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규제를 둘러싼 여타 성 문제

2021. 1. 2. 23:55생각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중성이 다분한 어떤 여성들에 대한 스탠스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고심해왔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사용하고 때론 정말 반론이 어려운 진언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바로 이 리얼돌 논쟁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예이다.

  우선 위 기사부터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일부 남성들, 음막陰膜(처녀막, 질막을 이른다. 이 글에서는 계속 음막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네이버에 이 글을 게재했다가 청소년 유해 게시물에 해당되어 30일 정지를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최대한 지양하겠다.) 있어야 순결한 여자, 그릇된 여성관' 이 문장에서 음막이 있어야 순결한 여자라는 생각은 여성의 순결에 대한 다소 엄격한 제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음막의 유무로 결정되는 순결성이란 것이 왜 그렇게 규정되는지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막은 성교(성교 역시, 섹스, 성행위, 성관계 따위보다는 교미, 교접, 교구交媾, 교합交合, 구합媾合, 방사房事, 정사, 교통, 상관相關, 행사行事, 접합, 곰탕, 호찌, 흘레 등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없이도 충분히 소실 가능한 것이므로 여성의 순결성을 그 신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배려 없이 제한한 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막에 대한 언급 없이, '성관계를 하지 않아야 순결한 여자'라고만 했다면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그릇된 여성관'이라고 치부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혼전 순결의 신념을 가진 자의 가치관이 그릇된 것은 아닐뿐더러, 그 어떤 개인이라도 자신이 관계하는 여성이 다른 남성의 정액(앞으로 이것은 정수精水나 씨물로 표기될 수 있다.)을 받지 않았음을 희구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부류에 해당하는 남성의 일반적인 생각을 그릇되다고 치부하는 처사는 단편적인 생각, 혹은 여성 일방의 가치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관점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각을 그릇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을 그릇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관점의 차이이다. 물론 여성계에서는 이것이 관점의 차이로 치부할 단순한 문제는 아니며, 여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남성계에서는 이 문제를 관점의 차이로 여길 수 있으며, 여성 역시 남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반론할 수 있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의 '순결'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남자 각각의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정말 음막이 있어야만 순결하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을 수 있고, 자신과의 만남 이전에 그 어떠한 성적 교접도 없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도 있고, 어떠한 남성에게도 정조를 지키지 않고, 애련 따위를 느끼지 않는 상태를 순결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예 특정한 나이가 넘어가면 순결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요즘에 이렇게 보수적인 성관념을 가진 남성은 많이 줄었을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이러한 남성들이 순결을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신념에 여성의 순결이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정이 가는 마음까지 통제할 수는 없으므로 일반적으로는 교미를 하지 않은 동정의 상태를 순결하다고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는 동정녀가 아닌 여성은 불결을 함축하며 다시는 순결한 여성으로 회귀할 수 없는 불가역의 상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성관념에 잠식된 여성이라면, 자신이 불결해진 후에 즉, 어떤 남성과의 교접 후에 헤어지고, 진정으로 정착하고픈 남성에게 선택되기 어려운 난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가혹한 선택 폭의 제한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여성이 바라보는 비동정남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없지만, 남자를 대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남자인 입장에서 필자는, 여성이 필자 아닌 다수의 남성의 정액에 침윤된 비동정녀라면 다소 찝찝할 것 같긴 하다. 설령 그것이 임신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수컷의 타액은 영역 표시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선점의 차타蹉跎라는, 즉 괜스레 자신이 차선인 양 여겨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관점에서는 최종 정착지가 지고지순의 사랑일 수 있으나, 남성에게는 그것도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

  위문장이 조금 애매한데, 다음과 같이 두 경우로 해석할 수 있겠다.

1.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를 장악하려는 의지

2.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를 언제든 침해 가능

  만약 본 문장이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 였다면 1의 해석이,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였다면 2의 해석이 옳다. 1로 해석한다면, 전문가는 여성의 신체를 '언제든 침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언제든 침해 가능하다는 뜻인지, 남성이고 뭐고를 떠나서 애초에 여성의 신체가 언제든 침해 가능하게 되어있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전자를 받아들이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자유 통행권을 인정하는 것이거나, 남성을 강압적 착취자의 표본으로 설정한 것 등이고, 후자를 받아들이면 그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든 이용하고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로 해석한다면,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가 있는 사람, 혹은 그 의지 자체에 대해, 그것을 언제든지 침해할 수 있다는 뜻인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침해한다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2의 해석은 배제하도록 하자. 즉, 본 문장을 1로 해석한다면, 전문가의 주장이란, '남성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언제든지 침해될 수 있는 여성의 신체에 대하여, 리얼돌 사용은, 리얼돌을 대용으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를 충족하는 행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첫 짤 기사에 20대 대학생의 이 씨 인터뷰를 보자. "여성의 음막까지 돈을 받고 그대로 재현"이라는 주장을 남성형 리얼돌이나 인공 남근(딜도)과 비교해보자. 뭐가 되었든 아직까지 리얼돌 등의 성 기구는 상품에 불과하며 옵션이 추가될수록 그에 상응하는 가격의 상승이 수반된다. 인공 남근 역시 사이즈가 커질수록, 질감이나 모양이 격상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만약 돈을 받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비단 여성형 리얼돌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이 씨의 주장은 여성의 음막이 '상품화되었다'라는 점이 문제라는 것으로 보이나, 남성의 음경 역시 상품화되어 여성들에게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오직 여성 성 상품화만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이 씨를 비롯하여, 여성 성 상품화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만 문제이고 남성에 대한 성 상품화는 문제가 아닌지, 아니면 모든 성 상품화가 문제인지 확실히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왜 여성 성 상품화만 문제여야 하고 남성 성 상품화는 문제가 아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리얼돌이 성 기구가 아닌 남성들의 잘못된 여성관을 채워주는 도구인 증거"

