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斷想 9

.,_ 2023. 1. 25. 21:08

- 근육은 찢김 없이 생성되지 않는다. 멘탈과 인생도 그렇다.

- 50대 여자도 설렘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본질을 목표하다 보면 잡념은 소거되리라.

- 여자가 안 외롭고 싶어서 남자친구가 끊이지 않게 하는 건 괜찮고, 남자가 여자 많이 만나고 싶어서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건 안 괜찮은가? 둘 다 욕구에 의한 전략을 취한다는 사실은 동일한데, 다른 점은 여자에게 더 관대하다는 것.

- 전능한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전능한 존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이 문장은 거짓이다

- 목표는 만병의 근원이다. - 웹툰 꿈의 기업

- '엄한 데'는 "네 이놈!" 하고 호령하는 사또가 기거하는 곳인가? 왜 이렇게 애먼 데와 엄한 데를 혼동하는지들...

- 작은 키가 큰 키의 필요조건이듯이 악은 선의 필요조건이다. 단 이는 존재론적으로 그렇지, 의미론적으론 아니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 비해 후자의 경우는 덜 비교적이다.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라면 악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반면 큰 키는 작은 키 없이 그 자체로 크다고 할 수 없다. 오직 180cm인 사람만 존재하는 경우 그들이 큰 키를 가졌다는 사실은 무엇에 비해 큰 키를 가졌다는 뜻을 내포하지 않고 단지 '큰' 키를 가졌다는 지시적 의미만 내포한다.

선한 행위는 악한 행위와 구분되지 않고 그 자체로 선할 수 있다. 한데 선한 행위가 선하지 않은 행위와 구분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선한 행위로부터 어떠한 좋음이나 좋지 않음을 이끌어 내야 하(낼 수 있)는가?

- 하고 싶은 일이라면 끝까지 밀어붙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해야 하는 일인 군대는 버티지 못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라도 금방 성과가 나지 않으면 싫증이 나서 빠르게 포기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곧잘 한다. 그 친구가 나에게 의지 지적을 하는 것에 나는 별다른 진지한 대응을 하고 싶지 않다.

억지로 해야 하는 게 더 버티기 쉬운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버티기 쉬운지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 누가 더 의지력이 낫느니 비교하는 건 어리석다.

- 남자의 대부분의 좆 됨은 여자의 폭로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여자를 자극하는 짓은 매우 어리석은 작태다.

- 잠자는 숲속의 공주 문제, "공주는 왕자의 키스를 원했을까?"

: 공주가 키스하고 싶었는지 아닌지의 의사 여부는 잠들기 전에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동의도 없이 상대의 신체를 강제하지 않아야 한다면, 오직 신체 접촉을 통해서만 깨어날 수 있는 공주의 동의를 받을 수 없으므로 공주는 영원히 잠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요지는 이야기 내부에 있지 않다.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구성한 작가의 의도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즉, 공주를 깨우기 위해 굳이 남자의 비동의 신체 접촉이라는 장치를 넣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의사 없는 자에게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 느껴져서 그랬을까? 그냥 그 시대 로맨스 혹은 기사물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가 싶다. 고전 작품의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편향된 정치 이념에 과몰입하여 이현령비현령 식의 억지 해석과 비평을 하는 작태는 그리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 보통의 여성과 잘 대화하기 위해서는 뇌를 빼고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와 골치 아픈 논리력 대결을 하려고 하지 말라.

- 도태남은 여성의 까다로움의 희생자다.

- 여자가 남자를 지인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여자가 그 남자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즉 남자가 섹시하지 않다는 뜻이다. 남자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자기가 갖지 왜 남에게 준다고 하겠는가? 남자가 착한 것 말고는 별 볼일 없다는 방증이다. 성 시장에서 남자에게 가장 박한 평가는 착하다는 평가다. 그건 칭찬이라기보다는 맥이는 거다.

- 까다롭게 보려고 하지 않다 보면 진짜 눈썰미가 없어진다.

- 남자의 능력은 여자의 충절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나 젖게 하지는 못한다.

-남성의 리얼돌 사용은 강간 연습, 여성의 딜도 사용은 반려 기구 사용 : 이러한 내로남불이 가능한 이유는 남자가 과거에 잘못해 온 것을 바로잡는 과정의 일환이어서라기보다는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리얼돌이 겁간 연습용 인형이라는 여성계의 주장은 다소 극단적인데 남녀가 바뀌었다면 여성을 뭘로 보느냐며 아주 난리가 났을 주장이다. 여성의 자위는 성스럽게 여겨져 딜도도 반려 기구라고 불리는 지경.

- 둘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면 둘을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 고통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무의미는 안 좋은 것만도 아니다.

- 목표는 만병의 근원이지만 목표 없는 삶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 극적 감정 상태에 나를 지속적으로 놓아 무뎌지게 해서 삶의 고통을 억지로 감쇠시키는 연습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 "나는 유혹을 제외하고 어떤 것도 다 저항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린다. 일부러 그렇게 느껴지게 의도한 것이리라. 저항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유혹이라면, 유혹을 제외하고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다는 역설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저항할 수 없는 게 애초에 유혹이니, 우리가 저항하지 못한다면 그건 다 유혹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떠한 것에도 저항할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즉, 저항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유혹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저항할 수 없음과 유혹이 필요충분 관계이더라도 유혹이 아닌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역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헷갈리니까 쉽게 생각해 보자

1. 저항할 수 있는 유혹인 것

2. 저항할 수 있는 유혹 아닌 것

3.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인 것

4. 저항할 수 없는 유혹 아닌 것

1과 3은 오스카 와일드의 주장이 조건문인지 연언문인지에 따라 반례가 될 수도 중립일 수도 있다. 2는 오스카의 주장을 입증한다. 4는 오스카의 주장에 중립이다.

- 관계에서 오는 문제는 방법론적 접근도 물론 중요하지만 애초에 하드웨어가 건실해야 한다. 전자가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거나 공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거라면, 후자는 공격을 받았을 때 버티는 힘이다. 즉, 소셜 스킬로 관계적 트러블 자체를 초장부터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고통을 받아 내야 하는 경우에는 강한 멘탈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강한 멘탈은 인간 연습을 통해 길러진다.

- 그 어떤 것에서도 연습이 필요치 않은 게 없다. 관계에도 인간 연습이 필요하듯이, 말에는 말 연습이, 글에는 글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 위로와 공감으로 여자가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여자는 심리학자에게 흥분하지 않는다. 여자는 당신에게 위로받고 성적으로 끌리는 다른 남자의 정액을 받는다.

- 여자는 조건 없이 자연 그대로 남자와 붙으면 필패한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의 배려 없이 존립하기란 매우 어렵다. 변화와 수정을 반복하며 자리 잡은 사회 제도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를 위함이 더 크다. 여자는 약자다. 만약 여자가 조건 없이 남자를 이길 수 있다면 남자에게 자신들을 배려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