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 씨의 인생
나은 씨는 서울, xx 동의 복잡하게 붐비는 역 부근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풀타임으로 하며, 간당간당하게 인생을 견뎌나가는 가긍可矜한 백조다. 프리터의 삶이 그 자체로 가여운 것은 아니지만, 나은 씨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잘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자신의 삶에 내린 진단이다. 나은 씨는 오늘도 일을 나간다. 여느 식당 아르바이트가 그러하듯이, 구직자에게 특별한 능력을 요하지는 않고, 단지 분주하고 신속한 움직임과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임기응변식 대처, 그리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에 대한 인내를 요구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나은 씨는 왜 그것이 특별한 능력이 아닌지 초반에는 의심스러웠으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숙달에 의해 언젠가는 도달할 경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도의 능력이라는 점에서, 일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된 요즘, 그 의심을 철회했다.
요즘 나은 씨는 낙백落魄하여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이는 기징奇徵은 아니나, 혹시 모를 정서적 곤란에 대비하여 기찰譏察할 만한 일인 것은 자명해 보인다. 사실 나은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녹명祿命에 대한 회의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도 이대로 흘러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슴 안쪽 깊숙이부터 온몸을 잠식하는 듯하다. 나은 씨는 20대 후반을 맞고도 변변찮은 스펙이 없어 아르바이트나 전전해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허명虛名을 좇던 젊은 날의 희념希念을 이제는 회한으로 돌아본다. 절급한 자신의 상황에 현명한 단안斷案은 어쩌면 무리인 것이다. 마음이 쓰리고, 항상 불안에 휩싸여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이불 속에서 고독을 삼킨다. 혼자 살면서 친구를 만나는 성격도 아닌, 애초에 만날 친구도 없는 나은 씨에게 고뇌에 최적의 조건인 현재의 상황은 더욱 나은 씨를 정서적으로 압박한다. 네 인생을 돌아보는 과정은 충분히 거쳤으니 앞으로의 미래를 도모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신속 현명하게 결정하여 실행하고 인내하라는 내면의 종용에 나은 씨는 둔사遁辭로 대응하고 이전처럼 똑같이 울칩鬱蟄하고 만다. 그런 나은 씨의 모습을 보자면, 꼭 등사等死하는 자포자기한 자를 연상케 한다. 누가, 혹은 무엇이 나은 씨를 세상으로부터 숨어들게 만들었는가? 나은 씨의 외모에 대한 사회의 조롱과 비난 때문일까? 나은 씨는 이에 인정한다. 자신의 능력 없음은 과거의 불가피한 상황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인가? 나은 씨는 이에도 인정한다. 그러면 앞으로 나은 씨의 인생이 행복해질 가망성은 낮은가? 나은 씨는 역시 이에도 인정하고는 다신 그런 건 묻지 말아 달라고 정촉叮囑한다. 그냥 자신은 그렇게 살겠단다. 나은 씨는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자신의 불만을 타인에게 표출한다. 연예 기사를 본다. 자신과 성명이 같고 나이도 비슷하나 외양이 현격히 다른, 우월한 연예인 나은 씨에 관련한 기사를 본다. 나은 씨가 그룹 내 따돌림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다는 기사다. 확증은 없으나 이미 여론은 기정사실화 한 모양이다. 나은 씨는 나은 씨에 대한 비난에 동참한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기분에 따르면, 한 명이라도 자신과 같은 처지를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분한 채로 비난성 댓글을 다는 와중에도, 나은 씨는 나은 씨가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져 봐야, 자신 보다 더 못한 인생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적어도 연예인 나은 씨는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걱정도 없고, 물론 그동안의 인기와 지지가 한 번에 식었다는 상실감은 클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것이고, 그럼에도 아직도 그녀에 대한 지지자가 많이 남았다는 사실은 나은 씨의 추락에 대한 회복 탄력을 보강할 것이리라는 생각에 자신의 비난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각지하고는 나은 씨는 자신의 행위를 중단한다. 나은 씨는 왜 지금 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은 씨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나은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신의 이름에서 착안한 언어유희이지만, 그 안에서 나은 씨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왜 나는 더 나은 인생만을 추구하며, 이 나은 인생을 살지 못했는가? 나은 씨는 눈물을 흘린다. 나은 씨는 매양每樣 나은 삶을 살 수 있었고, 살고 있기도 했다. 어쩌면 나은 씨의 나은 인생이란 면부득免不得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은 씨에게 이 나은 인생이란, 삶의 주체와 그 삶 자체가 필연적으로 결부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거부하고 외면했었다. 왜 더 나았어야 했을까, 이 나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외면하여 지나친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 왜 나는 망살忙殺한다는 핑계로 이미 가졌던 것을 망살亡殺했을까, 나은 씨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상비傷悲하여, 누운 채로 수루垂淚하며 천장을 망연히 응시하다가, 일어서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은 씨는 곧장 자신이 일하는 업장에 연락하여 퇴사를 통보하고는,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일주일의 유예를 두겠다고 제안한다. 나은 씨는 떠나고자 한다. 진부할지도 모르는 결론이지만, 나은 씨는 이 나은 나날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살게 해주려고 한다. 오늘은 나은 씨가 막연한 더 나은 속박에서 해금되어 이 나은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선택한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