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2. 14:05ㆍ생각
얼마 전에 친구가 카톡으로, 요즘 자기가 물욕이 오르는 것 같다고 나에게 얘기했다. 이에 나는 발정기냐고 우스개로 대답했고, 친구는 성욕이 아니라 물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내가 성욕을 물욕과 유사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즉시 진단에 들어갔다. 그 결과 임시적이긴 하지만 답을 도출했는데, 경우에 따라 둘을 동일시할 수 있고, 이는 곧 언어 사용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는 사전적 정의가 중요하다. 우선 성욕은 성적 행위에 대한 욕망이다. 성욕의 유의어에는 육욕, 정욕, 야욕, 색욕 등이 있다. 차후에 나는 육욕을 차용할 것이다. 물욕은 재물을 탐내는 마음이다. 친구는 물욕을 정확히 이 의미로 사용했다. 어쨌든 이 경우에는 화용론적으로 물욕의 '물物'을 물건이나 사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필자는 물건을 '속물'로 오인했다. 그런데 애당초 물物에는 '속俗됨'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물의 뜻 중 하나인 '재물財物'이 속俗을 일부 함축하는 듯이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소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차치한다. 이제 물物을 물질物質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따져보자. 물질은 물건의 본바탕, 재물 등을 뜻한다. 질質이 바탕을 뜻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된다. 일반적인 언어 쓰임의 관점에서 물건은 사물로, 물질은 자연력 정도로 구분하는 것 같다. 물物은 물건, 사물, 재물, 만물 등의 뜻을 가지는데 그중에서 '만물'은 다소 광의적인 물物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이쯤에서 물物을 '만물萬物의 물성物性'으로 광의 해석하고 성性을 그 안에 함축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물욕의 외연이 성욕의 외연보다 넓어, 물욕이 성욕을 지시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성욕의 성性이 '정신성'을 함의한다면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우선 성性은 성품, 바탕, 성질, 사물의 본질, 마음, 만유의 원인, 남녀 등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욕의 에로스적 성性이란 남녀 간의 교접욕을 뜻할 것이다. 성이 물질로 간주될 수도, 정신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듯하지만, 사물의 '본질'이나 만유의 '원인', 성품 등을 근거로 하면 정신성으로 간주될 개연성이 더 높다고 보인다. 이제 육욕을 끌어오자. 성욕과 육욕은 유의어로 사용되며, 육욕의 '육肉'은 육체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실수가 드러난다. 육肉을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한 잘못이다. 육肉은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해야 한다. 욕망은 정신이다. 많은 욕망이 육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지만 욕망 자체, 즉 '일어나는 마음'은 물질이 아니다.
정리하면, 성욕의 성性은 정신에 가깝고, 성욕의 유의어인 육욕의 육肉은 육체에 대한 '욕망', 즉 정신으로 해석해야 하고, 물욕의 물物이 만물의 물성으로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성'이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물이 성을 함축하지 않아 둘을 동일 취급할 수 없다. 하지만 잠깐. 앞에서 우리는 실수를 했다. '성욕'과 '육욕'을 마음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것은 '욕慾'의 뜻이지 '성'과 '육'의 뜻이 아니다. 물욕도 '물'에 대한 '욕慾(마음)'이다. 표적 대상 간의 혼동이 있었음을 양지하고 수정하자. 성, 육이 물과 유사할 수 있는가? 물은 육을 반드시 함축한다. 그런데 성은 다소 애매하다. 우리는 성의 뜻을 최대한 좁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물의 뜻을 최대한 넓게 받아들이자. 성을 남녀를 뜻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자. 물은 만물을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자. 만물이 남녀를 함축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생물학적 성性이 물질이냐를 밝혀야 한다.
성性이 무엇을 지시하는가? gender 말고 sex 말이다. 성은 단지 분류 체계에 불과한 개념인가? 아니면 물질적 실체인가? 여성과 남성은 개념이다. 그리고 실존하는 개체인 나(남성)와 예은(여성)이는 성性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사전적으로 남성은 아이를 직접 낳을 수 없는 성性에 속하는 사람을 뜻하고, 여성은 아이를 직접 낳을 수 있는 성性에 속하는 사람을 뜻한다. 성性이라는 분류 체계는 물질의 선재先在 없이는 없는 것 같다. 성性 그 자체는 개념이므로 물질적 실체가 없다고 취급해야 한다.
이제 성욕으로 돌아가자. 성욕은 성에 대해 일어나는 욕망이다. 성욕은 육체에 대한 욕망, 성호르몬과 내분비에 의하여 일어나는 신체의 작용을 일컫는다. '어떤 작용이냐?'보다도, '무엇에 대한 작용이냐?'에 중점을 두어 '성'을 해석하면 '성(개념)'에 대한 작용과 '성(육체)'에 대한 작용으로 대별할 수 있다. 분명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욕을 이해하기로는, 성적 개념에 대한 욕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욕망이나 신체의 작용의 대상이 물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개념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상 성욕자는 '성'이라는 분류 체계에 흥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예외적 사례로 판단되어, 논의로부터 배제하기로 한다. 이제 우리는 성욕이 일어나는 것을 뜻함에 있어, 성적 욕망의 대상을 '성적 속성을 가진 개체'로 간주하기로 하자.
이제 마지막이다. 성욕과 물욕을 비교하자. 성욕은 성적 속성을 가진 개체(물질)에 대한 욕망이고, 물욕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다. 이것을 기호화하면,
성욕 → 성적 속성 ∧ 물질
물욕 → 물질
이로 보아, 물욕이 성욕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성욕이 물욕을 함축한다. 직관적으로 이상할 수 있다. 성적인 대상, 즉 남자와 여자는 세상의 모든 물질인 만물의 외연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착오이다. 성적 속성이 모든 물질에 부여될 수 있는 부가물이라면 성적 물질은 그냥 물질보다 더 많은 의미 단위를 가진다. 우리가 혼선에 빠진 이유는 일반적으로 물욕의 외연을 성욕의 외연보다 넓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의 대상을 단지 성적 분류 체계에 따라 구분되는 생물이나 이상성욕의 대상 정도에만 국한하고 있던 습성 때문에, 성욕의 대상이 모든 물적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적 속성은 물질 이외의 것에 적용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물질적 속성만을 가진 물욕은 성욕에 비해 외연이 매우 좁게 느껴진다.
결론이다. 성욕과 물욕을 동일 취급할 수 없다. 성욕이 물욕을 함축한다. 물욕을 성욕으로 확대 해석한 필자는 범주 착오를 범했다. 자의적으로 성적 속성을 첨가하여 물욕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8.28 추가
성욕은 물욕을 의미적으로 함축하지 외연까지 함축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이 경우와 같이, 의미 자질의 개수의 차이를 기준으로 각 집합의 외연 범주의 층위적 차이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암, 수, 반음양, 무성의 4가지의 성적 분류만이 존재한다고 하자. 이들은 계층을 가지지 않고 의미 단위(암, 수)를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로 구분된다. 그래서 무성은 암, 수, 반음양을 함축하지 않는다. '성'을 기준으로 하면 함축 관계의 접합부가 없다. 하지만 무성인 대상에 성의 속성을 단지 '임의적으로' 부여한다면 무성은 '성적 무성'이 된다. 이는 물론 언어의 문제다. 그래서 적용이 달라야 한다. 성적 비교는 성을 기준으로, 의미론적 비교는 의미 자질(단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존재와 의미가 떨어져 판단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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