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0. 17:05ㆍ생각
내 신념 중에는 '유희를 목적으로 살생하지 않는다.'가 있다. 도덕적 규범에 개의치 않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신념은 그다지 불건전할 이유가 없는 정도의 신념이다. 그러다가 문득, 애초에 어떤 행위에 대하여 건전하고 정당한 근거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가령 내가 거미를 혐오한다고 가정하자(실제로 나는 거미가 방에 거미줄을 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만약 기괴한 모습 때문에 거미를 혐오하는 것이라면 그 혐오감은 거미를 죽이는 데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거미는 익충이며 사실 주변에서 우리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보다 덜 해를 끼친다. 예를 들어 살생을 기준으로, 거미는 자동차보다 인간에게 덜 해를 끼친다. 내 생각에 대부분의 행동의 근거는 사람이나 경우에 따라 자의적이고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므로, 특별한 조건이 없는 한, 정당한 근거라고 하는 그것은 다소 방편적 소지가 있다. 어쨌든 나는 때에 따라 유희를 목적으로 거미를 죽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 행위는 부당한 근거를 갖지 않을 수 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원인을, 인과적인 측면에서는 원인으로, 논리적인 관점에서는 이유라고 구분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 따르면 거미의 죽음에 대한 원인과 이유가 다를 수 있다. 필자는 거미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거미의 죽음 이전의 모든 사건이라고 보며, 거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경우에 따라 자의적일 수 있다고 본다. 필자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아, 결과에 대한 원인을 매우 넓게 지시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인과적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임시적으로 퉁치자는 얘기이지, 대한민국에서도 하필 내 집에 사는 거미의 죽음이 10만 년 전의 알파센타우리의 플레어 현상이라는 단일 사건과의 직접적 연관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무한 소급적으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거미의 죽음과 인과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굳이 여기서까지 인과적 사슬을 확장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어쨌든 근거는 이유와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고, 내가 한 특정한 행위 x에 대한 인과적 경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x에 대한 정당성 부여는 나의 행위 시의, 또는 사후의 합리화 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당성의 의미가 인과성과는 다소 다르게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정당한 근거(이유)-결과'가 고정된 실재에 반드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인과적 근거(원인)-결과'가 닫힌 인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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