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이유는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인가?

2021. 11. 14. 21:15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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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성폭행…노출 심한 옷 차림 때문이라고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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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 노출도와 그에 대한 성범죄자의 범의犯意는 상관적인가? 성범죄와 관련하여 누구에게 책임이나 잘못, 문제, 원인, 이유가 있는가? 이러한 표현상의 구분을 한 이유는, 각 지시어들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용어의 뜻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책임(responsibility)은 법적 책임과 피해자가 피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책임으로 구분한다. 잘못(fault)은 객관적 사건에 대한 귀책보다는 도의적인 관념이나 가해적 행위의 관점에서 다루도록 한다. 문제(matter)는 총체적인 귀인(attribution) 정도로 간주한다. 원인(cause)은 물리적 관점에서 인과적 원인을 뜻하고, 이유(reason)는 원인보다는 덜 물리적으로, 주관자의 해석에 의존하는 논리적 근거(grounds)나 전제(premise)를 뜻한다고 하자.

이제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책임, 잘못, 문제, 원인, 이유 소재를 따져보도록 하자. 우선, 행위의 실현자라는 점에서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 잘못, 문제, 원인, 이유가 소재함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 피해자에 대한 판단만 하면 된다. 잘못이 자신의 오행이나 어리석은 판단에 의한 실수(mistake, error, blunder)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성폭행 피해 여성은 해당 다섯 개의 판단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차근차근 따져 보자.

먼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 법적 책임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에 따라 범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 여성의 노출도가 귀책사유로 간주되어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를 유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가해자가 피해자의 노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고, 그러한 인식으로 인한 강력하고 왜곡된 성적 추동이 있었음이 확실하여 그것이 행위의 실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명징하다면, 피해자는 의도 없이 가해자로 하여금 범죄의 시작에 대한 도화선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 행위를 부추긴 자로서 자신의 피해 여부(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행위로부터 촉발된 것이라면, 이행성(transitivity)에 따라 피해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뒤에서 논하겠지만, 피해자는 성폭행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세계선에 하필 놓여 있었으며, 특정 세계선의 항로를 구성하는 여러 필요조건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 더 엄밀히 따지고자 하면 결정론과 자유의지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지만 애초에 결정론이나 자유의지론에 대한 합의된 어떠한 사실도 없으므로, 본질적 논의의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 해당 개념에 대한 논의는 배제토록 한다.

성폭행 피해 여성은 일반적인 의미의 '잘못'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것 같다. 왜냐하면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 그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 그 행동으로 인한 잘못된 결과를 수반해야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잘못된 결과가 발생하였다면, 잘못된 결과를 발생시킨 행동은 잘못된 행동일 수 있다. 단, 계속 언급하고 있다시피 노출이 심한 옷이 성폭행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가정이 참일 경우에 그러하다. 위 링크의 기사를 보면, 많은 부분의 성폭행이 피해자의 노출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고 성폭행의 의지를 발현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논리적으로도 반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실현될 수 있듯이, 여성의 노출로부터 성폭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은 한, 설령 그렇다고(믿고 싶다고) 하더라도 어떤 성폭행이 피해 여성의 심한 노출 의상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과실인 사고에서 피해자의 '하필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논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공사 중인 건물을 지나가던 행인에 대해, 하필 그 시간대에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은 것을 두고, '왜 그때에 하필 거기에 있었냐'라며 그 우연인지 운명인지, 피해자의 실책을 한탄하며 탓하곤 한다(맥락상 피해자를 책망하는 '탓함'이 아니라 슬픔의 무차별적 표출이겠지만). 물론 그때 당시에 사망자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건 그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면서 그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결과에 대한 원인을 확장하여 적용한다면 건물이 붕괴하는 행위는 피해자가 붕괴하는 건물 아래에 있길 의도하지 않고 유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피해자의 행위에 따라 피해자가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있게 되는 두 독립된 사건이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원인과 결과를 구성한 것 같다. 법률에서는 간혹인지 항상인지, 사건의 원인을 논할 때, '그것이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을'이라는 언명에 따라 필요조건을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귀찮고 시간이 없으므로 논하지 않겠다.

