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2021. 12. 15. 00:57습작

골목이긴 골목인데, 경사가 진, 그러니까 올라가게끔 된 경사로에다, 돌층계가 균일한 규격으로 축조된, 폭이 좁은 양옆의 벽면은, 건물인데 일반 가정집으로 추측되며 벽을 타고 배수관이 길게 세로로 뻗어 있고, 그 배수관 아래쪽 끝부분에 수챗구멍이 나있고, 벽엔 경사로를 따라 평행하게 설치된 철 손잡이가 옹골차게 매달려 있으며 마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거리를 연상케 하는, 그러니까 민가에 빽빽하니 관광객이 들어찼는데, 군중 위의 집 창문에서는 이불을 널고, 꽃바구니에 물을 주는 모습이, 두 상반된 목적을 지닌 자들의 공존을 보여주는 듯한 부조화적 조화를 보여주는 듯하는 화창한 어느 오전의 그 골목엔 여느 때처럼 평범하여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아닌, 나체의 여성이긴 한데 마르고 체구가 아담하여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덜자란 성인인지 혼동케 하는, 그 체구에 의해 연약해야만 한다는 편견을 자아내는 아동적인 성인 혹은 성인적인 아동이 망연하고 초탈한 듯한 멍한 표정으로 정처 없이 경사로 아래로 활강하듯 내려오고 있고, 내 뒤로는 이족 보행은 하지만 절대 그것이 인간이라고는 간주할 수 없는, 양서류나 파충류 따위로 추측되는, 아니, 그건 지구 생명체의 분류 체계를 따른 구분이지 외계 종이라면 양서류나 파충류 둘 다 아닐 것인, 그러나 어쨌든 통상적인 양서류의 개구리나, 파충류의 카멜레온을 혼합한 것 같은 외양을 띤 거대한 체구의 괴생명체가 따라 올라오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 껴있는데 규간窺間에 사잇길로 빠지고 싶지만 다닥다닥 붙은 축조물들 간의 극혈隙穴이 포착되지 아니하고, 두 이상한 존재물들 사이에서 은유적인 의미의 짜부됨을 피하기 위해 어떠한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공규孔竅 따위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바, 조금만 더 폭이 넓었으면 이러한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낸 길이냐며 불평하는 차에 전면의 나신의 규수가, 야하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을 조장하는 그 자태를 자랑하며 코앞까지 당도하려는 찰나, 옆으로 비껴가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걸음 속도를 늦추고 몸을 왼쪽으로 틀었는데, 비킬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이, 그러나 작은 체구 때문에 굳이 비킨다는 표현도 어려울 정도로 협로를 다 막지는 못하는 어린 체구를 지니고 털레털레 직진하는 그 여자는 옆을 보고 있는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고, 뒤따르던 개구레온(개구리 + 카멜레온)의 거대한 몸집 그 어느 사이도 비집고 지나갈 수 없음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지, 그 작은 여자는 그대로 그 거구에 들이받는다. 여자는 뒤로 벌러덩 자빠져 뒤통수를 계단 모서리에 찧은 후에 얼마 있지 않아 피 칠갑이 된 계단 층계와 혈 범벅이 된 자신의 몸을 목도하게 된다. 개구레온 역시 그 육중한 전진을 멈추고 피로 뒤덮인 여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여자는 지혈이 어떤 건지 모르는지, 피가 어디서 흐르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애초에 자신에게서 피가 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멀뚱히 주변의 핏물을 둘러본다. 개구레온은 킁, 하면서 냄새를 맡는 듯하는 제스처를 취한 뒤에 손인지 발인지 모를, 어쨌든 이족 보행을 하는 중이므로 위쪽에 달린 것이 손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뻗어 여자의 주변에 흩뿌려진 혈성血腥 악취가 심한 피의 호수에 적신다. 그러고는 둔중한 움직임으로 그것을 몸 쪽으로 회수하여 입으로 가져간 후에 쪼옥 빠는 모션을 취한다. 온통 흰자이던 개구레온의 눈이 갑자기 빨간 상태로 전치되고, 몸을 구부려 비교적 긴 혀로 여자의 주변에 있는 빨강이란 빨강은 모조리 흡혈한다. 여자의 몸은 녀석의 체액에 도포되는데, 마치 씻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를 정도로 그 거슬리던 빨강의 이미지가 여자의 몸에서 빠르게 사라져 간다. 