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6. 13:18ㆍ생각
https://pann.nate.com/talk/359209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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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의 글이 삭제될 가능성에 대비해 본문을 그대로 옮긴다.
1. 차별 문제
현재 서양에(대부분 북유럽권) 여성도 군대 가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여성 인권 차별 문제가 없고 모두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사는 나라의 경우고.
(심지어 여성이 군대 가는 나라는 소수의 경우)
안 그래도 직장 내 임금 차별, 유리천장 문제 심각한데 여성이 군대 가서 취업 나이도 늦어지고 진로 계획에 문제가 생긴다면? 일단 저런 모든 차별 문제가 해결된 후 군대 문제가 나와야 맞는 거지, 지금도 우리나라는 차별이 만연한데 여기서 군대를 간다고?
→ 여성이 군대를 가는 서양 국가 중 기본적으로 여성 인권 차별 문제가 없다고 간주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는 주장은 다소 조사(investigation) 초월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해 주장을 유연하게 확장하여 해석한다면, 여성이 군대에 가는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권 차별적이라는 의미를 일부 함축하는 듯하다. 이 전제가 참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을 타당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동시에 그것은, 여성이 군대에 갈 타당한 근거 또한 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 인권이 문제가 없는 서양 국가이기 때문에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특수한 근거를 들어, 여성 인권이 문제가 있어도 여성이 군대에 가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가능하다. 오직 한국 남성만 징병의 대상이어야 하는 근거가 임의적이라는 것과 동시에, 여성이 징병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헌법적 개정이나 사회적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것 역시 임의적이다. 따라서 여성은 언제든지 임의적인 근거에 의해 징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논리적인 가능성의 측면에서 할 수 있는 논의에 불과하지, 국민 정서나 국가적 상황 등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가능성만을 놓고 따질 문제는 아니다. 만약 이대로 출산율 감소 추세가 급격화되어 남성만으로 안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이 될 경우, 필요에 의해 여성을 징집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이에 대해, 이미 전역한 남성을 다시 현역으로 삼자거나, 군 복무 기간을 늘려 여성을 징집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도모하도록 하자는 반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대안 역시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 남성만 편중되고 부당한 국가의 짐을 지어야 하는가? 이는 명백히 인권 탄압이다. 만약 남성이 기득권이고 여성 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남성만 군대를 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면, 이 또한 잘못된 일반화다. 일단 당장 남성인 필자조차도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에 비해 기득권을 가지며 우월하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더 부여받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남성 개개를 기득권 남성 집단에 몰아넣어서 자신들의 합리화에 유리하도록 올려치는 것은 부당한 추론에 기인한다. 일단 필자는 백수이고 그나마 구한 알바에서도 수많은 여성 상사를 두고 있다. 물론 열등한남의 개개 사례를 취합하여 페미니즘식 피해론에 효과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성 주장(가령 전칭 긍정)에 대한 반증으로는 일반성에 해당하지 않는 개별 사례 하나(가령 특칭 부정)만으로도 논리적 일격은 충분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페미니즘 논쟁에서는 전혀 효과적으로 먹히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어떤 페미니즘적 주장은 다분히 결과주의적 해석이거나 확증 편향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즉 이미 결론을 지어 놓고, 벌어지는 현상적 데이터를 그 결론의 근거로 편입시키는 작태가 그것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어떤 것이 확증 편향이라고 입증하거나 반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드러나는 것을 통해 해석을 할 뿐이지, 그 명백한 인과성을 꿰뚫기 어렵다는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적 엄밀성은 차치하고 그럴듯한 추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통계적으로든 현실 경험적으로든, 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억압되어 온 것을 부정할 수 없고, 2021년인 지금에도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지금'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이, 그러한 부당한 역사의 관성 때문인지, 남성에 대한 모종의 구조적인 우월성이 잔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성이 낮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주로 택하기 때문인지, 그 외의 알 수 없는 인과적인 경로가 존재하는지 결정하기 지난하다. 분명히 남성 기득권이 존재했었고, 그것을 타파하는 편이 낫다고 보인다.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별히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고 간주할 필요가 없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러한 이유를 배제하더라도 부당한 이념적 일반론을 굳이 유지할 이유가 없고, 소용도 없으며, 다수의 합의적 경향, 세계화의 추세에 비추어 보더라도 인권 불평등은 잔존하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인 필자가 남성 기득권에 편입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러한 개별적인 이유로 여성이 남성 권력에 종속된다는 주장을 배격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남녀 권력 불평등을 언급하는 페미니즘적 주장은 남성 기득권으로부터의 남성 비기득권층의 억압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층에도 권력의 구분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하위 권력을 점하는 남성이 어떤 상위 기득권 여성에 비해 뒤진다면,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에 대해 기득권이라는 일반론을 배격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신체적 우열을 제외하고, 적어도 현대의 권력 구도에 있어, 대부분의 남성은 약자다. 