  위문장에서 '이런 상황'이란 무엇인가? '음막'을 돈을 주고 구현하는 상황인가? 음막을 '돈'을 주고 구현하는 상황인가? 음막을 돈을 주고 '구현'하는 상황인가? 첫 번째 상황이라면 '음막'에 강조가 들어갔듯이, 여성 자신의 신체인 음막이 남성들의 성처리로 취급되는 수치감, 음막이라는 것이 주입하는 잘못된 신체관, 음막이 함의한 왜곡된 순결성 등을 의미하는가? 두 번째 상황이라면 묘사된 여성의 신체 부위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적 세태에 대한 해통駭痛인가? 세 번째 상황이라면 자신들의 신체인 질막이 디테일하게 구현되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인가? 어떠한 상황이든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상황이, 남성들이 잘못된 여성관을 형성하는데 일조한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중간에 이상한 문구가 있다. '리얼돌이 성 기구가 아닌' 말이다. 맥락상 '리얼돌이 단순히 성 기구로만 기능하고 사용된다면, 남성의 잘못된 여성관은 형성되지 아니할 수 있다' 정도의 숨은 의미를 포착해낼 수 있겠다(오류 추론인 전건 부정이 사용됐지만, 상황 맥락적으로 허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건문 식으로 치환해보면,

~성 기구 → 잘못된 여성관

  이것에 대우를 취하면 다음과 같다.

~잘못된 여성관 → 성 기구

  즉, 리얼돌을 사용하고도 남성에게 잘못된 여성관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리얼돌은 성 기구로만 기능하거나 이용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대우 추론이든 위의 전건 부정식의 해석이든 간에, 리얼돌에 별다른 디테일한 설정을 가하지 않고 그것을 단순 성욕 해소 도구로만 이용한다면 남성의 잘못된 여성관은 적어도 리얼돌로부터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소 과잉 해석으로 보이긴 한다. 물론 혹자는 리얼돌로 여자를 배울 수 있다. 가령 실제 여성을 접하기 전에 리얼돌로 성욕 해소를 하는 남자 중에는 리얼돌에 달린 음막 옵션으로부터 여성의 신체를 '배울 수 있'고, 리얼돌에 가하는 행위를 차후에 실제 여성에게 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 지성을 가진 일반적인 성인이, 리얼돌을 대하는 태도로 실제 여성을 상대한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되기 어려운 사례이며, 설령 리얼돌에 음막이 달려 있었다고 하더라도 음막이 없는 실제 여성으로 하여금 왜 순결을 잃었느냐고 질타하거나 의심하는 행동은 그 남성 개인의 신념이나 무지에 달려있는 것이지, 그러한 특별한 사례까지 고려해가면서 음막을 옵션으로 넣지 않아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는 없다고 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18cm 대물 인공 남근으로 자위(수음, 마스터베이션, 오나니슴, 용두질 따위로 표기하도록 한다.)하던 여성이 실제 남성의 평균 음경 사이즈를 경험한 후에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작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여성이 평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몰지각한 자이거나 운이 없는 여성일 뿐이지, 일반 여성의 남경男莖(남성기)에 대한 견해가 심각한 왜곡에 이르는 정도까지 도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긴 한다. 가령 상당히 많은 수의 한국 여성이 한국 남자의 음경 사이즈를 월등히 상회하는 사이즈의 인공 남근으로 오나니슴을 하는 것을 즐긴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그보다 작은 사이즈의 현실 남자의 생식기(교접기)로는 만족에 이르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이와 같이 오나홀 역시 여성기(음문, 국부, 치부, 비추, 음호陰戶, 하문, 여근)에 비해 돌기의 자극이 강하고 남근을 고악固握한다면 그것을 이용한 남성 역시 실제 음호에 만족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로부터 여성관이나 남성관이 왜곡된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어떻게' 왜곡되느냐를 따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여성이나 남성이 방사의 측면에서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는 성적 만족도를 상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 여근보다 덜 조이니까 음녀구먼?'이라며 순결과 미숙의 척도를 인공 여근에 두거나, '한남이니까 실고추겠지?'라며 비 한남 인공 남근에 의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무지한 소수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음막이 있어야 한다는 강고한 신념을 가진 남성의 잘못된 선입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가? 필요에 따라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런데 왜 악착같이 남성의 동정녀에 대한 환상(설령 그것이 음막이라는 상징에 의해 구현된다고 하더라도)에 반기를 드는가? 그것은 자신들이 남성들에게 선택을 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거나 놓일 것이기 때문인가? 만약 음막이 없는 여성이 결혼을 할 때가 되어 동정녀를 선호하는 남성을 만났다면, 그러한 남성을 거르면 될 일이지, 리얼돌의 음막 구현이 여성의 동정성에 대한 환상을 심는다거나 생물학적으로든 뭐든 잘못되게 유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다. 그리고 애초에 리얼돌의 음막이 아니었어도 남성은 동정녀 그 자체와 처녀성, 그 처녀성의 어떠한 상징에 대한 환상이 있다. 따라서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 구현하든 그 제조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사회 상규상으로도 미풍양속을 심대하게 저해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성 신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의 위해성이 남성 신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의 위해성을 압도해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기 위한 남성의 지배욕의 발현물이라고 간주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남성은 여성의 신체를 언제고 지배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이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여성의 동의가 있는 한 한시적으로나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반면 리얼돌은 애초에 '여성' 자체가 아닐뿐더러 언제고 지배가 가능하다. 여성 신체에 대한 지배욕의 발현물이 리얼돌일 수는 있다.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당장은 지배할 수 없거나, 일시적으로도 지배할 수 없는 사람이 리얼돌을 이용할 공산이 크다. 즉 여성의 신체를 취할 수 없을 때에나 비로소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대체하는 기능을 할 뿐이지, 리얼돌을 통하여 실제 여성에 대한 관념이 왜곡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역시 실제 남성의 신체를 취할 수 없을 때에 딜도를 사용하게 된다(근래에는 남성형 리얼돌도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수요 역시 남성의 신체를 지배하려는 욕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리얼돌 이용 = 성욕 해소 = 여성의 신체를 지배 (?)

