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 이나은을 향한 비난을 멈춰야 하는 이유

2021. 11. 15. 12:51생각

이 글을 에이프릴 멤버들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바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 가지이다. 첫째,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자. 둘째,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하지 말자. 셋째, 연좌제를 금하자. 넷째, 단정을 유보하자.

첫째, 지금 우리는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에이프릴 멤버들이 현주를 가해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몇몇 사건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개별 사건들의 가해성 존재 여부는 다분히 해석자의 해석에 의존한다. 물론 피해 주장자인 현주의 해석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대중들이 따돌림의 증거라고 모은 자료의 대부분에 대해, 현주가, 명시적으로 가해였다고 인정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나은이 바로 옆에 앉은 현주에게 고기를 안 주는 것처럼 나오는 영상은, 사실 뒷부분이 잘린 것이다. 대표적인 음해성 자료이다. 또 이나은이 현주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것 같이 나온 짤 역시, 악의적인 캡처이다. 옆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쳐다본 것이었다. 그 외에도 대중의 오해가 섞인 자료가 많다. 물론 이러한 몇몇 사건에 대해 현주가 언급하지 않았다거나 사실관계와 다르다고 해서, 현주의 모든 주장과 피해 호소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주 동생의 폭로가 있기 전에 우리가 문제의 자료들을 접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에이프릴 멤버들이 현주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았을까? 왜 일이 터지기 전에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는가?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그냥 노는 것으로 보이던 영상이, 사건이 터지니까 갑자기 따돌림 놀이를 하는 것으로 보이던가? 피해를 호소하는 현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건전한 것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의 정황이나 맥락도 모르는 우리가, 프레임에 갇혀서, 오직 드러나는 이미지만을 근거하여, 에이프릴 멤버들에 대한 새로운 가해를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이 사건을, 당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둘째, 지금 많은 사람이 에이프릴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이미 그녀들은 따돌림의 가해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이며, 그렇게 공고해진 이미지는, 설령 차후에 상황이 역전된다고 하더라도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왜 당신들은 이리도 급하게 그녀들은 죄인으로 확정하려고 하는가? 조금 기다리면 이미 있던 그들의 죄가 갑자기 달아나는가? 물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서 별것 아닌 사건으로 치부되면, 속히 진실이 밝혀질 일도 그르칠 수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분노와 광기의 무분별한 난립은, 없는 죄도 만들어 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대중의 선택적 분노를 적절히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게 가장 무시무시한 건데, 지금 에이프릴의 가족에게 자행되는 무분별한 가해를 속히 중단해야 한다. 이나은의 모친이 왜 이 정도로 심각한 인격살인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존재나 행위는 내 부모의 잘못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은 것 같고, 내 잘못은 다 부모의 영향인 것 같은가? 그렇다고 해보자. 분명, 가정 환경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가정 환경이 자식으로 하여금 타인을 가해하도록 적합하게 조성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가정 환경이, 자식이 가해자가 되기 유리한 조건으로 기능하는가? 만약 그러한 가정 환경의 기준이 존재한다면, 그 부모는 그러한 나쁜 가정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인가?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이 가해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유도하지 않거나, 또는 자식에게 가해를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부모에겐 자식의 잘못 '자체'에 대한 잘못이 있는 것인가? 사회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에이프릴 멤버가 현주를 따돌림 한 것이 확실하다면 그들의 부모는 자식의 잘못에 대해 인지하고 현주를 위로해 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설령 에이프릴의 잘못이 확실하다고 해도, 그녀들의 부모에 대한 대중의 맹비난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비난은 옳은 곳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 상대를 무참히 말살하는 비난은 옳은 것인가? 설마 현주가 감당한 고통의 양만큼 에이프릴 멤버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줘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만약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옳은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현주가 에이프릴 멤버에게 해야 할 일이지, 당신들이 에이프릴 멤버의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넷째, 따라서 섣부르게 결론짓지 말자. 지금 상황을 보면 사실이 난립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만이 난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장과 사실은 동치가 아니다. 물론 양측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두 상반된 주장은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하다. 왜냐하면 '가해의 의도 없이 피해자가 생기는 상황'은 전혀 모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측의 주장과 믿음은 사실의 영역을 벗어난 가치의 문제이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 두 주장이 모두 옳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피해를 호소하는 주장만 믿고 가해를 부정하는 주장은 믿지 않는 것인가? 확실한 근거 없이 피해를 긍정할 수 있다면, 동일한 방식으로 피해를 부정할 수 있다. 이 우주라는 존재가 신의 존재의 근거라고 주장할 수 있음과 동시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 나름의 근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해석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니까 현주가 피해를 받으면서 동시에 에이프릴 멤버들이 현주를 가해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가능하다.

우리가 에이프릴 멤버를 가해하지 않으면서 현주를 응원하고 변호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어떤 비난자도 현주를 대리하여 에이프릴을 비난할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다. 물론 비난은 자유이지만, 그 자유에 의한 비난은 '너 잘 걸렸다' 식의 개인적인 화풀이이지, 현주를 위해 필요한 정당한 분노는 아닐지도 모른다. 비난의 목적이 교도가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재기 불능의 상태로 끌어내리기 위함이라면 이 또한 굉장히 불건전하다. 대부분의 비난은 건설적인 비판에 비해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현주가 괴롭힘을 당했다면, 이때 현주에게 부여되는 건 '반사권'이지, 동일한 '가해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약간 말장난이긴 한데, 어쨌든 현주도 가해를 하긴 싫을 거 아닌가? 아무튼 여러분들이 현주에게 대리권을 위임받은 마냥 방종되게 굴지 않길 바란다. 서수진 사건도 이와 본질은 같다. 물론 서수진의 경우는 무대응으로 인한 암묵적 시인으로 보이기도 하다만, 그럼에도 진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에이프릴을 가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주를 보호하는 것은 가능하다. 부디, 지성인으로서의 현명한 상황 판단을 기대한다. 불필요한 가해를 지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