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8. 15:52ㆍ생각
https://www.youtube.com/watch?v=-OZXtG647Xc
[요약]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기술한다. 그런데 일상 언어로는 세계를 기술하기가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표층에 있는 문법 구조와 심층에 있는 논리 구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 언어를 논리로 바꿔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레게는 의미론적 값에 대해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유명사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지시체reference를 뜻한다. 가령 문재인이라는 고유명사의 지시체는 존재한다. 그런데 홍길동의 지시체는 무엇인가? 홍길동에 대응하는 지시체가 없기 때문에 홍길동이라는 고유명사의 의미도 없다. 그런데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라는 문장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가? 이것이 고유명사의 의미를 지시체라고 간주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개밥바라기 = 금성 = 샛별
위 지시어들의 지시체는 모두 같다. 예은이는 "개밥바라기는 샛별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고유명사가 지시체라는 것에 의하면, 개밥바라기와 샛별에 대응하는 지시체를 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대응되는 지시체들이 같으므로 개밥바라기와 샛별이 같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예은이가 "개밥바라기는 샛별이다."가 참인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 예은이는 "개밥바라기는 샛별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지만 이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2. 예은이는 '개밥바라기'와 '샛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안다.
3. 고유명사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지시체일뿐이다. (가정)
4. 예은이는 '개밥바라기'와 '샛별'이 같은 지시체를 가진다는 것을 안다.
5. 예은이는 "개밥바라기는 샛별이다."라는 문장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
위의 추론 과정에서 1과 5의 모순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순신은 이순신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순신은 충무공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참이라고 생각할까? 참이라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트럼프가 이순신을 충무공이라고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유명사가 지시체와 대응한다는 말에 의하면 트럼프의 추리는 오류를 일으킨다. 이것이 고유명사와 지시체를 일치시킬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프레게는 이에 대해 지시체의 의미를 구분한다. 지시체reference는 '의미론적 값semantic value(의미)'과 '뜻sense'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즉, 홍길동이라는 지시어에 지시체는 없지만 뜻은 있기 때문에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에 문장에 의미가 생길 수 있다. 두 번째에서 언급한 금성 문제도 마찬가지로 해결된다. 개밥바라기와 샛별이 같다는 것을 지시체의 동일성이 아니라 뜻의 동일성으로 파악한다면 "개밥바라기는 샛별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문장의 참 거짓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도 허용된다. 트럼프의 사례도, 이순신과 충무공의 지시체는 같지만 뜻이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이순신은 충무공이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받아들여진다. a, b, c의 꼭짓점을 가진 삼각형에 대해 a와 b의 중선이 만나는 지점과 b와 c의 중선이 만나는 지점과 c와 a의 중선이 만나는 지점이 동시에 만나는 지점이 이 삼각형의 무게중심이다. 그런데 a와 b의 중선이 만나는 지점의 지시체와 b와 c의 중선이 만나는 지시체와 c와 a의 중선이 만나는 지시체는 같다. 그런데 서로의 뜻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개밥바라기와 샛별의 지시체는 같지만 뜻이 다르고, 이순신과 충무공의 지시체는 같지만 뜻이 다른 것이다.
1. 달 (지시체)
2. 호수에 비친 달 (뜻)
3. 술잔에 비친 달 (뜻)
4. 그대 눈에 비친 달 (뜻)
5. 내 눈에 비친 달 (인상)
1이 객관적이고 5가 주관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런데 2~4는 무엇인가? 2~4는 관찰자 의존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프레게는 주장한다. 뜻이 객관적이기 때문에 언어에 의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뜻이 지시체와 인상 사이에 걸쳐있다고 할 것이다.
호날두라는 지시어에 대하여 그에 대응하는 지시체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가령 축구선수, 갑부, 날강두 따위가 그러하다. 뜻은 다수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객관적 속성을 의미한다. 즉 호날두라는 지시어에 대해 날강두라는 의미의 공유가 강하다면 호날두의 뜻은 주로 날강두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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