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구두쇠

2021. 12. 5. 18:11생각

https://www.youtube.com/watch?v=aVLIkmbvF38 

 

이 영상의 댓글을 보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먼저 이 영상에서 하나의 실험이 나온다. 천장에 두 실을 이격하여 붙여 늘어뜨린 후에 그 두 실 사이에서 사람이 양쪽으로 팔을 뻗어 실을 잡아 서로 묶는 실험이다. 초기 조건으로 두 실을 양 팔을 뻗어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이격하였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가위를 주고 난 뒤, 이 가위를 이용하여 두 실을 묶으라고 요청하였다. 대부분의 피험자는 한 쪽 실을 손으로 잡고 반대쪽 손으로 다른 한쪽의 실을 가위의 날 쪽으로 건드리다가 잘라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댓글은 다음과 같다.

"혹시 실을 잘라버리고 묶으면 안 되나요? 두 실을 연결하면 된다고 하셨으니까..."

이에 대한 대댓글로 두 개가 달렸는데 하나는 "이것도 정답입니다."와 다른 하나는 "자르고 어떻게 묶나요."였다. 필자는 이 대댓글의 후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댓글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현재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첫 번째 대댓글은 어떤 생각으로 댓글에 동의하여 정답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에 나의 인지가 논리의 규칙이나 인과의 순서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 순서에 근거함을 각지하였다. 두 번째 대댓글은 나와 같이, 댓글을 발어 순서에 맞게 시간 순으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실을 자른 '후에' 묶는다고 말이다. 하나의 실을 자르면 실이 이 전보다 짧아진다. 그래서 실을 자르기 전보다 두 실을 묶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를 시간 순이 아니라 논리적 연언으로 이해한다면 뜻이 달라진다. 이를 기호화하면,

자름 ∧ 묶음

이것인데, 자르고 묶거나, 묶고 자르거나 둘 중 아무것이나 상관이 없다. 어쨌든 두 행위가 반드시 이행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실을 묶은 후에 자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 방법으로 두 실을 묶는 것이 용이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묶은 후에 무엇을 자른다는 말인가? 하고 다시 영상의 그림을 보고 번뜩 그 의도를 파악했다. 이는 나와 두 번째 대댓글러가, '줄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를 깔았기 때문에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실을 묶기만 하면 된다면 하나의 실을 잘라서 다른 하나의 실에 묶으면 된다. 하지만 줄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정했기에 그것에 매몰되어 창의적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언어적 문제까지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 영상의 주제도, 인지적 편식, 즉 특정 개념의 용도나 기준에 앵커링 되어 그 이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편협성에 갇히게 되는 인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줄이 천장에 붙어있어야만 한다면, 자른 후에 묶거나 묶은 후에 자르는 그 어떠한 행위도 물리적으로 두 실을 연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른 후에 묶은 줄은 천장에 붙어 있는 줄이 아니기 때문에 초기의 규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묶은 후에 자른다는 설명도, 묶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일 터인데, 묶는 과정과 방법을 생략하고 묶은 후에 갑자기 엉뚱하게 자르는 행위가 이어지는 것이 되어 이 문제에 대한 엉뚱한 접근으로 간주되게 된다. 그러니까 다시, 이 영상의 주제는 인간이 인지적으로 얼마나 그 편식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최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우리는 세계를 규격화하고 인식 대상을 한정 짓는다. 가위의 용도는 자른다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피험자는 그에 매몰된 한정적 판단을 하게 되어, 가위의 용도에 기준하여 사고한다. 하지만 가위를 실에 묶어 진자 운동을 시켜 실이 가까워졌을 때 그 실을 잡아 두 실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내지 못한다. 가위 말고 망치를 주었을 때 가위를 준 경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피험자가 이 진자 운동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창의성은 본래의 용도나 역할에 국한하지 않는 다방면적 사고를 뜻한다. 이러한 발상이 우리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지향되어야 할 좋은 자세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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