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 vs 안읽씹

2021. 12. 8. 15:55생각

https://www.youtube.com/watch?v=e-YujV-YadE 

 

카톡 읽씹과 안읽씹 중에 무엇이 더 나은가? 나은이는 읽씹이, 예은이는 안읽씹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나은 : 카톡 1의 소멸 후의 무응답은 대화의 종식의 의지를 표명하는 행위이다. 상대에 대한 호불호의 여부를 떠나서 대화의 연장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부작위적 의사표시이다.

예은 : 읽씹이 명백한 의사 거절 행위라는 주장에 일면 동의하지 않는다. 애초에 카톡에서 씹는 행위라는 것이 의사 표명에 반드시 함축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 주장에 부당성이 존재한다. 이미 1을 없앤 후, 나중에 대답을 하려고 미뤄두었다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명백한 거절의 의사 표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안읽씹은 이해될만한 허용 범위가 더 넓다. 실례는, 바빠서 읽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안읽씹에는 명백한 거절의 표명이 없다. 물론 맥락상 거절로 추정되는 경우는 존재할 것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잠정적 의사 지연이라는 점에서 열린 태도로 수용이 가능하다.

나 : 안읽씹이 이해될만한 적당한 허용 시간은 그 사람의 성향과 상황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상 이것은 용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잠정적 의사 지연이라는 것도 이러한 오해와 같다. 애초에 안읽씹은 잠정적으로 미뤄지는 무응답이 아니라 잠재태가 반드시 현실태로 변환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즉 안읽씹 당한 사람이 다른 대화의 포문을 열기 전까지는 1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물론 이러한 엄격한 허용 범위는 논의의 대중성을 위해 지양될 것이지만 원어의 정의는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개인에 따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혹은 다음 대화 시까지라고 유연하게 인정한다. 나는 이 다양한 범위 중 다음 대화 시까지 안읽씹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들어, 한없이 지연되는 명백하지 않은 의사 표명 즉, 회피하는 행위를 '안읽씹'이라고 정의하는 바이다.

예 : 당신이야말로 언어의 사용이 잘못되었다. 회피에는 의사 있는 회피와 의사 없는 회피가 있다. '회피함'은 의사 없이 불가능하다. '회피됨'은 의사 없이 가능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졌는데 돌이 비껴나갔다. 이때에 개구리는 돌로부터 회피되었다. 명백한 의사가 있어 회피를 의지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안읽씹을 한 자가 단지 해석의 측면에서, 명백한 의사로 회피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안 읽고 씹었다'라는 말도 중의적이어서 혼동의 여지가 크다. 능동형인 '안 읽고'와 마찬가지로 능동형인 '씹었다'의 결합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 안 읽는다는 것은 읽을 대상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읽지 않고' 인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카톡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상대로부터 카톡의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내용은 읽지 않은 상태이다. 그것도 개인 대화방에 들어가지 않고 카톡 대화 메인 화면에서도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야 하며 오직 핸드폰 상단에 메시지 내용이 가려진 형태로, 메시지의 수신 사실만을 인지해야 한다. 이것이 읽지 않음이다. '읽다'를 '확인하다'라고 확장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까지의 판단만으로는 크게 다르게 해석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씹는다와 결합되면 우리가 논의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읽지 않고 씹었다는 것은 상대가 무슨 내용을 보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씹는 경우이고, 확인하지 않고 씹었다는 것은 아예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애초에 '씹었다'라는 능동형이 결합할 목적어가 부재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이는 자고로 판단 대상이 없는 무의미한 상황으로, 논의의 비난 대상으로부터 탈각되는 사례이다. 지금 이 논의에서 무대응자의 행위의 범위를 '메시지가 왔음을 인지했지만 대응하지 아니함'이라고 한정해석한다면 그야말로 확증 편향의 표본이 아닌가?

나 : 당신이야말로 논의의 범위를 불필요하게 확장하고 있다. 용어 사용의 관용성을 이해하여 유연하게 용인되어야 할 것인데, 당신은 엄격한 문법적 분석을 하고 있다. 설령 당신의 분석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안읽씹'의 '씹었다'를 능동형으로 해석하여 '안읽'을 '내용을 읽지 않고 수신 사실만 확인함'이라고 연언지로 묶는다면 '안읽씹'은 문법적으로 적절한 호응을 이루게 된다. 즉 '확인하지 않음'이 '씹었다'와 호응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연언지 도입으로 '메시지를 읽지 않음'과 병치시킨다면 의미의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기호화하면 아래와 같다('+'는 단순 결합의 의미로 사용했다.).

~확인 + 씹었다 (x)

(~읽음 ∧ ~확인) + 씹었다 (o)

예 : 안읽씹이 상대방 메시지의 수신 사실만 확인하고 씹는 행위라고 인정한다면, 이 논의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주게 되고 만다. 사실상 이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고 씹었느냐, 몰랐느냐('모르고 씹었다'는 의미상 모순이므로 삼간다.)이다. 처음부터 전제를, 메시지 수신 확인 후, 카톡 대화창을 눌러서 1을 없앴느냐 그러하지 않았느냐라고 설정한다면 안읽씹러에게 그나마 남은 면죄부마저 박탈하는 꼴이 되고 만다. 아 '그나마 남은'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애초에 어떤 안읽씹러에게는 면죄부가 적용될 죄가 없다. 카톡이 수신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애초에 면죄된 자이다. 안읽씹러의 범위를 한정한다면 선한 안읽씹러에게 죄를 부여하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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