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0. 18:36ㆍ생각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로 잠재적 가해자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누구라도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그 어떤 인간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반례가 존재하는가? 즉 '모든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 아니다.'나 '어떤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 아니다.'를 증명할 수 있는가? 여기서 특정한 조건의 비장애인 a가 결과적으로 비장애인인 채로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a 자체에 반드시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적 조건이 따라붙는다면 논리적으로 a는 잠재적 장애인이 아닐 수 있다. 이는 논리적 조건문에서나 가능하다. 논리학에서 조건문은 만능이다. 조건은 약정이다. 예외가 없다. 이것을 현실에 마땅히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모든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다.'와 그것의 특칭부정명제 '어떤 비장애인은 잠재적 장애인이 아니다.'의 모순관계를 입증해낼 수 있다면 기존의 전칭긍정명제의 타당성은 무너지게 된다. 즉 특칭부정명제가 참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면 모순관계로 어느 전칭긍정명제는 반드시 거짓이 된다. 최소한 한 명 이상 그 신체 자체로 비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절대적으로 장애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살거나 죽어야 한다. (죽는 것을 장애나 비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말도록 하자.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제도권 의학에서 규정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도 상대적이지만...) 앞에서도 짚어 보았듯이 오직 언어적으로만 볼 때 조건만 붙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신체는 너무나도 복잡한 기관이고,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있고 가변적이고 정의하기조차도 어려운 비논리적 개체다. 애초에 '가정'을 한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그러할 수도 있게 한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관측된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가를 알아내야 한다. '절대적으로 장애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는 가정인데 논리적 가정은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적 가정도 가능은 하다. 단 조건이 붙는다. 복잡한 물리계 안에서의 위해 가능성을 원천 제거한다는 조건 말이다. 조건이 붙은 통제변인이다. 이는 외부적 상황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지 한 개체의 신체 그 자체가 절대적인 비장애성을 내재하고 조건 없이 살거나 죽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애의 가능 상태'로부터 절대적으로 탈각할 수 있는 개체는 외부적 조건이 없다면 없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가해자 논리로 회귀하자. 그 누구도 어떠한 외부적 조건이 없다면 '절대적으로 가해자 아님'을 내재된 속성으로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절대적인 속성이라면 그 어떤 외부의 조건도 무시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맞다. 내 논리 전개의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재반론은 꽤나 관념적이지만, 절대적 내재 속성에 대응할 수 있을 만한 절대적인 외부 조건의 가정이다. 이제부터 공허한 사이비 논쟁이 시작된다. 또 혹자는 '절대성에 내/외부의 구분이 웬 말이냐?'라고 반론할 것이고 이것도 타당한 반론이다. 절대성은 모든 조건을 무시한다. 즉 앞의 두 밑줄 친 명제는 서로 이율배반이다. 그럼 뭐가 맞는가? 개념 정의에 따르면 후자가 맞다. 하지만 전자의 명제를 버리기는 아깝다. 어쨌든 논리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에 적용된다고 하여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철학의 대부분의 논쟁은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의 문제인데, 애초에 절대 뚫을 수 없고, 뚫리지 않는 창과 방패의 관계라서 논쟁이 무의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현실의 대부분의 논쟁은 상대적이라서 의미가 난무한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와서, 어쨌든 절대적으로 가해자 아닌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므로 모든 인간은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가해자인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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