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탕獨湯의 비극

2021. 12. 15. 00:56습작

* 김승옥의 초단편 소설 <삶을 즐기는 마음>에서 착안함.

나와 아내는 헬스장에서 만났다. 당시 아내는 카운터에서 기본적인 안내나 사물함 키를 전달하는 등의 고객을 응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구직보다도 헬스장에 대한 물색이 더 시급할 정도로 보디 미용에 열정적인 때였던지라 당시 그 지역에서 제일 컸던 그 헬스장은 나에게 최적의 운동 시설로 간주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졌었다. 헬스장 첫 등록 때 아내가 인포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굉장히 초반부터 아내를 봤던 것은 확실하다. 상경 이전까지는 시골에서 죽 지냈고, 출타도 거의 하지 않았던지라 젊은 여자를 실제로 거의 보지 않고 지내는 날이 허다했다. 전염병에 의해 마스크를 쓰는 시국이지만, 외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하관이 차폐되고, 다른 부위에 비해 비교적 쉽게 건들 수 있는 눈 성형이 보편화되고 거기에 눈 화장의 기술이 현격하게 발달된 시점이라, 웬만하면 다 예뻐 보일 수밖에 없는 마기꾼들이 득실하던 와중에도 단연 독보적으로 빛나 보이던 당시의 아내는 많은 몸 좋은 남성 회원들의 먹잇감으로 내정되었을 공산이 컸다. 헬스장 인포가 몸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 마케팅적으로 볼 때, 외양이 호감적인 직원이 다수 상주하는 업장에는 적극적인 홍보가 없더라도, 미남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 자연적으로 모객이 된다는 점에서, 구인할 때에 겉으로는 구체적으로 언표 하진 않더라도, 은근히 자신의 높은 외적 가치를 아는 자들만 지원해 주길 바라는 사용자의 마음이 여실히 묻어난 결과가 그 당시의 아내이리라고 생각된다. 당시에 나는 타고난 듯이 보이는 독보적인 몸매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두덩이, 눈꼬리가 쳐진, 왠지 눈 주변이 멍울졌다고 느껴지는 강아지 같은 순진하고 처연한 눈이 돋보이던 그녀를 보자마자 정말 내 스타일인 눈이라고 여겼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순한 눈이다. 그러한 눈에 완전히 걸맞은 성격이 아니란 건 지금에 와서 알지만, 어쨌든 눈 말고 판단할 그 어떠한 단서도 없었으니, 난 내 이상적 취향에 부합하는 그러한 외양을 두고, 머릿속으로 할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자의적으로, 나에게 만족스럽게 그렸다. 선뜻 나서는 성격은 아닌지라, 당장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할 수는 없었고, 그냥 그냥 얼마 동안 꾸준히 운동을 다니면서 눈도장을 찍다가, 우연히 집 근처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운동을 뜸하게 나가게 되더니, 종국에는 주에 6일을 하던 운동을 주 1회도 간신히 나가는 형국에 직면하게 됨으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각지하게 된다. 한 달여를 버티고 버티다가 일이 익숙해지면서 마음에 생긴 응어리와 스트레스, 불안증 등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점차 운동을 가는 횟수를 늘리게 되었다. 어느 날에 그녀가, 평소에 운동이 끝나는 모든 회원에게 공통적으로 발화하는 고생하셨습니다,가 아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 규격적인 발화 불문율이 깨지게 된다. 어디 다녀오셨어요,라며 그간의 내 부재에 대한 안위를 염문廉問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에 대한 잔여 스트레스에, 불안증을 깨끗이 소제하지 못하는 현실의 피뇌疲惱에, 시계에 포착되는 모든 여자라고는 일시적으로 별 관심이 가지 않던 참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정신이 망가진 상태는 아닌지라, 이것이 기회라고 판단되는 바, 덥석, 그러나 다행히 불안증이 여자에 대한 비이성적 갈급함을 상쇄시켰는지, 착하기만 하고 센스 없는 너드남처럼 호구스럽게는 아닌 정도로 초연하고 차분하게, 진중한 목소리로 나긋이 웃으면서, 일 스트레스 때문에 조금 걸렀느라고, 그녀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일이 힘드신가 보네요, 하고는 이어서 힘내시라고, 왠지 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어찌 보면 적어도 그것이 '나에게는' 부자연스럽기까지 한 친절한 관심과 반응을 내보이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거기서 나는, 이미 게임은 끝났다는 강한 확신을 통해 결국에는 결혼까지 이어지는 순조로운 구애와 연애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오늘에의 비극의 도달에 대한 개시를 의미했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리조트 겸 스파인 이곳에 일전부터 아내가 시간을 내서 가자고 졸라서 오게 되었는데, 와서 그 현장을 목도하니, 실로 그 위용이 압도적이었고, 아내가 괜히 조른 게 아니다 싶었다. 대중탕 개념의 혼탕이나 온천탕도 있고, 독탕獨湯 개념의 가족탕도 있었다. 대중탕은 여느 워터파크나 온천의 형태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지만, 은밀한 내부 공간인 독탕은 그 구조가 독특했다. 