자. "내가 얘를 안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얘를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는 내가 얘를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정" → 이는 판단자의 인식 불분명성과 사실 그 자체를 혼동한 것이다. 'x를 모른다'가 x를 모른다고 '규정'한 것인지 판단자의 기준에서의 판단 시점인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x를 모른다'가, 판단자가 x를 ①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건지, x를 ②확실히 모르는 건지 구분해야 한다. 근데 후자는 '확실히'가 추가됨으로 인하여 'x를 모른다는 것을 안다'와 동치이다.

이제 'x를 안다거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x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에 ①과 ②를 각각 적용하여 보자.

①에서는 (우리가 논의로 삼는) 의미어의 사이마다 안다와 모른다가 동시에 개입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안다 ⊻ 모른다

②에서는 의미어의 사이에 상보적 반의어가 개입하지 않는다.

∴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x를 안다거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가 경우에 따라 결괏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찝찝한 이유는 결론으로 얻은 두 '모른다'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다.

결론을 지어놓고 보니 결론지어진 두 '모른다'는 내가 평소에도 자주 구분하여 사용했다는 것을 인식한다.

정리하자면, 'x를 모른다'는 위와 같이 두 상황으로 구분된다. 제3의 상황은 필자의 지적 미숙으로 인해 우선 고려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다면 'x'와 '모른다' 사이에 '안다'가 어떠한 경우에도 없다고 하는 주장은 파기된다.

'모른다'는 경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두 의미를 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다. 단지 사용적인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양립 불가능이다. 양립이라기보다 더 옳은 표현으로, 한 곳으로 의미의 초점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청자가 화자로부터 단지 '모른다'라는 말을 언명 받았을 경우 청자는ㅡ특정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ㅡ 둘 중 어느 의미인지 단정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두 의미를 동시에 사용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정정, 생각할 수는 있다?). 그리고 애초에 '모른다'에는 특정한 상황과 어떠한 의미를 가진 조건어가 붙어야만 여러 해석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모른다' 그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확실히 모른다'가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와 동치라면, 후자의 모른다는 '어떤' '모른다'인가? 꽤나 순환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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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조금 덜 정리된 메모이다.

'x를 모르는 것을 모른다'에서 '모른다'를

①확실히 모른다.

②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로 구분하고 4가지 조합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1. x를 ① + ① = ①

2. x를 ② + ② = ②

3. x를 ① + ② = ②

4. x를 ② + ① = ①

이를 풀면,

1. x를 확실히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모른다. → 확실히 모른다.

2. x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3. x를 확실히 모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4. x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모른다. → 확실히 모른다.

이로 보아 끝맺는 '모른다'의 의미에 따라 문장의 모름의 속성이 결정된다.

'x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가 'x를 안다'를 부분적으로 함축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x를 알 수도 있다'는 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x를 안다'가 'x를 알 수도 있다'를 함축하는 것 같지 않다. 이는 단정이 개연을 함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범주 착오다. 전자는 시간성을 배제하고, 단지 '필연적으로 안다'를 뜻한다. 후자는 시간성을 배제하면 '아직'이라는 조건이 불가능하기에, '개연적으로 안다'이다. 그런데 이 개연적으로 안다는 표현은 어색하다. 쉽게 말해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건데 개연적으로 안다는 게 무슨 말인가? 고로, 시간성을 배제하면 어색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간성을 배제하지 않고, 전자는 'x를 언제나 확실히 안다'이고 후자는 'x를 아직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니다'이다. 그러면 여기서 'x를 알 수도 있다'와 'x를 아직 모른다'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x를 모른다'가 'x를 아직 모른다'를 함축할 수 있을까? 시간성을 개입시키면 전자는 미래에 x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후자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성을 배제하면 전자는 'x를 확실히 모른다'이고 후자도 시간성의 배제로 인해, 앞으로 x를 알 가능성이 사라졌으므로 'x를 확실히 모른다'가 된다. 이로 보아 시간성을 배제한 경우에만 'x를 모른다'에 변동 사항이 없으므로 함축 관계가 성립하지만, 시간성이 개입하면 '모른다'와 '안다'의 상호 전환이 개연적이게 되므로 함축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로써, 단정과 추측은 양적 포함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 수도 있다'와 '모른다'는 경우에 따라 '정해지지 않았다'를 내포하므로, 논리 규칙만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