물론 역사적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것 중에 남성이 쌓아올린 것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무분별한 억지와 일반화는, 마치 과학을 두고 '남성'의 언어라고 하는 식의 어리석은 지적과 같다. 가령 전차는 전쟁을 위해 사용되지 남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차를 제조하는 기술은 수학과 공학, 즉 자연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 그것이 남성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모종의 남성의 이익을 위한 산업 전반적인 활동이라고 아니할 수는 없다. 분명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모종의 진실이 배후에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어떠한 주장도 사실이라고 확립하기는 어렵다. 가령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하는 이유가 추악한 자본의 논리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단지 우연히 그러한 산업이 조성되었을 가능성 역시 동일한 선상에서 가정될 수 있다. 필자에 생각에 따르면 여성들의 브래지어는 불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본다. 기능적으로든, 사회 안정을 위해서든. 개인의 편리성을 위해서든 말이다. 그러나 옷 겉으로 현시되는 여성의 유두를 차폐함으로써 어떠한 사회적, 성적 분란을 차단하고 유폐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여성들 스스로가 옷맵시를 위해 브래지어의 착용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처지거나 가슴 봉분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이상적인 모양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것을 꺼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미적 이상'에 대한 강박이, 스스로에 의해서 확립된 것인지 미디어의 농간에 의한 세뇌인 건지 그 인과관계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넓은 어깨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싫다. 넓은 어깨가 우월한 성적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이 생물학적인 근거를 갖는다면, 단순히 그러한 본원성에 의해 그것을 근거 타당적이라고 여겨야 하는가? 중요한 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장의 논리인지, 어떤 개개의 가치의 논리인지에 따라 규격화된 가치 틀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정당한지 아닌지는 가변적이다. 이는 여러 의미에서 유연하게 분석 명제적으로 보인다. 엄밀하게는 아니지만, 유연하게 받아들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시장 논리와 개개의 가치의 논리에는 가변성이 내재한다. 그러니까 이미 임의적이고 가변적인 근거에 따른다면, 당부당 역시 임의적이라는 말이다.
소변보다가 재밌는 게 생각났는데, 가령 남녀를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구분한다고 하자. 네 계층이 생길 것이다. 기득권 남성, 비기득권 남성, 기득권 여성, 비기득권 여성. 이때 권력을 기준으로 팀을 구분한다고 하자. 즉 기득권인 남녀가 한 팀이고 비기득권인 남녀가 한 팀이다. 비기득권이 기득권에 대항하여 권력을 탈취했다고 하자. 이때 비기득권에는 페미니즘 세력을 포함한, 페미도 안티 페미도 아닌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후자의 아무것도 아닌 남성 세력은 자신들의 동료였던 비기득권 여성에 대한 지배를 실현할까? 그리고 만약 그 지배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른가? 일단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결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페미니스트이자 비기득권인 여성이 비기득권 남성과 손을 잡고 기득권층에 대항하여 권좌를 탈취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누가 권력을 잡을지 속단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권력의 구분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적어도 남녀 권력이 기울어지게 될지는 모른다. 만약 이때에 남자가 또다시 여자를 배격하고 권력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믿음에 따른 사상을 갖추게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한 학습 능력의 함양을 운운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논리적인 추론은 아니다. 러셀의 칠면조 역설만 봐도, 귀납을 신뢰할 수 없는 사례는 많으며, 그러한 부당한 추론에 근거하여 앞으로의 스탠스를 형성하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물론 안전 지향성인 태도는 나쁘지 않다. 북한의 친교적 태도가 이전까지 화전양면이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듯이 말이다.
어쨌든 본문으로 돌아와서, 직장 내 임금 차별, 유리천장 문제가 해결되든 말든 그것은 특정한 이유에 의해 무시될 수 있다. 여성 인권이 아무리 남성에 비해 낮다고 하더라도 여성 징병이 불가피한 상황적 근거가 존재한다면 그러한 근거에 의해 여성은 징병될 수 있다. 애초에 남녀 임금 차등과 여성 징병의 문제는 독립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징발된 남성 병사에게는 간부와의 임금 차별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징병 되는 임의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여성 역시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이 사회는 모순 덩어리다. 물론 '나도 부당한 처우를 받으니까 너도 한 번 당해 봐라'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이 모순을 견뎌 보자!"라고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군캉스를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나 이는 개헌을 요하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므로, 단지 가고 싶다고 다 보내주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애초에 군캉스 군캉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자신들이 절대 군대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조롱이 아닌가? 군대가 절대 엄살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물론 우리 한남들 중에 유독 군대 부심 쩔고 과장 심하게 하는 사람 더러 있다.