큼지막한 욕조가 방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다는 그 단조로움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것이었다. 마치 재료들을 삶기 위한 가마솥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우리가 재료로 비유될 수 있다면, 우리는 부형釜刑을 당하는 조선시대의 죄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상했던 점은, 세련된 색과 형태의 타일 바닥이 생각보다 뜨끈했다는 점이다. 벽은 보기에도 튼튼한 나무가 세로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차음遮音이 상당한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와 적막이 그 사실을 방증했다. 아내와 나는 생각보다 높은 훈기에 의아함을 품었지만, 뜨끈하니 좋다는 심산으로 의구심을 상쇄하고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독탕을 이용하고자 했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고 환풍구가 있지만 창문은 없었다. 그전부터 약간 흥분해 있던 차라, 그런 건 별로 신경 쓸 거리가 되지 않았다. 술도 마신지라 알딸딸한 것이 몸이 더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몸은 물론 내 몸 역시,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조각 같다. 아내의 히프는 타고나지 않고는 후천적으로 갖추기 힘든, 탈 동양적인 양태를 띠었고, 순진한 얼굴과는 미스매치인 것이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여 보면 볼수록 속으로 감탄을 금하지 않았다. 서로 옷을 벗고 나체로 탕에 들어갔다. 나는 탕 속 둘레에 형성된 턱에 앉았고 아내는 나를 마주 보면서 내 위에 몸을 포개 무릎을 구부리며 앉았다. 그러곤 서로 마주 보며 살며시 안았다. 내 음경은 아내의 음문을 당장이라도 발로 까고 들어갈 듯이 펌핑한 채로 문전에 성내며 당도해 있었고 아내는 문을 열어줄까 말까 하며 간을 보듯이 살며시 웃으면서 놀리는 듯이 나에게 키스했다. 그때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물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원래 이렇게 익힐 듯이 뜨겁게 끓이나,라고 불평하며 아내는 내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탕 밖으로 나가는데, 타일을 디딘 아내는 아악, 비명을 지르며 다시 탕으로 발을 담갔다. 탕에 몸을 담근 채로 몸을 숙여 탕 바깥의 타일 바닥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비정상적인 열 수치임을 직감하고, 지금 이 상황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구나,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우선 이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정도면 깡충 뛰어서 신발이 있는 데까지 갈 만했다. 다시 한번 바닥에 손을 대 봤다. 너무 뜨거워서 손이 익는 줄 알았다. 갑자기 확 뜨거워졌다. 이대로면 못 나가고 여기서 중탕되어 산 채로 데쳐지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발바닥이 화상 입어 까지는 한이 있어도 뛰어야 했다. 아내가 옆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그런지, 어찌할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물이 뜨거워서 그런지 발을 동동 구르니까 물이 첨벙거리며 뜨거운 포말을 일으키며 내 얼굴에 튀었다. 얼굴이 다른 부위에 비해 유독 더 뜨거운 것을 잘 느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익는 줄 알았다. 벽 쪽 옷걸이에 걸어놓은 옷을 신발 삼아 문까지 가고자 했으나 옷걸이도 욕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웬만큼 절급하지 않은 상황이 아닌데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압도적인 고온의 맛을 보니 찰나의 고통을 감내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다 타죽게 생겼다. 아니 익어버리겠다. 멀리뛰기를 한다는 심산으로 그냥 신발이 있는 문쪽으로 튀어나가기로 계획했다. 아내에게 짧은 몇 마디로 진정을 시킨 뒤에, 물론 아내는 진정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대차게 욕조를 발판으로 삼아 껑충 도약하다가 엄청난 온기에도 증발하지 않고 남아있던 미량의 물에 미끄러져 자빠지고 말았다. 면상, 특히 왼쪽 볼과 가슴과 양 팔, 배부터 대퇴사두근, 그리고 음경까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마치 용광로에 철퍼덕 엎어져 익어버리는 팔열지옥에 빠져버린 듯했다.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용수철처럼, 아니 뜨거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개구리처럼 펄떡거리며 간신히 문쪽으로 뛰어갔다. 단지 몇 회의 신들린 도약으로 신발에 안착했으나 신발은 이미 익어서 타일보다 더 뜨거웠고, 나는 이성을 잃고 손을 벌벌 떨며 단지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문을 열었다.