문제는 건너 뛰고 인과적 원인에 대해 따져보자. 여성의 노출도가 성폭행이라는 결론을 이끌었다면 여성에게 인과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성의 노출이 성폭행이라는 결론을 이끈 것이 아니거나 그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경우, 여성의 노출은 성폭행에 대한 원인을 구성하는가? 인과적으로 봤을 때 이 경우에 여성의 노출 의상은 부재 원인(cause of absence)으로 간주될 경향이 높아 보인다. 부재 원인이란, 가령 우리 집의 화분에 내가 물을 주지 않는다면 화분은 말라죽게 될 것이다. 이때 내가 화분에 물을 주지 않은 행위는 화분이 말라죽는데 대한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청와대에 있는 문재인이 우리 집의 화분에 물을 주지 않는다면 그 부재 행위 역시 우리 집 화분이 말라죽는 데에 대한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문재인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집 화분에 물을 주면 화분은 말라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필요한 인과적 확장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한 번 이것을 성폭행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성폭행 가해자가 범의를 가지고 특정한 대상을 가해하기로 다짐하였다고 하자. 단, 특정 대상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기만 한다면 범죄가 실행된다. 이때 그 특정된 피해 예정자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범행 장소에 나타났다면 그녀는 범죄의 피해자로서의 적합한 조건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범죄의 원인을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특정된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하필 범죄 현장에 먼저 나타났다고 하자. 이때 그녀는 범죄의 특정된 타깃이 아니면서 범죄 실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피해자로서의 조건을 구성한다. 예시가 잘못되었는데, 귀찮으니 그냥 놔둔다.

어쨌든 부재 인과론을 적용하는 건 좀 무리인 것 같으니,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과 경로에 대해서 논하도록 하자. 결과를 구성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a라는 사건으로부터 b라는 사건으로 이행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b에 대한 원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 단지 인과적 진행 경로에 놓인 독립 사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폭행의 결과가 노출이 심한 옷에 의해 발생했는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노출 심한 의상이 성폭행으로 가는 사건의 경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결과를 도출하는 원인으로서 기능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짤에서 벤 샤피로는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의 잘못된 결정이 성폭행 가해자의 잘못과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생략되었는데, 논란의 여지로부터 회피하기 위하여, 여성의 노출이 성범죄 가해자의 범의를 자극한다는 조건이 선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짤의 맥락으로 보아, 벤 샤피로는 여성의 노출이 성범죄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필자 역시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범의가 없던 잠재적 성범죄자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갖춘 여성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가능성이 범의의 다수를 구성한다고 할 수는 물론 없다. 만약 성욕의 추동이 성범죄를 추동하는 것이고, 여성의 맨살이 성욕을 추동한다면, 추이율을 관대하게 적용하여 현실적으로 여성의 맨살은 성범죄를 추동할 여지를 가지며 따라서 여성의 노출은 성범죄의 원인을 자초한 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맨살이 성범죄를 추동한다면, 마찬가지로 남성의 맨살 역시 성범죄 피해의 원인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맨살이라는 조건만으로는 성범죄의 피해의 요건을 구성하지 않는 것 같다. 끓어오르는 성욕이나, 여성의 심한 노출이 성범죄성의 충동에 대한 부차적인 요인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억제력의 부재인 것 같다. 범죄에 대한 충동을 참지 못하는 것. 상당히 많은 사람이 맨살로부터 성욕을 느끼지만 단지 맨살을 보고 성욕이 강하게 추동된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성욕이 없다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성욕이 성범죄의 필요조건이라는 주장은 그르다. 성욕이 없이도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가능하다. 성욕을 가지면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 또한 가능하다. 자기 억제력을 상회하는 성욕은 물론 그러한 사례에 국한되어서만 성범죄의 요건을 구성한다.

개인적으로 성범죄는 자기 억제력도 억제력이지만, 불균형한 힘의 구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불균형한 힘 그 자체가 범죄를 추동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힘이 피해자보다 세지 않다면 성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언제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상대적으로 약한 자가 강자에게 대들어 이기는 경우가 있듯이(이겼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공격한 것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성범죄 역시 강제로 하는 것이기에(말로 하는 희롱이나 시선 강간 같은 이상하고 공허한 가해 말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제압할 힘을 가져야 한다. 피해자보다 강한 힘은 성범죄의 요건을 구성하는, 논리적인 필요조건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현실적이고 개연적인 필요조건에 해당하는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성의 알몸은 야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여성이라고 다 야한 건 아니고, 야한 몸을 가진 여성이 있다.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면 성욕이 일 수 있다. 그리고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고 성욕이 인다면 성범죄의 의지가 일지 않을 수 있거나 성범죄의 의지가 일 수 있다. 이것들은 양립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