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6. 20:48ㆍ생각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2014
[판결] '강간 상황극' 유도 남성, 징역 13년… 강간한 남성은 '무죄'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강간 상황극'인 것처럼 꾸며 여성을 성폭행하게 유도한 남성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그런데 여기서 '강간범 역할'을 맡아 여성을 실제로 성폭행한 남성에게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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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판결은 직관에 반하는가? 위 기사 내용을 우리가 이미 안다는 전제하에 쓰겠다.
위의 판결 내용을 보면 해석자(판사)가 동일한 결괏값에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다른 뜻을 가지는 해석을 한 것 같다. 내 해석은 법리적 해석과는 조금 다를 것인데 프레게의 지시체에 대한 의미론적 값 semantic value(의미)과 sense 뜻의 구분적 해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프레게의 해석을 설명하자면, '춘원'과 '이광수'라는 지시어가 가리키는 지시체는 동일하다. 그런데 혹자는 이광수가 이광수인 것은 알지만 이광수가 춘원인지는 바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때 프레게는 동일한 지시체에 대한 지시어의 의미는 같지만 뜻이 다르다며 둘을 구분한다. 이 판결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실에 대해 해석이 다를 뿐이다. 이 사건의 해석자는 'B의 강간범 역할'과 '강간'의 지시체는 같지만 지시어의 뜻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강간'이 'B의 강간범 역할'을 함축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엄밀한 철학적 동일성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법률에서 보는 강간은 범의와 범죄성이 함의된 개념이고 여기서 B가 일으킨 사건은 범의나 범죄성과는 무관하게 여자를 간한 것이다. 즉 결과물은 '여자가 특정 남성에게 범해졌다'는 객관적인 사건이고 거기에 법률적 범죄성을 기준으로 해석을 달리한 것이다. 그 객관적 사건에 '강간'이든 'B가 여자를 간한 행위'이든 어떤 이름을 붙여도 그 부여된 지시어에 대한 지시체는 같다. 하지만 뜻의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법률적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행위자로 하여금 존재하느냐에 대한 여부 따위가 해석을 달라지게 하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래의 기사에서와 같이 '미필적 고의'의 개념이 등장한다. (위의 링크와 아래 링크는 동일한 사건이고 A와 B가 각 기사에서 서로 다르게 지시되고 있다는 차이만 존재한다.)
https://news.lawtalk.co.kr/issues/2348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가지만⋯'강간 상황극' 성폭행범이 무죄를 받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8월. 한 랜덤 채팅 앱에 "강간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남성 B(29)씨가 여성인 척 올린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믿고, 실제 엉뚱한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 A(39)씨
lawtalknews.co.kr
https://namu.wiki/w/%EB%AF%B8%ED%95%84%EC%A0%81%20%EA%B3%A0%EC%9D%98
판사의 판단에 의하면 B(이 글에서는 B를 유도된 자로 통일하겠다.)에게 미필적 고의가 없다. 일말의 미필적 고의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확실하게 유죄를 입증할만한 충분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미필적 고의란 결과 발생의 행동을 하고,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결과의 발생 가능성도 인식했지만, 무심코 한 행동에 하필 결과가 발생한 경우로, 그 결과를 발생시킬 의도는 없는 경우를 뜻한다. 즉 내가 이 행동을 하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지 어느 정도 인식은 하고 있지만 설마 정말로 발생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무심코 행위 한 결과, 우연히 그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문제는 미필적 고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의사를 가지고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해내어야 한다. 미필적 고의는 고의와 과실의 중간지대 어딘가에 속하는데, 결과를 인식은 했지만 의도는 없는 경우를 뜻하고, 결과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의도는 한 경우 등이 존재한다. 인식도 없고 의도도 없는데 결과가 발생한 경우는 과실에 속하고, 인식과 의도로 인해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고의에 속한다.
B가 자신의 행위가 범의의 속성을 가진 강간임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단지 그에게는 상황극에 불과했을 뿐이다. B가 이 상황을 '상황극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만약 B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B에게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다. 그런데 판사는 여러 정황상 B에게 그러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강하게 단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B가 자신의 행위를 단지 놀이라고 생각했고 정황상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황당할 수 있다. 그 황당함의 정도는 B가 그 상황이 상황극이라고 얼마큼 신뢰했느냐에 비례할 것이다. 피해자의 저항의 정도에 따라 찰나의 순간이라도 '상황극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나 이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입증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 본인도 찰나에 저런 생각이 스쳐갔다고 할지라도 망각이나 착류에 의해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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