결말 1. 문이 열린다.

새벽이라 밖에는 아무도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설령 누가 있더라도 당장에 아내를 구하러 들어갈, 혹은 아내가 안전하게 나오도록 조치를 취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됐다. 안절부절한 와중에도 머리가 하얘져서 멍하니 가만히 있다가 아내에게, 그냥 당장 뛰쳐나오라고 소리쳤다. 아내 역시 머뭇거리더니 도저히 욕조 안의 물 온도 건, 욕조 둘레 대리석의 온도 건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판사판으로 뛰어서 내 품에 도달했다.

문밖으로 나왔으나 복도 바닥 역시 독탕 안의 타일 바닥의 온도와 다를 바 없이 뜨거웠고, 난 도저히 그 온도를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계속 발을 번갈아 구르면서 뜀질을 했다. 이성을 이미 잃은지 오래고, 벌써부터 피떡이 지는 발바닥의 작열통에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아내는 본능적으로 코알라처럼 나에게 매달렸다. 나 역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고, 두 배 가까이 무거워진 하중으로 인해 발이 바닥에 거의 붙어버리다시피 하여 작열통을 직통으로 받아야 하는 극강의 고통에 직면하니 옆의 아내가 '본능적으로' 걸리적거린다고 판단해버린 것 같다. 그 판단이란 것도 이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리라. 판단이 불가했다. 판단이라면, 그래, 아내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지는 것, 이게 진작 맞는 거였지,라는 생각이었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아내를 밀쳐내지 않고 우선 냅다 복도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뛴다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실상 발이 거의 녹아가는 수준에 접어들었고, 그로 인한 고통으로 발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이 정도로 완전히 마비될 만큼의 고통이 아니라, 초반의 미약한 작열통 정도였다면, 어쩌면 나는 아내를 밀어내어 발판으로 삼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의 종막에 도달했다는 직감이 들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살려는 의지를 북돋을 만큼의 교묘한 고통만이 가해졌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아내를 밟고 올라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까 전부터, 벽으로 세워둔 나무에 붙은 불로 인해 생긴 화재 연기가 폐에 들어차 숨이 가쁘다. 아내 역시 마지막이란 걸 직감했는지, 나에게 매달린 채로 울면서 귀에 대고 어떡하냐거나 혼절할듯이 울기만 하지 않고, 체념한 듯이 미안해, 사랑해를 연발한다. 그야말로 솟구치는 불기둥인 벽에 기대지도, 바닥에 드러누울 수도 없이, 그렇다고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도 않아 복도 한가운데에서 꼼짝도 못 하고 제자리에서 망연히 화마에 휩싸인 채로 나와 아내는 서로를 눈물로 응시하며 우리에게 남겨진 연緣의 종막을 마주한다. 나는 망부석처럼 꿋꿋이 선채로 아내의 발만큼은 보호하고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의 의지를 실현한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다.

