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6. 14:13ㆍ생각
항간에서는 '앙 기모띠'와 'ㅗㅜㅑ'를 여성 혐오적 용어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앙 기모띠'가 여혐 용어라는 말은, '한남'이 남혐 용어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남이 단순히 '한국 남자'를 지시하는 것이라면, 앙 기모띠 역시 단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ㅗㅜㅑ'가 여성에 대한 평가를 뜻하는 용어라고 하자. 물론 여성도 남성에 대해 ㅗㅜㅑ를 쓸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남자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으니 일단 남성 편향적인 용어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이때, ㅗㅜㅑ가 여성을 희롱하는 용어라면 그것을 혐오 용어라고 비약하여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희롱은 혐오에 함축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롱이 혐오의 전초역前哨役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단지 개연적이다. 희롱이 반드시 혐오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희롱이 혐오로 확산될 확률이 높다고 추론할 근거도 빈약하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한남 역시 희롱에 불과할 따름이지 혐오 용어가 아니라고 간주할 수 있다.
지시어 '한남'의 태생에는 단지 '한국 남자'라는 일반성에 대한 언급만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각 용어의 태생적 관점부터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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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기모띠'에 담긴 속내를 말한다.
거리에서 어린이들이나 교복 입은 남학생들 옆을 지나치면 한 번쯤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말이 있다. “앙! 기모띠~”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초등학교 교사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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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살살' 비교는 꽤나 탁월하다. 즉 일본 언론에서, 한국 야동에 나오는 여성들이 성교 시에 '살살' 혹은 '세게'라고 말하는 것을, 마치 그 자체로 성적인 용어인 양 소개하는 오류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말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리고 말이 사용되는 상황 역시 중요하다. 분명하게 일본어 '기모찌이'는 일상적으로 기분이 좋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런데 철구가 변형해서 사용하는 '앙 기모띠'는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뜻인가? 성적인 의미로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철구가 기모찌를 야동에서 접했다고 하더라도 '앙 기모띠'가 야동을 기반한 성적 용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설령 앙 기모띠가 처음에 성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발화만으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이는 '보이루' 논란과도 같다. 보이루의 태생이 '보지 + 하이루'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윤지선의 논문이 수정된 사실로부터도 충분히 증명되었다. 분명, 태생에 대해 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혹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가령 '하일, 히틀러' 경례 동작은 나치적인 것으로 여겨져, 그 태생성 때문에 그 동작에 대한 원천 봉쇄를 강요하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마치 저작권과도 같은 역설적인 자유 침해적 상황이다. 저작권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가혹성도 동시에 함의하는 역설을 내포한다. 가령 졸라맨은 누구나 쉽게 생각해낼 수 있고 그려진다. 그런데 졸라맨의 상표권이 단지 누군가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과 그것의 독점권을 허가받았다는 공인에 의해, 타인의 자유 이용과 사상과 행동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특정한 행위나 동작, 언어의 사용 역시 철저한 사회적 낙인에 의해 사용이 금해질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혹한 암묵적 억압의 일환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상당히 특수적이고, 그 의미를 알지 아니하면 사용되기 지난한 경우가 이례적으로 존재하긴 한다. '한남충 재기해'나 '노무현 운지' 따위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 남자를 한남이라고 줄이고, 거기에 벌레 충을 붙여서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 아닌 뛰어내린다는 '재기(故 성재기 비하 용어)'를 조합하여 '한남충 재기해'의 뜻을 모르고 발화하기란 여간해선 받아들이기 힘들며, 노무현이 일상적으로 언급될 수는 있다고 쳐도, 거기에 '운지(뛰어내린다는 뜻. '운지천'이라는 음료수 CF에서 비롯됨)'를 조합하여 '노무현 운지'의 뜻을 모르고 발화하기란 여간해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저 정도의 경지까지 이르면, 용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시치미를 뗄 만큼 그쪽 세계에 절여지지 않은 상황은 아니라고 봄이 일응 합당하다. 여하튼 이 정도 수준이 아닌 정도의 용어 사용이 그렇게 심각한 비난과 지탄을 받을 잘못된 행위인지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최근에 '허버허버', '힘조' 등의 용어 사용이 문제가 되면서 방송계에서는 줄줄이 그 책임을 물어왔다. 필자는 저 정도면 모르고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유명한 커뮤니티만 들어가 봐도 저런 용어의 사용이 비일비재하다. 어원이 딱히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충 단어의 어감과 그 사용의 맥락으로 대강의 뜻을 유추하여 사용할 수 있다. 허버허버는 아내가 해준 밥을 남편이 처먹는 꼴을 연상시키는 의성어로 알려지지만, 그 속내를 알지 못하더라도 단순히 무언가를 허겁지겁하는 양태를 지시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허버허버의 뜻을 허겁지겁의 신조어나 밈 정도로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 만난 필자의 친구(남)에 따르면, "보통 생소한 것은 알아보지 않나"라며, 애초에 모르는 것에 대한 검색을 디폴트로 상정하여, '모르고 사용한' 자에 대해 '모르고 사용할 리가 없다'라는 가혹한 철퇴를 가하는 것을 목도했다. 최근에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많이 목격되는 것 같다. 