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편하게 하자 = 말 놓자 (?)

2021. 11. 18. 17:23생각

소개팅 자리를 상상해보자. 필자는 예은이와 소개팅 중이다. 필자가 예은이보다 4살이 더 많다. 필자는 예은이에게 "우리 어색하게 존댓말 하지 말고, '말 편하게 하자' "라고 한다. 예은이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아... 그럴.. 까?"라고 대답한다. 이 경우 예은이는 반말을 편한 말로 받아들였을까?

정답은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르다. 확실한 것은 편한 말과 반말은 동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서로에 대한 특성이 제대로 개방이 되지 않은 초반 만남의 상태에서는 더욱 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장자를 대해야 하는 연소자의 경우는 반말이 그다지 편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나 오빠충이나 형충을 만난다면 더 끔찍하다. 잘 생각해보라. 서로 존댓말을 할 때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형은 이러저러했는데 동생은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자신을 연장자라고 지칭하는 경우와 연소자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주로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말을 놓자고 제안하게 된다. 연장자는 말로 연소자를 배려하는 척하면서 은연중에 자신과 연소자의 위치를 조정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13학번 화석(남)이 16학번 여 후배에게 "오빠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동생은 어떠세요?"라고 한다고 생각해보라. 다소 어색하지 않은가? 그리고 어감이 굉장히 낯설다. 물론 필자는 "오빠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동생은 어때?"가 앞의 존댓말의 경우보다 더 옳다거나 낫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가령 자식에게 존댓말을 쓰는 부모가 간혹 있게 마련인데, 이들이 자식에게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이는 단지 선후배의 사례보다 통용되기 때문인가? 명확한 기준은 잘 모르겠다. 다시 어색한 사례를 들어보자. 여자 선배가 후배에게, "언니가 그렇게 하지 말랬죠?", "언니는 동생이랑 생각이 달라요."라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여성 간의 관계를 잘 몰라서 문장을 여러 번 되뇌는 중인데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이것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여성이 있다면 답글 좀 부탁). 물론 이것이 존반말(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사용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논의는 무색하다.

이렇게 관계에서, 자신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언급하면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소 어색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필자만 하더라도 "형은 동생과 생각이 달라요"라고 언명하는 형을 경험하지 못했다. 두 표현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두 표현을 섞어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주어를 높이고 높아진 주어를 다시 낮추는 경우를 본 적이 없을뿐더러 사용 자체도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언어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그다지 큰 표현상의 문제라고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뭔가 조금 어색하다는 것은 지적하고 싶었다.

어쨌든 조금 샜는데, 말을 편하게 하자는(말을 놓자는) 주장은 주로 주장자의 입장에 편향된 판단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말 때문에 편해지기보다는 애초에 편한 관계이기 때문에 존댓말이 불편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존댓말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반말을 없애고 존댓말만 사용하든가. 그렇게 하면 이러한 겸양 어법의 혼동과 잘못 사용 때문에 기분이 나쁠 이유도 사라진다.

결론. 경우에 따라 반말은 오히려 존댓말보다 불편할 수 있다. 특히 이는 관계에서 반말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려는 연장자에게나 편할 수 있지 연소자에게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형이나 오빠, 언니나 누나라는 지위어가 어떠한 경우에도 동생보다 높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단지 시간적 순서를 구분 짓는 것에 불과할 뿐인 낱말이 다른 어떤 것에서도 후발주자보다 우선하는 지위를 부여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못 배워 먹은 놈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주제에 자신의 많은 나이만 내세우는 놈들이다. 이들이 이룬 업적이라고는 나중에 태어난 놈들 보다 먼저 태어난 것뿐. 먼저 태어난 것은 벼슬이 아니다. 그리고 형이나 오빠 따위의, 단지 시간을 구분 짓는 단어에 너무 민감해질 필요 없다. 물론 그러려면 지위어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연장자 지위어가 권위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