여자는 마치, 몇몇 여자들의 클리토리스가 자신들이 키우는 애완견의 현란한 빙설騁舌에 의해 오르가슴에 도달해 버리는 것처럼, 안와에서 눈동자가 굴러가는 마냥 검은 자위가 자취를 감추듯이 뒤집어져서는 온몸을 전율하듯이, 미세하게, 그러나 매우 빠르게 떤다. 그녀는 전성顫聲으로 말을 내뱉으려는 건지, 신음하는 건지 모를 정도의 미세음으로 간신히 내 청각을 자극한다. 그것도 녀석의 지색舐嗦의 소리에 묻혀, 의미가 담긴 발어를 하는 건지, 단지 반사적인 무의미적 교성에 지나지 않는지 도통 분간할 수 없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와 개구레온은 동시에 발기를 했다. 녀석은 소리에 민감한가 보다. 나 역시 그렇다. 도대체 저 기괴한 생명체의 내장 기관의 성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인간의 교성으로 발동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녀석의 거근이 그녀의 몸속을 헤집게 둘 수는 없음을 판단하고, 나는 흥분한 상태로 몸을 날려 무게를 실어 녀석의 가슴팍을 힘껏 발로 내지른다. 녀석은 기우뚱하더니 경사로를 따라 뒤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한참 올라왔으니 만약 끝까지 떨어진다면, 그 둔중한 몸으로 다시 올라오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다. 나는 즉시 피와 녀석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소녀를 들춰매고는 얼마 남지 않은 계제階除를 냅다 뛰어 올라갔다. 끝인 줄 알았던 계단의 끝은 층계참이었고, 더 올라가야 할 층계가 건물 끝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녀석이 죽지 않고는 살아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이쪽을 올려다보면서 포효를 내지르며 기어올라오는 태세를 취했다. 그래봤자, 좁은 골목의 폭과 녀석의 육중한 체적의 협응으로 보아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이 걸릴 터였다. 눈대중으로 따져봤을 때 내가 사정하는 시간 내에 절대로 올라오지 못하리라는 판단에 도달했다. 내가 지금 이 소녀를 겁측하려는 이유는, 적어도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세계가 내가 알던, 내가 살았던 우리 세계의 원리나 상식을 이탈하는 듯하여, 무법지대에 놓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금의 나의 행위는 범죄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게 자명한 것이다. 이는 내가 본래의 인간 세계를 직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증명된다. 나는 지금 다른 세상에 온 것이다. 저 아래에서 씩씩거리며 느릿느릿 올라오는 물괴를 보라! 저게 지금 지구에 존재하던, 애초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는가? 난 다른 세계에 놓여버린 것이고, 이 소녀가 지구에서 같이 딸려왔다면 나는 이 여자를 범하더라도 속지주의에 따라 지금 세계 아닌 세계의 법칙에 구속되지 아니하며, 이 소녀가 지구인이 아니라면 더욱 나는 이 여자에 대한 동류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간음에 대한 범죄성이 성립되지 아니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단지 나의 바람이거나 미지에 대한 가능성일 뿐이지만, 더 이상 나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겠다. 여자를 정자세로 눕히고 거사를 시작한다. 저항이 없고, 몽롱한 표정으로 내가 아닌 어딘가의 허공 먼 곳을 응시한다. 괴물이 당도하기 전까지 느긋하게 이 페니스의 감촉에만 집중할 수 있을 터다. 그때 소녀가 또다시 미세한 교성을 우짖는다. 어디서 듣던 소리 같기도 하고, 어쨌든 보통의 여성의 교성은 아닌 듯하다. 하이톤인 것은 확실하지만, 사람이 내는 것 같지 않은 규칙성이 내심 이상하다. 갑자기 소리가 멈추더니 무언가가 나를 격하게 붙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우더니 묵직한 목소리로 내게 지껄인다. 당신을 아동 청소년 강제 추행 및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한 용의자로 긴급 체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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