필자의 경우처럼 "뭔가 내가 이해 못 할 이유나 사정이 있겠지"를 디폴트로 상정하고 그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상대와의 오해의 간극을 줄이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그 친구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정인의 증언만을 근거로 게이의 패션을 한정 짓는다든가 하는 그 친구의 작태를 보고 효율화를 위해 일반화를 적극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해냈다. 물론 한 개인에 필자의 평가는 결정되지 않는다. 필자의 오해가 항존 한다는 가능성을 매시 열어둔다. 아무튼 '허버허버'나 '힘조', '~노', '이기' 등의 사용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지만 그 사용 자체만으로 그 사용자가 그 용어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하여 낙인을 찍는 것은 성급하다. 일반적인 표준 국어 발화자가 "대한민국 군대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 "라고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어렵다는 판단은 다소 가혹하다. 애초에 저 말을 실제로 사용한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와 표준 국어를 혼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화이기 때문이다. 표준 국어 발화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말투이고, 표준 국어 발화자라고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지는 않겠지만 흉내를 내거나 주변의 영향에 의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과, 그와 얽힌 여러 정치 사회적 관계, 그에 대한 조롱의 산물이 보편적인 발화 언법을 원천적으로 차단되게 만들었다. 노무현이 특정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저해했다며, 그가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노무현과 관계된 여러 복잡 다종한 연관이 특정 표현의 암묵적 사용 저지와 사용에의 낙인을 인과적으로 이끌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용어의 태생에 갇혀 표현의 자유가 저해된다는 사실에 개탄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필자에 따르면, 이제는, 아니 진작부터, 나치 경례를 할 수 있어야 했다. 특정한 언행에 담긴 의미를 한정하는 제약과 낙인에 대한 해금을 시도해야 한다. 가령 누군가 필자에게 '씨발'이라고 한다고 하자. 씨발의 태생을 떠나 현재 그것은 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허버허버의 태생을 떠나 그것은 현재 남혐 용어로 간주되고 있다. 히틀러 경례 또한 태생은 파시스트적이었고 그 의미가 유지되어 내려와 반파시즘적 오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로 보아,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는 언어 의미를 규정하고 그 화용적 상황을 제한한다. '씨발'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는 욕설이기 때문에 그 뜻을 갑자기 바꿀 수 없고, 바꾸려는 시도 또한 무의미하다고 하는 입장에 따라, 허버허버라는 용어의 의미가,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남혐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허용할 수 있고, 그 허용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다수가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허버허버가 허겁지겁에 반드시 필요적으로 대체될 이유는 없다. 허겁지겁의 사용만으로도 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혹한 검열이 계속된다면 나중에 우리는 말을 할 때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날이 없을 지경에 놓일지도 모른다. 이건 단지 비관적인 가정이다. 마치, 자지를 자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섹스 다 하는 거 뻔히 아는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표리부동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직면하는 웃지 못할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꼴이 참 씁쓸하다.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 우중은 개돼지라고 실소하는 꼴을 자주 목격하지만, 공직자가 국민을 개돼지라고 하는 꼴을 절대 용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언어의 사용이란 것에는 일관성이라는 게 없다는 걸 매번 느낀다.
귀찮아서 대충 마무리하련다. '한남'과 '앙 기모띠'의 태생을 논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한남이 한국 남자를 싸잡아서 욕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면, 분명히 아니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 뻔하거니와, 그렇다고 한남을 한국 남자의 줄임말로 받아들이자니, 한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발화의 맥락이 대부분 '그 남'들에 대한 비하적인 요소가 섞여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지하지 아니할 수 없고, 앙 기모띠의 유행이 단지 철구의 유행어 창제의 의도를 계수 하지 아니하였더라도, 그것을 av적이라고 세인이 인식한다면, 태생과는 독립적으로 그 용어의 사용이 터부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한남'과 '앙 기모띠'는 동일하게 혐오 표현일 수 있다. 물론 '~수 있다'의 가능성 언명의 의미에는 '~수 없다'가 동시에 함축되므로 '한남'과 '앙 기모띠'는 동일하게 혐오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한남'이나 '앙 기모띠' 모두 혐오 표현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발언의 자유에 제약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ps. '한남'의 사용에는 다소 성별적 제약도 따른다. 가령 필자가 "나는 한남이지만~'이라며 발화할 때는 (발화 맥락에 따라 상이하지만) 대개 자조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단지 필자의 그 용어 사용만으로, 필자가 페미니스트이거나 한국 남자를 혐오하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간주하기 어렵다. 반면 여성이 어떤 대화 자리에서 '한남'이라는 용어를 꺼내는 즉시 바로 그녀는 페미니스트나 남혐 종자로 낙인찍힐 확률이 높다. 물론 이 역시 그 사람의 전반적으로 비치는 이미지나 대화 분위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한남'의 발화는 남성에 비해 여성에 가혹한 것이 사실이다. 여자는 대개 남혐 용어라고 규정되는 용어의 발화를 조심해야 하고, 남자는 대개 '~노'나 '야~ 기분 좋다!' 따위의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 하여튼 일베에서 파생된 용어의 대부분이 노무현 성대모사라는 사실은 매우 기가 찬다. '야~ 기분 좋다'를 못 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물론 '그 특유의 억양과 리듬'으로 진짜 기분 좋아서 외치는 건지, 노무현 성대모사를 하는 건지 구분할 수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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