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이 악할 것을 의도했는가?

2021. 11. 21. 21:38생각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적 신(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을 준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주관하는 신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있다. 신은 최초의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예상하였다고 볼 수 있고, 어쩌면 의도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을 알고도 그들의 자유의지를 회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나서 앞으로의 결과는 오로지 인간에게 맡기는 것으로 하였다고 하자. 그러려면 자유의지가 신의 의도나 예측을 벗어나 무작위성을 띠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발생하는 전지전능과 무지의 모순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가볍게 무시하기로 하고, 신은 인간의 선악을 두고 도박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원래 선악이 없었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됨에 따라 선이나 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우연히 선을 선택한 인간은 원죄가 부여되지 않고, 우연히 악을 선택한 인간은 원죄를 얻게 된다. 신이, 많은 가능세계에 인간을 만들어 자유의지를 주고,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놔뒀다고 하자. 어떤 가능세계에서는 선을 선택하고, 다른 가능세계에서는 악을 선택한다. 물론 여기서 자유의지의 속성을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자유의지가 완전 무작위성인지 인간 종에게 특화된 어떤 속성인지, 결과론적인 속성인지는 미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논의하는 이 시점에는 자유의지에 대한 마땅한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수준에서는 다소 결과 의존적인 자유의지의 무작위적 속성을 고려하여, 각 가능세계에서 선과 악을 선택하는 인간 종들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우연이 본성을 결정짓는 결과를 낳게 된다. 현재 우리 세계는 자유의지에 의해 원죄를 선택한 우리의 선조가 구현해 낸 결과론적 세계이다. 그러니까 원래 인간에게는 죄성이 없었는데 신이 준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해서 죄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원래 인간이 악해서 악을 선택할 수 있지만 기독교적 근거에 의하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인간에게는 선악의 구분이 없었다. 설령 인간의 본성이 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의지와 의미적으로 충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는 본성이 죄성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성을 거부할 수 있는 의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엄밀하게, 신이 인간이 악할 것을 의도했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조건에 의하면, 신이 어떤 인간이 반드시 악하게 되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판단되지는 않는 바, 자유의지의 의미에 의해, 신은 어떤 인간이 악할 수 있음을 예상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어떤 인간이란 우리 세계의 어떤 개체 각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와 유사한 여러 가능세계의 인간 종들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 세계만이 유일하게 의도된 세계이고, 다른 가능 세계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물론 다른 가능 세계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의지의 선택지는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1/2의 확률 동일성 때문에, 예측력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수치적으로는 없다고 할 것이고,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행위만을 놓고 보았을 때, 시간성이 개입하는 행위이므로, 인간에게 선택 시간을 많이 부여할수록 확률적으로 선악과를 딸 수 있는 환경과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바, 자유의지란 것이 사실상 환경과 시간에 의존하는 기이한 인과를 구성하게 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논리적 인과는 될 수 없고,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의 배중률적 관점에서는 시간이나 환경적 조건에 관계없이 항시 1/2이므로, 신이 단지 무작위성에 기대어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선이냐 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식의 발상은 다소 온전치 못한 판단이다. 주어진 시간에 대해, 종료 시점까지의 시간적 경로에는 수많은 선택의 구간이 있고 각각의 구간이 상호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에, 상황에 따라 선택 감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쨌든 이러한 확률 정도에 대한 조건들을 고려하건 무시하건 간에, 자유의지가 오직 인간 의존적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은 신이고, 자유의지는 선이나 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의하고, 신이 그 사실을 앎으로, 신이 인간이 악할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어떠한 사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설령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결과가 그렇게 발생했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표현의 차이이겠지만, 설령 신이 인간이 악할 것을 의도까지는 아니하였다고 간주한다고 할지라도, 방조하였다고 볼 여지는 상당하다. 왜냐하면 신은 자유의지의 속성을 알면서도 인간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의도나 방조 따위의 개념은 매우 주관적이고 애매한 개념이기 때문에 신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신은 인간이 악하게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마지막으로, 오직 선악과를 따먹느냐 마느냐의 상황에서, 자유의지는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고, 이는 결과 의존적인 무작위성을 함의하므로, 신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상황을 강제로 조작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고, 이에 대해 신은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알지 못하므로(자유의지의 의미에 의해), 인간을 확률에 내던진 것이 되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을 가능성을 함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전지전능'과 '결과에 대한 무지'의 의미가 충돌하는, 타개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한다. 그래도 논리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기독교적 사적에 근거하여, 자유의지의 '결과에 대한 무지'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위와 같은 결론을 무리 없이 도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