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신 같은 일침류 甲

2022. 7. 4. 18:51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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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사람도 연애 잘만한다' = '팔 한짝 없어도 일 잘할 수 있다'결국 못생긴 요인때문에 남들보다 배로 어려운거 맞는데굳이 못하는 사람을 더 병신으로 몰고가려는 쓰레기같은 일침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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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글이 너무 웃겨서 가져와 봤다.

'못생긴 사람도 연애 잘만 한다' = '팔 한 짝 없어도 일 잘할 수 있다'

결국 못생긴 요인 때문에 남들보다 연애 배로 어려운 거 맞는데, 굳이 못하는 사람을 더 병신으로 몰고 가려는 쓰레기 같은 일침

저 말을 잘 생각해 보면 결국,

못생겼는데 연애 안(못) 하고 있는 놈 = 못생겼는데 성격도 병신 같은 놈

댓글이 엄청 많이 달렸는데, 다양한 생각들이 정말 많다. 궁금하면 본문을.

내 생각에는, 본문의 유튜버들의 말이 맞는 부분은 분명 있다. 아니, 정확히 맞다. 왜냐하면 저들은 맞을 수밖에 없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의 단정적인 견해가 그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여자가 남자의 외모만 본다거나 오직 못생긴 외모 때문에 연애를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을 하는 자라면 이해할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외모만 보는 게 아니라 남자의 외모를 본다. 맹인인 경우는 제한다. 설령 맹인이더라도 상대 남성의 신체 사이즈를 따질 수 있다. '얼굴 못생겨도 매력 있는 남자들이 있어요'라는 말을 누가 못할까. 진짜 못생긴 사람들은 백날 발버둥 쳐도 연애하기 힘들다. 허구한 날 이상순 같은 특이 케이스 들고 와서는, '저거 봐라. 못생겨도 부수적인 능력이 있다면 최고의 여자 만나는 거 가능하다.'라고 떠들어 봐야 진짜 못생긴 자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저런 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는 여자는, 본인이 예뻐서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고만은 물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경험적 통계 감각에 따르면 분명히 못생긴 사람도 잘만 연애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여자들이 타깃으로 하는 구매자들은 연애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매우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만 받는다. 왜냐하면 진짜 못생겨서 연애를 못하는 자들은 탈도태의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실이 적은 이들의 비위를 저런 유튜버들이 맞춰 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진짜 누가 봐도 못생긴 여자, 성적인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일으키지 않는 여자가 외모 이외의 매력으로 연애를 잘만 하면서 저런 훈수를 두는 거라면, 극단적 구매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들은 이미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즉, 진짜 못생긴 자들의 인생을, 진짜로 못생겨서 겪을(얻을) 수밖에 없는 성격적 결함이나 정신적 고통을 모른다. 저들은 이미 기만자고, 외모 부자로서 외모 거지의 삶을 피부로 조금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기꾼으로 여겨질 만하다. 설령, 저들이 실제로 못생겨 봤고 (후천적) 노력(성형 따위)으로 잘생김을 쟁취해 내 부수적으로 연애와 자신감·자존감까지 얻게 되었다면, 그것은 결국 잘생김이라는 속성을 스스로 인지하게 된 이후에 변개된 마인드가 저들의 연애관을 다르게 했을 뿐이지, 못생김에 대한 만인의 태생적 거부감을 소거하는 건 아니다. 못생긴 자가 아무리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심지어 연애를 잘만 한다고 하여도 못생김 자체가 열등한 속성이 아닌 건 아니다. 그리고 그 부정적 힘은 막대하다. 못생겨도 다른 매력으로 연애를 할 수는 있지만, 못생기면 연애를 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못생김은 열등한 속성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 열등한 속성을 어떻게든 다른 우등한 속성으로 상계해야 하는 것은 못생긴 자의 숙명이다. 타고남이 인생을 얼마나 처절하게 결정하느냐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직선적인 예가 바로 연애 시장에서의 외모의 권력이다. 선천적 외모는 조선 시대 계급제이다. 반면 후천적 자기관리는 현대의 선거제와 같다. 잘난 외모를 타고남으로써 이미 왕위에 오르는 자가 있는 반면 노예로 결정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자기관리를 통해 노예를 벗어나는 자가 있는 반면 아무리 노력해도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소 결과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데, 태생이 못생긴 자, 즉 노예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어찌어찌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고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매력을 키우면서 발버둥 치더라도, 궁극적인 목적(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인 연애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노예이다. 왜냐하면 그의 목적은 연애이기 때문이다. 태생적 못생김의 극복이 연애라는 장벽을 뚫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연애가 목적인 자에게는 이미 극복이 아닌 것이다. 못생김이 인간관계의 장벽이든, 취업의 장벽을 만든다는, 오직 그러한 이유만으로는 한 사람을 절망으로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거추라는, 성욕과 진정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순정남에게 못생김이란, 연애라는 목적의 좌절에 있어 절망과 우울, 자책과 세상을 향한 분노의 명명백백한 결정적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