결말 2.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발을 번갈아 구르면서 수차례 문고리를 돌렸지만 밖에서 잠겼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미칠 듯한 작열통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신발을 집어 들고 욕조로 뛰어가는데, 아내가 옷걸이, 하고 외치자 즉시 옷걸이 쪽으로 달려가서 떨리는 손으로 옷을 단숨에 집어 들고 욕조 위로 튀어 올라선다. 사방이 뜨거워 앉아서 발바닥을 확인할 수도 없다. 다시 타일을 밟고 문으로 가기에는 방금 경험한 극악의 고통이 떠오르며 온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액체라서 그런가 타일에 비해 그나마 물 온도가 낮지만,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이 정도의 기세라면 수 분 내로 우리는 펄펄 끓는 물속에서 익어가고 말 것이다. 아내가 욕조와 타일 바닥을 오가면서 도저히 어디에 정착해야 할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순간, 이런 꼴로 살이 데쳐진다면 누구에게라도 별로 보기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나가야 한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열려는 시도를 다해야 한다.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타일 바닥을 딛고 다시 문쪽으로 내처 달린다. 자연히 비명이 터진다. 살면서 느끼는 극한의 고통이란 게 바로 이거였구나. 온몸이 불로 타는 기분은 어떨까, 이것보다 백 배는 더 심하겠지, 생각하며 다시 문고리를 맹렬하게 돌린다. 열리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벽으로 세운 나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나는 더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문고리를 부수려고도 해봤지만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러니까 지금 같은 이러한, 온전히 힘과 이성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문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바닥이 거의 녹아내려 피떡이 지고, 뼈가 드러난다. 뼈가 타일과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발가락이 녹아버리면서 몸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도 때문에 나무에 불이 붙고 살이 녹아내릴 정도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고온이어야 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내는 천명喘鳴으로 외치면서 빨리 욕조 쪽으로 오라고 발을 번갈아 구르며 손짓한다.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아내 쪽을 올려다보니 유방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이 목도된다. 하필 이 상황에 왜 그것이 유독 눈에 띌까. 하필 이 상황에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물론 없지만, 뭔가 고결해야 할 최후의 무드가 외설로 대치되는 것 같지 않는가. 아니다, 저건 절박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 고결 따위는 없다. 나는 다시 살아난 감각에 의해, 아니 애초에 발바닥 외에는 멀쩡했던 다른 부위의 작열통에 의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켜 욕조로 올라선다. 아내가 욕조와 바닥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뜨거운 물을 내 몸에 튀기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화재 연기는 이제 맨정신일 수 없게끔 뇌의 산소를 서서히 차단시킨다. 물은 증기와 포말을 뿜으며 펄펄 끓고, 사위에서는 화마가 집어삼킬 듯이 덮쳐온다. 불을 피해 물로 들어갈 수도, 그렇다고 물을 피해 물 바깥의 작열하는 화염을 맨살로 맞을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는 엉엉 울면서 서로 부둥켜안고는 물에 몸을 반쯤 담근다. 온몸이 녹아가는 중인 동시에 거의 다 나가버린 정신에서도, 손으로 물을 사방으로 뿌려대지만 별 효용은 없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여태 본 적이 없는 시뻘건 피부에 그을음이 가득하다. 그 안에서도 화장기 없는, 내가 처음 보고 반했던 그 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비치는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이것이 우리가 서로의 모습으로 간직할 마지막 기억이다. 감동은 없다. 그 어떠한 교훈도 없다. 그런 허울 좋은 것들을 만끽할 여유나 여력이 없다. 단지 우리는 반은 익고 반은 타면서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상황에 무슨 더 깊은 생각의 여유가 남아 있을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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