  리얼돌은 성욕의 해소를 위해 소비된다. 마네킹은 옷을 입혀 전시하기 위해 소비된다. 여성의 치마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입기 위해 소비된다. 그런데 남성은 치마를 입을 수 있다. 여성을 타기팅 하여 만들어진 치마이긴 하지만, 애초에 '여성의' 치마는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이용하든 문제는 없다. 물론 남자가 치마를 입고 있으면 현대의 관점에서는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리얼돌을 음욕 처리 도구로 사용하든, 살인의 모의실험 대상으로 이용하든, 무정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는 자기 자유에 달려있다. 물론 리얼돌에 반발하는 여성계의 주장은 리얼돌 생산 자체를 중단하거나 리얼돌을 이상하게 제작하지 말도록 법을 제정 혹은 개정하라는 외침이지, 리얼돌 사용 남성에게, 리얼돌을 여성에 대한 왜곡된 성관념을 형성하도록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은 아니리라. 최소한의 대화의 의지도 없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배정되는 예산으로 '리얼돌의 올바른 사용 방법'에 대한 책자라도 만들어서 배포하는 노력이라도 있었는가(물론 이러한 권고도 이상하긴 하다만)?

  리얼돌이 강간(겁간劫姦, 겁욕劫辱, 겁측劫측, 겁탈, 강음強淫) 인형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당연히 리얼돌 같은 무정물은 인격이 있는 것으로 여기지지 않는다. 혹시, 남자 친구나 남편이 자신을 살해하는 꿈을 꾼 어떤 여성 중에는, 꿈에서 그 남자 친구와 남편에 대해 느낀 감정을 그대로 끌어와 현실에서 증오하는 기이한 경우가 있듯이, 실제 여성인 자신의 신체를 유사하게 본떠 만든 인형에 연민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우스개이고, 리얼돌을 모의 겁간 연습용으로 사용한다고 추측하는 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심히 걱정이 된다. 아니 추측은 걱정이 없지만 '내심 사실화하고 싶어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 때문에 문제이다. 물론 누군가는 실제 겁욕을 용이하게 실행하기 위해 리얼돌로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리얼돌로부터 나오는 성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리얼돌과는 독립적인, 이미 있는 계획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만약 리얼돌을 사용하던 남성이, 갑자기 리얼돌이 아니라 실제 여성과 교합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것이 겁탈로 이어지는지, 충동을 억제하는지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따르겠지만, 설령 이 경우에 강간이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리얼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자제력 부족에 의한 것이었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만약 반드시 리얼돌로 인한 겁측이어야만 한다고 믿고 싶거나,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사후 해석 편향에 빠져 인지 오류를 범한 꼴을 면할 수 없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음으로 가는 경로에 하필 리얼돌이 놓여있었으므로, 리얼돌 역시 강음의 원인에 대한 추궁을 면할 수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