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할당제가 정당하다면 여성 할당제도 동일하게 정당한 거 아닌가?

2022. 7. 4. 18:50생각

박성민, 박지현, 류호정같이 논란 있는 여성 청년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 임명의 명분이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불공정하다는 말이 나오는데(류호정의 경우는 무려 비례대표 '1번'에 지정되었는데, 왜 그러했어야 했는지는 당 내부의 사정과 결정 근거를 알 수 없는 관계로 넘어가도록 한다), 여성 할당은 잠시 제쳐두고, 청년 할당에 대해서 먼저 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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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3)“국회의원 30%를 청년에게 할당하라”

한국에서 2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운동이 한창인 12월 19일 외신은 칠레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젊은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보다 평등한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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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여성·청년 할당제, 정말 ‘시대착오적 잔재’일까? - 시사IN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권의 여성·청년 할당제를 줄곧 비판했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배려의 잔재” “과도한 갈등 유발자”라며 할당제 폐지를 당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 국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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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본 바로는 청년 할당제가 의무화되어 있는 분야는 매우 드물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 시에는 여성에게 50%를 할당할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청년 비례대표 할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21년 기준 대한민국 청년 국회의원(40세 이하(청년층이라고 하면 15~29세이지만, 의원에서는 40세 이하까지를 청년으로 본다))은 스무 명 중 한 명 꼴로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청년 고위직은 드문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간단하게 답이 도출되는 것 같다. 나이가 실력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젊은 자보다 노쇠한 자가 더 실력이 있거나 그로 인해 축적된 경륜이 있다. 물론 노하면서 쇠하는 시기의 노쇠한 자가 언제까지고 자신의 실력을 유지할 수는 없는 터이므로, 다음 타자, 즉 중장년이 되어가는 청년이나 이미 중장년인 자에게 바통을 넘겨 주게 된다. 청년이 청년이라는 이유로 고위직을 맞지 못할 이유는 없다. 4~50대 정치 초년생보다 30대의 노련미 있는 정치인 개준스기가 차라리 (정치 면에서는) 더 실력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청년은 경험적으로 드물다. 우선 청년은 아직 배우는 단계다. 배움의 완성은 없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충만하게 다져지는 시기는 (상대적이지만 그럼에도) 십수 년을 꾸준히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온 중년층(30~49세)부터 간신히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년의 시작점이라는 기준을 딱 잘라서 무엇에 적합한 시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대체적으로 20대는 무언가 중책을 맡기에 미숙해 보이긴 하다. 그러나 이 역시 특별하게 그래야 하는 근거에 기반한 판단은 아니다. 당장 내가 아는 20대 중, 당장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맡겨도 대단한 결과를 이끌어 낼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케이스는 드물며, 실제로 그가 중역에 자리한 뒤에 무언가를 결정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무엇 이전에 기량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무엇 이후에도 그 기량을 유사하게 발휘할 거라고 전이적 판단을 해서는 착류를 범하게 될 것이고, 이는 성급한 예단에 의한 오판이다. 사람마다 무언가를 알고 충분히 배우게 되는 시기는 천차만별이지만, 20대는 무언가를 탁월히 해내기에 충분한 실력이 갖춰지는 시기라고 보기에 일반적으로 이르지 않나 싶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산수를 가르치기 위해 중년층에 들어서야 할 필요가 없듯이, 정치적 소임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꼭 청년층을 벗어나야 하는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란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여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역할을 소임 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자신이 속한 청년층을 아울러 중장년층, 노년층, 심지어 영유아와 아동층의 이익까지 생각해야 하는 자리이다. 청년 정치인이라고 반드시 청년 정치인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울 필요도 없고 현실적으로, 청년에게 실질적 이익이 가게끔 정치를 해내는 것도 어려우리라. 박지현이 청년 정치인 이준석을 자격 미달로 치부하고 2030 남성을 배척하거나 여성을 더 위하는 태도를 내보이는 것과 같이 박지현은 청년이지만 모든 청년을 위하는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게 된다. 물론 시대적 소명을 이룩하기 위해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박지현이나 박성민, 류호정은 타이밍을 잘 잡았다. 이 시대가 원하는 니즈를 잘 포착하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민주당에게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박지현은 표몰이로서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런데 또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물론 개준스기도 2030 남성의 표몰이로 적합한 인재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청년의 힘이 강해지려면 청년이 권력을 쥐어야 하는데, 청년이 일반적으로 실력이 없으므로, 청년 할당이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 평가되어 청년 할당제가 시행되지 않아 청년이 조금의 정권도 장악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청년은 언제,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는가? 즉, 할당제 없이 청년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면, 청년 할당제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해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에 나는, 청년이 실력이 없다면, 그리고 실력 없는 청년이 정권을 잡더라도 청년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청년은 정권을 잡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년이 실력이 없거나 청년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청년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건 아니므로(보장되는 것은 아니나, 보장될 수 있다), 청년이 이러저러한 이유(실력 없음, 청년 이익 보장 못함)로 정권을 잡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중장년 정치인이 청년 정치인보다 청년의 이익을 더 잘 보장한다면, 굳이 청년이 정권을 잡을 이유가 없다. 개준스기나 박지현이 각각 '2030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세대를 직접 살아가고 있고 가장 가까이서 경험한 자가 필요한 듯도 보인다.

청년 할당제와 여성 할당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분명 차이가 있다. 우선 청년은 언젠가 중장년 기득권이 될 가능성이 항존하고(물론 그 안에서 소수만이 가능하겠지만), 여성은 성전환을 하지 않는 한 남성 기득권이 될 가능성이 태무하다. 즉, 청년은 시간의 흐름과 힘의 축적에 따라 본질적인 계층 이동이 가능하지만, 여성의 본질적인 성별적 속성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차별적 할당제의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청년들 중 누군가가 언젠가 중장년 기득권자가 될 것이듯이, 여성들 중 누군가도 남성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여성 기득권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청년들에 비해 특별히 더 배려 받고 할당되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