2. 세금 문제
지금 있는 처소로는 당연히 부족하고, 여성 전체가 군대를 가려면 땅, 건물, 브래지어나 생리대 관련 생필품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돈이 필요해. 당연히 남자와 따로 오직 여성만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에 다 시설 만들어야 하고 그에 대한 세금은? 지금 남자들 군대 가는 것도 우리 세금인데, 안 그래도 앞으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세금 심각하게 올라갈 거라고 다들 우려하는데 여기서 더 올라간다? 세금 누가 감당할 건지? 현재에도 재난 지원금으로 인해 세금이 올라가서 다들 힘들다고 난리 난리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어떤 식으로 충당할 건지? (맘 같아선 찬성하는 사람만 세금 내면 좋겠음)
→ 일단 여러 비용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응당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모든 구막사를 신막사로 교체하기 위해 수년간 6조 8천억 원을 들였다. 이는 비리의 존재 없이 설명이 불가능한 수치다. 물론 '오직 막사'에만 들어간 비용이라는 주장은 반론을 맞을 것이겠지만, 어쨌든 돈이 부족하진 않다. 병사들 보급 팬티, 면도기, 면도날, 슬리퍼 등 생필품 썩어나고 잘 쓰지도 않는다. 브래지어나 생리대가 예산 부족 운운할 정도로 비싸다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국방비로 소모되는 세금은 국가의 명운을 위해 필요 불가결적으로 지불되어야 할 비용이다. 다시 말하지만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도둑이 많은 것뿐. 방산 비리 규모를 보라. 그것만 잡아도 벌써 항모 몇 대는 건조했다. 이는 기득권 한남의 잘못이지 우리 같이 징발되는 비기득권 한남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기득권 한남도 국가의 의무랍시고 다 군대 간다. 알게 모르게 편법적으로 빠지거나 편한 데에 가는 것 같다만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고 일반화해서는 안 되므로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귀찮아서 스킵하고 댓글 중 하나
그냥 남자들은 논리 없이, '남자는 가는데 여자는 왜 안 가? 빼애애액' 이게 다임 ㄹㅇ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여성 징병제에 대해 말하면 몰라도 지금만 봐도 여혐 심각한데... 할많하않
→ 이 댓글을 보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떤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남자만 군대를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남자만 군대를 간다는 이유로,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항존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군대에 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면 그것과 2년의 시간을 맞바꿀 수 있을지 논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사회적인 부당 차별을 겪어야 하는 것이라면, 사회에 대한 여성의 짐 지우기를 한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징병의 필요성은 그러한 사회적 모순을 충분히 감안하여 배려해 주지 않는 것 같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특별히 군대에 덜 가야 하는 고정 불변의 타당성이 존재하는 것 같지 않고, 5년 전에 여군 간부 수가 1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니 여성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남성 징병과 여성 징병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면, 자발성이 있는 여군 간부와 남군 간부에 존재하는 차별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에 필자는 역량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성을 징병을 해야 한다면, 그들의 신체 조건에 맞게 훈련을 편성하고, 보직을 그렇게 분배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여성들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차별에 대한 상계 요건을 적용하면 된다. 20대의 1년 반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고 압도적으로 긴 시간일 수 있다. 여성이 이 시간을 보장받음으로써 평생을 통틀어 받을 자신들에 대한 차별 대우와 상계한 것이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인가? 만약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부당 차별이 확실하고, 그로 인한 손실이 평생에 걸쳐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면, 단지 젊은 날의 1년 반을 보장받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부당함이 정말로 존재하는, 존재할 일인가? 여성은 그들의 인생에서 남성들로부터 부당 처분을 받을 가능성을 1년 반의 시간을 보장받는 것과 맞교환 한 것인가?
어쨌든 남자는 특별히 타당한 근거가 있어서 독박으로 병영 의무를 진 것이 아니다. 여자 역시 특별한 근거가 있어서 징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근거는 임의적이고 상황적이고 가변적이다. 헌법이라는 강력한 규정이 버티고 있지만 이 역시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 댓글러가,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후에 여성 징병에 순순히 응할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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