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0. 17:01ㆍ생각
평서문 '살인은 부당하다(x)'는 당위 명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y)'를 함축하는가? 우선 전자가 사실 명제인지 아닌지 애매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살인의 부당성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명제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x의 진릿값을 결정할 수 있다면 x는 명제이다.'를 인정한다면, x는 조건부로 명제이다. 그러나 굳이 조건부 형식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x가 사실 명제임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부당성'이 애매한 가치 판단적 개념이 아니라 단지 지시어에 불과하다고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가령 예은이가 나은이를 살인하였다는 정황이 명백한 경우, 반드시 그러한 경우에만 예은이의 행동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예은이가 살인을 하였음이 확실하다는 사실이 x의 사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은이와 명은이가 동시에 나은이를 칼로 찔러 나은이가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 예은이의 행동이ㅡ살인에 관하여ㅡ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실제적인 논의 없이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있다. 살인에 대응하는 행위의 부당성에 대해 논할 필요 없이 살인의 의미가 부당한지만 논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사례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 살인의 의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것에 부당성과 ~부당성만 구분할 수 있으면 된다. 다음의 조건 형식이 참이라고 할 수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사실 명제로 간주한다.
살인 → 부당
x가 사실 명제이건 아니건, 그것의 진릿값이 y를 어떠한 식으로도 함축할 수 없음을 우리는 사실 명제와 당위 명제의 층위가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그러므로 y가 당위 명제라는 조건을 유지한 채로 일정한 정도의 조작을 가하여 변형된 y'의 진릿값이 논리적으로 참임을 규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수한 경우의 당위 명제에 대한 독립적 판단만으로 기존의 y의 의도를 실현시킬 수 있다.
ㄱ :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ㄴ :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어야 한다.
ㄱ은 사실 명제, ㄴ은 당위 명제인데 ㄱ이 참임과 동시에 ㄴ도 참이다. 하지만 둘의 층위가 다르므로 ㄱ으로부터 ㄴ이 도출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오직 ㄴ 그 자체만으로 논리적 참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ㄴ은 y를 만족시킬 수 있는 y'의 자격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ㄴ으로부터 간접적으로 y의 시도의 성공됨을 엿볼 수 없기 때문이다.
ㄷ :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어야 한다.
ㄷ은 y의 목적 부합에 근접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y의 목적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인데,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의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하며, 다시 말해, 자신이 자신의 당위적 근거가 될 근거가 부족하며(논리적으로는 항진 관계임), 애초에 명제 자체가 동어반복에 의해 아무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위 명제는 당위 명제를 근거로 갖는가? 즉 어떠한 사실 명제가 참일 때 다른 사실 명제를 연역해낼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떠한 당위 명제가 참일 때 다른 당위 명제를 연역해낼 수 있는가? 나는 ㄴ과 ㄷ 같이 논리적으로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당위 명제만을 가지고 당위 명제 간의 연역 관계를 규명할 것이다.
y가 거짓임을 입증해내는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y의 '사람(죽임의 대상)'을 '사람이어야 한다'로 이해하고, 이를 기호화하여 '사'라고 하고, '죽여서는 안 된다'를 기호화하여 '~죽'이라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어야 한다면 죽여서는 안 된다'에서 '사람'이 행위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죽임의 대상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함.)
사 → ~죽
사 | ~죽 | 사 → ~죽 | |
w1 | T | T | T |
w2 | T | F | F |
w3 | F | T | T |
w4 | F | F | T |
W2에서만 y가 거짓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당위 명제를 조건 형식적으로 분석한 것에 불과하지만 y의 진릿값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y가 도대체 왜 정당한가를 인정하기 어렵다. 직관에 어긋나는 형식적 가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을 죽여도 되는 가능세계 w2에서 후건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가 거짓이라는 이유가 y의 당위적 근거라고 조건 지어졌긴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조건적 근거이며,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사실이 참일 수 있는 어떠한 근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리치의 설정만으로 배제하는 우는 그다지 건전하지 못하다. 그러면 우리는 조건문 y의 형식적 타당성을 넘어 실제적 건전성마저 확보해야 한다.
우리는 x가 y를 도출하지 못하니 y를 정당화할 수 있는 y'를 상정하기로 하였다. y'는 y를 정당화하기 위한 y의 변형이었고, 굳이 명제의 변형 없이 y 만으로 y의 진릿값을 형식적으로 규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는 조건문이 참인지에 대한 논의이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근거를 찾는 과정은 아니었다. y를 조건문 형식이 아닌 당위 명제라고 하자. 그러면 y에 대한 근거는 많지만 대표적으로 'y는 반드시 참이다'가 있다. 이것을 y'라고 하자. 그런데 이는 매우 정언명령적이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반드시 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추론은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왜냐하면 논리적 형식의 추론은 y'의 사실성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 없는 추론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전하지 않다고 하였으며 우리의 취지가 아니다. 싱겁지만 가치 판단에 대한 사실적 근거는 필연적인 사실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 즉, y'가 건전한 경우가 적어도 우리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y가 실제로 참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제성이라는 근거가 필요한데 가치와 실제성이 동치임을 충족할만한 건전한 근거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y가 참이라면 ~~' 따위의 조건은 실재성을 함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y에 대응하는 실재성이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문장에는 특정한 행위가 실제로 대응하는데(행위가 실재성이 아니라면 이 또한 모호한 경우이긴 하지만 조금 유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y, 특히 y의 '안 된다'에 무엇(적어도 어떠한 행위라도)이 대응하는지 판단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것'에 고유한 행위가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반박의 여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를 사건으로 대체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사람을 죽이는 모든 실제적 사건'과 대응시켜 이 난점을 타개할 수 있다. 중간에 깔끔하게 끝냈어야 했는데 글이 조금 지저분하게 됐다. 그 이유는 내가 논의에 대한 확실한 가닥을 잡고 글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글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감안하기 바란다. 어쨌든 조건 분석 말고는 y의 진릿값을 결정하기 어렵고 y에 대응하는 실제성을 판단할 수 없어 건전성 추론을 할 수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y가 어떠한 경우에도 필연적으로 참인지 알 수 없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대왕과 김정은, 누가 더 악한가? (0) | 2021.11.20 |
---|---|
인생이 망한다는 것에 대하여 (0) | 2021.11.20 |
원죄를 안고 낳음 당한 인생 (0) | 2021.11.20 |
S는 H와 섹스할 수 있을까? (0) | 2021.11.20 |
친구와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가? (0) | 2021.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