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8. 17:01ㆍ생각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맞은편에 앉은 여성을 바라본다(애초에 왜 바라보느냐는 병신 같은 지적은 잠시 뒤에 다루도록 한다.). 당시 상황은 여름으로, 그 여성은 노출이 대단한 상태였다고 하자. 남자의 시선을 느낀 여자는 기겁을 하며 남자에게 따져 묻는다. "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세요?" 남자는 항변한다. "어쩌다 보니 시선이..." 이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의 주장(생각)을 더 신뢰해야 하는가? 여성의 기분이 남자의 억울함(또는 시치미)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배려해 줘야 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남자의 주장은 어떠한 이유로 덜 중요시되어도 되는가? 우선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시선 강간의 의미를 따져본 후에,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에도 시선 강간이 성립하는지 알아보자.
위의 상황에서 남자는 여자를 확실히 보았는가? 어딜 보았는가?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본 것을 문제 삼는가, 자신의 노출 부위를 본 것을 문제 삼는가? 만약 자신의 노출 부위를 본 것이 문제라면, 시선이 얼마 동안 머물러야 그것을 시선 강간으로 결정짓는가? 그 시간의 기준은 모든 남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자신만의 일관된 준칙인가? 남성의 시선은 왜 또는 어떻게 여성을 기분 나쁘게 하는가? 여자는 남자의 시선이 머무른 불가피한 연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가? 혹시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의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오로지 개인의 기분의 문제인가?
노출 부위를 보는 것이 문제라면, 여자가 남자의 노출 부위를 보는 것도 문제시되어야 일관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 상황과 반대 상황의 경우는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 현실을 떠나서, 기존, 남자가 여자의 노출 부위를 보는 것이 반드시 문제시되는 것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노출 부위를 보는 행위'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당사자의 기분에 따라 문제 여부가 결정되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 기분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당사자의 주장으로부터 파악되는가? 그러면 그 주장은 주장자의 기분이 사실임을 보장하는가? 주장이 사실을 함축하지 않음을, 기본적인 논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따라서 근래 논란이 많은 '일관된 진술'에 대하여, 진술이 일관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술의 내용이 일관성에 의해 사실임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법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법은 증거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결정에 있어 진리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더 그럴듯한' 주장을 더 신뢰한다. 그러나 일관성이 '그럴듯함'을 반드시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보이는 점에서, 일관성 이외의 다른 결정적인 정당성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누군가는 일관되게 거짓 진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도 일관성은(또는 일관성 만으로는)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령, 두 일관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만약 다른 조건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일관된 진술 외의 다른 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상황 조건 파악은 상대적 진리를 탐색하는 과정이며, 누가 더 그럴듯한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판결의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본래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남자가 여자의 노출 부위를 7~10 초 정도 바라보았다는 정보 밖에는 주어진 것이 없다고 할 때(현실에서는 대화로 끝내겠지만, 이것이 법적 쟁투까지 가게 된다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논리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우리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남자의 과거 범죄 이력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남자의 범의를 추측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원인을 끌어오는 오류 추리이다. 적어도 논리학에서는 그렇다. 설령 남자의 과거 범행 이력이 성범죄라고 하더라도, 그 과거 사건과 작금의 문제시되는 사건은 독립적이다. 현실적으로는 두 사건을 다분히 연관 짓는 경향이 강하지만, 과거의 사실 된 사건이 그 자체만으로 현재의 미정인 사건(이 경우 정신적 사건)을 사실로 반드시 결정짓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를 동일한 형식의 다른 사례로 바꿔보면 다분히 이상한 논증임을 알 수 있는데, 가령 내가 과거에 축구부였던 적이 있고, 현재 내가 축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네가 과거에 축구부였다는 사실은 지금 네가 축구 선수라는 것을 반드시 결정짓는다"라고 하는 꼴과 같다. 분명히 내가 축구 선수인지 축구 선수가 아닌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반드시', '필연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법은 필연성을 따지지 않는다. 상대적 진리, 사건의 그럴듯함, 개연성을 논한다. 어쨌든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약 이 문제가 법적 싸움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억울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고 확실하게 문제가 결정되지 않았으며 특히 그것이 정신적인 영역의 문제일 경우, 문제 삼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만약 남자가 여성의 다리를 30초를 보았든, 음흉한 눈빛으로 보았든, 남자의 의도가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파악되기 어렵다면 문제를 삼지 않는 편이 낫다. 이 '낫다'가 사용된 맥락은 논의의 논리적 추론에 대한 지난함의 측면에서 나온 것이지, 실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수사(搜査)적인 기대에 의한 것은 아니다.
위협적 시선을 폭력이나 협박으로 해석하는 법적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음흉한 시선이 성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적절한 유추로 보이기도 한다. 위협적 시선 그 자체에 위협성이 반드시 내재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눈빛을 위협적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이 위협적이라는 점에서, 상황 조건을 문제 해석의 조건으로 끌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시선 강간 역시 이러한 견지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면, 여자는 남자를 시선 강간할 수 있는가? 당연히 논리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태무殆無할 상황으로 보이고, 만약 실제로 그러한 판례가 나오게 된다면, 여성계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장해를 안고 가야 되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의 건더기도 없는 사말些末로 치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이중성 전략은 어떤 집단의 전형적인 결과적 승리 쟁취 방식으로,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전략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즉 어떤 여성은 이러한 법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를 시선 강간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성범죄 피해자는 여성임이 분명하다.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해 준 세력은 기득권 층이고, 그들의 주는 남성이었으리라. 물론 남성이 여성의 인권을 보장해 준다는 말은 현대의 교육적 관점에서는 이단적이다. 애초에 누가 누굴 지배할 수는 없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실질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했다면, 남성 집단은 여성 집단을 그 피지배 상태로부터 해방시키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설령 여성이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날뛰었을지라도, 그 여론을 수용하여, 여성 해방을 결정하는 것은 남성 기득권이었으리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극단적인 예로 만약 지금 당장 남성과 여성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성은 여성을 일거에 말살할 수 있다. 힘의 논리와 평등한 인권이라는 개념은 양립 가능하며, 따라서 동시에 실현될 수 있다. 힘을 가진 자는 평등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으며 그 앞에서 평등이라는 한낱 이데올로기는 사념의 열편裂片에 불과하다. 어쨌든 작금의 헌법과 교육 정신, 시대정신, 인권 평등의 이데올로기의 강권强權 아래, 성범죄 판결에 있어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자임은 사실이다. 반대로 성범죄 시행에 있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자임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에 있어서까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범죄적으로 강자라고 간주하는 것은 매우 가혹해 보인다.
특정 남성에 비해 강한 여성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여성은 충분히 남성을 시선 강간할 수 있겠다. 가령 위협적인 성인 여성이 소아 남성을 음흉하게 응시하는 경우처럼. 시선 강간이 힘의 구도라는 맥락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시선 강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만약 시선 강간이 남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아 남성이 고령의 여성을 음흉하게 응시하는 것도 여성의 기분에 따라 시선 강간이 될 수 있다. 시선 강간에 나이 제한이 있는가? 시선 강간에 신체적 힘이 고려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시선 강간을 결정짓는 마땅한 기준이 없다. 작금의 시선 강간은 시선을 받는 (여)자의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 듯 보인다. 물론 여성의 음흉한 시선을 받는 남자의 기분은 예외이다. 여자가 시선 강간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시선 강간으로 채택되는 일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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