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6. 20:44ㆍ생각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을 더 중시한다는 여자들의 말은 거짓이다. 사실 이 문제는 그들이 의도해서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그들은 내면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의 경우에도 독심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만 가지고 그 대상의 내심을 어림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이 연기이거나, 기망인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의 내면은 사실상 이미 여자들의 머릿속에서 설정된 틀에 가깝다. 상대의 내면이 외부로 현출되었다기보다는 여자의 판단 규준에 상대의 행동이 들어맞았을 뿐이다. 어떤 남성이 물을 마신다. 그것을 본 여자는 그 모습이 섹시해 보인다. 남자는 물을 마시려고 의도했고 우연히 그 모습은 다른 여성에게 섹시하게 비쳤다. 물 마시는 모습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예시이므로 다른 예시를 들어 보자. 내가 예은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예은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예은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발성에 의한 말의 형식뿐이다. 예은이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청각 정보를 처리할 만큼 귀가 뚫려있어야 하고, '사랑해'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지력이 필요하고, 그 뜻을 이해해야 하며, 발화자가 그 언표 된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의도하였음을 추리해내야 한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마지막 요건인 발화자가 의도한 발어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만 따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식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의 판단은 대개 감각적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판단이나 감각적이지 않은 인식을 하는 것은 도저히 무엇인지 생각되지 않는다. 가령 유니콘은 감각되지 않는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다른 어떠한 감각을 동원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뇌에서만 생각해내는 것을 감각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간접적인 감각의 일종이라고 간주된다. 실체가 없는데 감각된다니? 일단 호랑이를 상상해보자. 내가 실제로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면 호랑이를 감각하지 못하는가? 나는 호랑이를 실제로 보지 않고서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조건부로 '직접적인 감각이 필요 없음'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를 직접 감각하지는 않았지만, 개념적인 호랑이를 생각해내는 내 사고는 다른 감각을 요구한다. 감각 없이 개념만 익히는 것이 가능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컴퓨터는 개념 정보만 입력해도 그것의 구현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사고실험 이외에 그 실험이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트남의 통속의 뇌 이론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는 자고로 거의 불가능한 실험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유니콘을 뿔이 달린 말이라는 문장으로만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뿔'과 '말'의 지시어에 대응하는 지시체를 전혀 인식한 적이 없다면 유니콘은 단지 공허한 글자 상의 '뿔'과 '말'의 결합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지시어와 지시체의 관계가 요구된다. 원자 개념이 필수이다. 뿔이라 함은 이미지 이외에도 다른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화학적 배열이나 원자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어쨌든 뿔과 말에 대응하는 지시체를 떠올릴 수 있게끔 경험하지 못한다면 '뿔 달린 말'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떠올릴 수는 없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실제 뿔 달린 말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뿔 달린 말'이라는 문장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떠오른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으로 판단되고, 존재하는 것은 그 이름에 맞는 지시체를 반드시 인식해야만 떠올릴 수 있다. 이제 돌아와서 감각적인 판단만 가능한 인간이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지 따져보자. 결론 먼저 말하면 이는 불가능하다. 드러난 것들의 조합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서 표출해도, 그 표출이 여자의 남자를 판단하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여자는 남자를 오해하게 된다. 즉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말은 실은 우리가 이미 설정한 틀에 맞춰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얼마 전에 본 강연에서 강연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정확하게 올바른 판단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판단을 위해 빠르게 처리하도록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 신속한 판단을 필수다. 컴퓨터처럼 정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뇌는 불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쳐내고 나에게 필요한 판단만 수용해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자 혹은 남자들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여자의 행동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양성 오류를 범하고 여자는 남자의 행동을 최대한 의심을 갖고 접근하도록 음성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이런 생물학적 기전을 떠나 인식의 문제만 보더라도 인간은 여러 확증 편향의 오류나, 심리적 착류에 빠지게 된다. 너무 자신을 믿지 않는 게 현명하다. 남도 마찬가지다. 남의 행동은 내 심리적 판단 틀에 의해 분류된다. 물론 내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껏 행동할 것이지만 신중한 사람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간 상황극 (0) | 2021.12.06 |
---|---|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0) | 2021.12.06 |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가? (0) | 2021.12.06 |
성공하려면 책을 읽어라 (0) | 2021.12.05 |
사후 해석 편향 (0)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