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ffhanger

2021. 12. 15. 00:58습작

나는 지금 절벽에 매달려 있다. 그러니까, 이건 어떠한 유의 난관인 상황에 대한 아찔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진짜 절벽에 매달려 있다. 가파른 산이 되었든, 높은 건물이 되었든, 소형화된 신체로 여성의 빈유 끝에든, 어쨌든 뭐가 되었든 나는 바닥과 멀찍이 떨어진 높은 곳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비유적인 것이 아니니 물리적으로, 실제로 내 육신이 내 현재의 처지를 절감하면서 현저히 느끼고 있다. 평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두었던지라 잠깐은 매달려 있을 만하지만, 평균 이상의 체중에 의한 하중을 감당하는 것이 상당히 버거우므로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악력의 쇠진 끝에 점점 벌어지는 손아귀의 비접착성을 정면으로 맞이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나는 허공에 얼마간 부웅 뜬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똥구멍 위 꼬리뼈 쪽의 전율과 소름을 느끼면서 활공하여 직하直下할 것이다. 저 아래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난 지금 어디에 매달려 있는 거지? 주변이 너무 어두워 시계에 아무것도 포착되지 아니한다. 실제로 매달려 있지만, 시야가 암막이다 보니 마치 정말 비유적인 매달림의 상태에 놓인 듯도 하다. 그러나 1초, 1초가 갈수록 급격하게 가중되는 팔의 무리, 그리고 손의 움켜쥠이 벌어짐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것을 감각할 때는 이것이 비물질적인 현상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극명히 직감한다.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손을 놓친다. 활공 상태다. 허공 답보를 하듯이, 비물질적인 속성이지만 물질계에는 통용되는 가상의 발판을 상정해 보지만, 그 어떠한 것도 발에 채지 않는다. 쭈욱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는 부웅 떠있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시야가 차폐되어 더 그런 듯하기도 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물속 같기도 하고, 아니, 물이었으면 아까 그렇게 심한 중력을 느낄 수가 없지. 그러나 그건 아까고, 지금은 진짜 물속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신체는 물이 아닌 곳에 있었다가 물인 곳으로 공간적 전치를 경험한 것인데, 수중으로의 직하감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정신 능력이 벌써 망가져가는 징후인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님이 확실하지만 내 이성이나 감각이 선명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꿈이거나 비유적 상황이 맞다. 얼마나 현실이 힘들었으면 이런 끔찍하고도 생생한 꿈을. 물론, 현실의 상태와는 별다른 관계없이 이런 유의 꿈을 꿀 수는 있다. 꿈의 내용이 현실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인과적인 연구는 지지부진할뿐더러, 설령 둘 사이의 필연적 관련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러한 유형으로 나타나야 한다'라는 규격화된 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 너무 현실과 꿈의 '자의적 연관 지음(해석)'에 의존하지 않을 필요가 있겠다. 물론 이것이 실제 꿈이라야 해석이라는 판단이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단시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직도 얼마간 떠 있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높이 있었는가. 아니, 얼마나 깊이 떨어지는가. 살아서의 죄의 깊이만큼 비례하여 떨어지는 건가. 조금 있으면 지옥문에 당도할까. 내가 살면서 그렇게 심한 죄를 지은 것은 없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있다면 단지 로리라는 여체에 대한 연모 정도랄까. 단순히 그러한 섬약하고 피잔疲孱한 체신을 흠앙하고 사상寫像했다는 이유만으로 한없는 나락을 맞이하게 될 만큼 그것이 이렇게 깊은 죄였단 말인가? 이 직하의 종막은 무엇이란 말인가. 난 단지 사상 형성의 절대적인 자유를 향유했을 뿐이란 말이다. 사상으로라도 난 소아를 강음한 적이 없다. 아, 소아이기에 그 심신에 대한 압취와 겁간이 적용되는 것이었나? 그러나 적어도 내 사고 내에서의 '우리'는 합의된 관계를 맺었고, 엄밀하게는 내가 만들어 낸, 즉 내가 설계해 낸 내 소우주에서, 적어도 거기서만큼은 창조자인 내가 부여한 조건화에 의해 그녀는 어떠한 경우라도 겁측을 당할 수 없게 조작되었었다. 그녀는 애초에 탈겁脫劫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는 안정의 상태로 전제되어 있었고 그녀의 의사는 사실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볼 만큼 그 실체가 없는, 그러니까 그 정신적인 상태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애초부터 나의 전권에 순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 상상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소아의 체신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한 인형인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끌어온 적도, 그 상상의 행위를 물상계, 즉 우리 우주에서 실현시키고자 마음먹은 적도 없다. 난 단지 내 금단의 밀장密藏 속의 이상적 표상을 모애했을 뿐이다. 도대체 그것이 얼마만큼의 큰 죄가 되기에 관습적 금기가 적용되지 아니하는 이세계인 지옥에서마저 내 일말의 취향은 존중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혼륜渾淪한 채로 규성하며 나는 아내의 빈약한 가슴을 움켜잡으면서 몽혼夢魂으로부터 성각醒覺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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