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29
- 상남자여도 애 같은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는 진정한 알파메일이 아니다. 꼭 보면 철없는 짓을 한다. 내 친구 중에도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절대 안 밀리는 애가 있다. 사회생활도 많이 해서 처세도 좋다. 그런데 그에게서 내유외강적인 면이 많이 포착된다. 알파메일에게 높은 책임감은 필연적으로 갖춰져야 할 이상적 면모다. 자기 행위에 책임감 있는 남자는 베타적이지 않다. 내유외강은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작태다. 따라서 그러한 자를 진정한 알파메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응수하며 벌이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특권적 관객들이다. - 카뮈
-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권태는 의식을 깨워 일으키며 그에 뒤따르는 과정을 야기한다. 뒤따르는 과정이란 아무 생각 없이 생활의 연쇄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결정적인 각성일 수도 있다. 각성 끝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은 자살일 수도 있고 원상 복귀일 수도 있다. 권태 그 자체는 어딘가 좀 메스꺼운 데가 있다. 여기서 나는 이 권태가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겠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해 시작되며, 그 어떤 것도 의식을 통해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전혀 독창적일 것이 없지만 명백하다. 부조리의 기원을 간략하게 인식해 보는 기회는 당분간 이것으로 충분하다. 단순한 '관심'이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다. - 카뮈
- 자식의 죽음이 서러운 이유는 자식에게 많은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식의 죽음은 사실 아까움이기도 하고, 내 노력의 증명이 소실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아이를 잃어본 경험은 없지만 내가 들인 공이 완전히 멸실할 위기를 느낀 경험은 있다. 블로그에 담긴 몇 년간의 나의 생각의 집적이 유실될 위기는 아마 아이에게 들인 공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과 유사하리라. 사실 내 생각이란 것도 즉발과 창발, 휘발을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무망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한다. 내 생각이 집적된 포털이 사라지는 것보다 내 생각이 담긴 신체가 소거되는 것이 더 극적으로 느껴져야 할 터. 그보다 더 절박하게 느껴야 할 것은 순간순간의 지식의 입력이 그 순간성의 위력에 의해 순간적으로 휘발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영구적이지 않고, 내용물의 담지가 항구적이지 않다면 밑 빠진 독의 인생에 목을 맬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 지우학 드라마의 옥에 티는, 좀비가 급식실 강화유리는 쉽게 깨면서 교실 일반 유리창은 가만히 놔둔다는 점이다. 억지도 정도껏이지 원...
- 어렸을 땐 유명인을 본 내가 대단한 줄 착각했다. 그래서 항상 호들갑 떨고 흥분했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나름 유명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스펙을 가족에게 호들갑 떨면서 얘기했었다. '이런 사람도 있더라!!!' 하며. 내가 잘난 것도 아닌데, 그들이 나와 밀접하게 관계 맺는 것도 아닌데, 단지 신기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어야 했을까?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다. 보조 출연 알바를 하며 누구 연예인을 만졌다느니, 손 안 씻는다느니 하며 영광스러움을 느끼며 호들갑 떠는 이들도 허다하다. 고작 보출이나 하는 주제에 어쩌다가 접촉할 일이 생겼다고 그걸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내며 자랑할 만큼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기 가치를 깎아먹으면 깎아먹었지. 물론 보출 할 위인이 깎아먹을 가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 진화는 개체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집단에 일어나는 구조적 메커니즘
- '우리 서로 믿는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하자' - 좀비에 물렸을지도 모르는 경수를 녹음실에 들여보내 좀비로 변하는지 확인하는 상황에서 (지우학)
- 청산이 엄마의 지능은 왜 이렇게 낮은가? 경수가 정말 멀쩡하고 태연하게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고 경수를 다급하게 부르는 것인가? 왜 상식적이지 않은 연출로 시청자를 화나게 만드는가?
- 분뇨는 창문 밖에다가 싸질러 그냥.. 아니 저 상황에 무슨 칸막이? 극중 밖에다가 싸자는'대수'가 가장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머지 아이들이 대수를 이상한 놈으로 몰아가는 꼴을 보자니, 내가 몰상식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절대다수의 지성인은 대수와 같은 판단을 할 것이다. 도대체 작가는 그 신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환란의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고아함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를,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건 것인가?
- 은지는 그 상황에서 누가 핸드폰을 쓴다고(핸드폰을 망가뜨려서 얻을 이익이 뭐라고) 일일이 다 부수냐?
- 왜, 과학실 간다고 밧줄 타고 올라가는 온조 치마 속을 쳐다보는 수혁이의 상식적인 행동은 놔뒀냐?
- 상식적인 서울대생 호철이는 왜 포대기에 싸인 애를 보고 질겁을 하냐?
- 임시 수용소에서 밥 받는 아재는 뭔 돈가스를 못 먹는다고 항의를 하냐?
- 그 절차 때문에 사람 못 구한 적이 너무 많아요 - 온조 애비
- 너희 엄빠를 좀비가 죽인 거지 남라가 죽인 건 아니지 않나 지민아? 설령 남라가 좀비가 된다고 한들 지민이 부모를 죽인 좀비와 남라가 되는 좀비가 질적으로 다른 좀비일 수 있는데 둘을 같은 좀비 취급하는 건 섣부르지 않을까?
- 좌시백 변호사 님 그렇게 품으면 애 질식하겠어요..
- 아니, 진짜 소리 듣고 달려드는 애들한테 연막탄을 왜 뿌리는 거야? 작가 진짜 지능이 달리나?
- 남라 주위에 교란음이 얼마나 많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 먼 거리와 수많은 벽을 통과하는 오바이트 소리를 들은 걸까? 억지도 정도껏.. 하긴 개도 수 km 밖의 냄새를 그 많은 섞인 냄새를 뚫고 선별적으로 맡는다지 않는가.
- 싫어하는 것도 전염되고 믿는 것도 전염된대 - 백제 온조 왕
- 희망은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고문이다 - 병찬
- 가장 이해 안 되는 행동은 온조 아빠의 자폐自斃. 그걸 목전에서 목도한 온조는 극도의 충격으로 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왕 개판된 거, 온조를 주저앉게 만든 뒤에 청산이나 수혁이가 들쳐매고 가는 연출을 했으면 나았겠다.
- 남라는 왜 배고픈데 좀비나 먹지 애들 옆에서 인내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