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6. 20:51ㆍ생각
"자본주의는 악하다."
이 문장은 공허하다. 우선 이 문장은 진위를 가리기 어려워 명제로 분류하기 어렵다. 자본주의가 실제로 악한지 알기 위해서는 선악이 계측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선악이 존재해야 한다. 선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선악을 가르거나 만드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에 자본주의는 논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지만 선하지 악한지는 특정한 기준을 설정하여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고 자본주의의 모든 영향을 포착할 수 없고, 그 영향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논의의 적정선을 정하여 단정 짓지 않는 이상 한없이 늘어질 문제라고 생각된다. 오늘 누군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짧은 언쟁이 붙었고 결판을 보지 못했기에 글로나마 이어보려고 한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단지 개념에 불과하다. 그 개념의 정의는 자본을 기준으로 하는 사상 정도가 되겠다. 마치 기독교에서 절대신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자본주의도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종교와도 같다. 시장경제체제의 묵시적, 현시적 규칙이나 민법의 일부, 상법이 종교에서의 율법, 법치 국가의 법과 같다.
우선 자본주의가 악한지 악하지 않은지 알기 위해 선악의 기준을 짚고 가야 한다. 선악은 상대적이다. 아니 나는 애초에 선악은 없다고 주장한다. 선악은 해석이고, 사후에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개념으로 정립은 가능하지만 대개 사건에 대한 해석에 따라 양상과 적용이 달라지므로 엄밀한 우선적 정의가 어렵다. 어쨌든 내가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하여 이 세상이 선악의 부재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는 해석자와 부여자가 존재한다. 선악도 이들이 해석하고 부여한다. 대개 사회적 통규에 의한 기준을 따르나 해석자와 상황에 따라 매우 달리 적용된다. "타인을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죽인 자는 악하다."라는 문장은 비교적 명쾌하다. 하지만 "타인을 해한 자는 악하다."는 굉장히 애매하다. 전자는 과실이든 고의든 타인을 죽이기만 하면 악하다. 명제화가 가능한 듯 보인다. 악하다의 애매성은 이름에 불과할 뿐이므로 이 명제에서는 애매하지 않고, 죽인 것과 죽이지 않은 것의 기준은 다소 명쾌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법률 체제에서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분히 존재하는데 가령 동시에 상대를 찔러 죽인 경우 누구의 찌름이 사망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인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렇듯 수학적이지 않은 명제는 진위 판별이 지난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언어적 딜레마에 있어 인류는 항상 돌파구를 찾아왔지 않은가? 기준은 사후적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이 엄밀하게 사실에 기반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한계는 필시 존재한다. 어쨌든 개체의 행위에 대한 선악 부여는 그 사실이나 정당성의 여부를 떠나 비교적 쉽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집단이나 개념에 대한 악을 규정할 수 있을까? 나치는 악한가? 우선 나치가 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나치가 객관적으로 악하다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해석자의 개인적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준은 쉬울 수 있다. 나치가 과실이든 고의든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것이 선악의 기준이라면 나치는 악하다. 물론 나치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까지 들어갈 필욘 없고 단지 상징 정도로만 알면 된다. 나치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모여 그 목적에 맞게 활동하는 집단을 이르는 말 정도로 받아들이자. 뭐가 됐든 나치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만 있으면 나치적이라고 하자(물론 그것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법은 계산이 아니므로 엄밀하게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한다. 더군다나 선악의 기준은 다 달라서 객관성을 확립하기 어려우므로 후결적 약속에 의한 정의만으로나 대체 가능하다. 나치가 악의를 가졌지만 그들이 가한 실질적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가능세계에서 나치는 악한가? 그 세계에서 유태인을 600만 명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유태인 600만 명 학살이라는 기준은 나치의 선악을 가려내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물론 그 가능세계에서는 그들이 악한 집단으로 규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그 가능세계의 나치가 우리 세계의 나치처럼 악한 집단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가? 후결적 기준의 설정이 필요하겠다. 그러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나치가 악의는 가지고 있지만 패망하지 않았고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가능세계에서는 나치를 악이라고 규정지을 '힘'이 부족하다. 그러면 선악을 구분 짓는 해석과 부여가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인가? 나는 일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선을 부여하는 것도 힘이고 악을 부여하는 것도 힘이다. 그 힘의 형태는 다양하다. 다수일 수도 있고 소수이지만 권위자일 수도 있다. 어떤 학설일 수도 있고, 심리적 편향일 수도 있다. 우연일 수도 있고, 단지 결과주의적 해석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부여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 2020년에 내가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악하지 않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치가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가능세계에서 누군가 나치의 악의를 주장한다고 한들, 표면적으로 나치의 악성을 인정하지 않는 힘은 나치의 악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묵살할 것이다. 어쨌든 선악을 가름에 있어 여러 요소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선악 그 자체는 계측이 불가능하다. "악행을 저지르면 어떤 피해가 발생한다."라는 주장은 지극히 결과주의적이다. 악행을 저지른다는 전건이 참이라고 해서 후건이 참임을 보장하지 않는다. 논리학에서는 전건 긍정에 의해 참일 수 있지만 어쨌든 실제적으로 전건과 후건은 논리적 관계가 없다. 그리고 물리계에서 인과적으로 연계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애초에 '악행'이라는 지시어와 그에 대응하는 지시체의 외연이 중구난방이고 끼워 맞추기 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피해는 그 범위도 모호하거니와 입증해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종교도 마찬가지도 종교가 역사적으로 미친 선의나 악의는 계측되기 어렵다. 종교가 세상에 악을 더 많이 선사했는지, 자본주의가 세상에 악을 더 많이 선사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단지 직관에 의하면 둘 다 악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정량적인 계측이나 정성적인 우열의 판단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악할 수는 있다. 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악이 선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한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악의 정량적 계측이 가능해야 한다. 돈이나 이념, 그것들로 인한 역사적 문화적인 유/무형의 파생에 의한 손실이 이익을 압도한다면 자본주의는 선하기보다는 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위를 하사받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주장은 쉽다. 증명이 어렵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분적 함축, 이, 역, 대우 (0) | 2021.12.06 |
---|---|
히로세 스즈 스태프 비하 발언 (0) | 2021.12.06 |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0) | 2021.12.06 |
민감한 대화 주제 (0) | 2021.12.06 |
강간 상황극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