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20대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3Bo081qpoIM
[영상 요약]
1. 나를 탐구하라. 끊임없이 시도하되 절제하라.
2. 조급해하지 마라.
3. 나를 평가절하하지 마라.
20대에 저지르는 가장 큰 과오는 조급함이다. 인생은 길다. 20대의 잘못된 선택이 인생의 회복 불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방황도 제대로 해야 한다. 나를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지인知人.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이대에 맞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나를 알기 위해 방황하는 시간이 아까워 조급하지 마라. 조급해서 내린 잘못된 선택이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다. 한 번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후기]
요약이 짧기 때문에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생각을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나에 대한 탐구를 과정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지 결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우선 동영상의 화자는 이렇게 구분하지는 않았고, 필자의 접근 방식이다.
1. 과정만 좋다.
2. 결과만 좋다.
3. 결과에 따라 과정의 호불호 여부가 결정된다.
1을 먼저 살펴보자. 나를 탐구하는 과정만 좋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예시가 시급하다. 나를 예로 들자. 20대 후반인 내가 지금부터 나를 찾기 위해 조급함을 떨친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고자 한다고 하자. 우선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 후 다양한 형태의 일을 접할 것이고, 다양한 자기계발을 할 것이고, 다양한 취미 생활도 할 것이다. 통틀어 다양한 경험인데 그 수많은 경험들을 할 때마다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렇게 인생의 후반부에 마땅한 결과 없이 도달한다고 하자. 경험에서의 다양한 깨달음은 이미 과정의 좋음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도대체 '마땅한 결과'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결과인가? 아니다.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서 시작한 여정이므로 이미 원하고 있었다는 가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과정 이후에 결과 지어지는 순간에 그것이 결과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 결과에 좋음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가 마땅하지 않은 결과의 상태이다. 논지를 전개하다 보니 2까지 같이 논의되는데, 내가 결과를 부여함이 마땅한 결과와 마땅하지 않은 결과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나의 탐구에서 나의 결과는 내가 결정짓는 것이라는 것은 그리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닌듯싶다. 어쨌든 우리는 과정만 좋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고, 과정이 좋지 않았지만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과정과 결과가 무엇인가? 경계도 모호할뿐더러 나는 개인적으로 허상 같다. 매우 주관적인 가치 부여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앞의 1과 2의 선택지는 파기한다. 3은 어떤가? 철저한 결과주의적 사고다. 대미의 법칙같이, 끝이 좋으니까 전반적으로 그 이전도 좋았다고 느낀다. 일종의 착각이다. 끝 이전의 여러 시점에서 한 경험은 끝의 경험이 배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결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편향성이 심각한 오류적 사고인지 크게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이전보다는 이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 결과주의는 인간에게 적합한 심리 오류인 것 같다. 이에 나는 이렇게 결론짓겠다. 과정을 더 중시하되, 그 안에서 결과를 판단하는 빈도를 높이겠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의 조급함에 대한 방증이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조급함 때문에 수험생활을 청산하고 이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더 이상 가망 없는 내 수험 생활에, 내 썩어빠진 정신 상태에 베팅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지 불과 두 달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태생부터 어떤 것에 대해 빠른 성과를 내는 것을 원했다. 그렇지만 빨리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빨리 성과가 나지 않는 것에 몰두하고 그 안에서의 실패로 좌절하는 것이 오랫동안 누적되었다. 자기효능감은 바닥을 찍게 되고 뭔가에 시도 자체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일상의 반복되는 사건에 무감각해진 것과 더불어 조금만 변동적인 사건을 접하면 심각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람 자체가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다. 내 20대 후반의 대학 진학 포기라는 선택은 조급함에 의한 것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장수생이 다 내려놓고 마지못해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나는 아직 선택이란 것에 있어 막중함이라든가 선택지의 적음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어찌 보면 미래의 넓은 가능성을 그린다는 것이 어떠한 태도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난 공부를 완전히 머릿속에서 비우지 못했다. 학자의 생보다 학자로서 인정받는 것을 더 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학위를 아직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지금까지의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 내가 정말 학자가 되고 싶었는지 그때 재고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는 있는데,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인지 학문에 대한 흥미는 여전하다. 이 블로그의 글들을 보라. 괴짜처럼 주제를 벗어나서 이상한 탐구를 하고 있다. 내가 제도권 교육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방향을 바로잡고 더 좋은 나아감을 실현할 텐데.. 언제쯤 정신 차릴까. 그래서 다양한 경험과 그로부터 얻는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난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괜히 남이랑 비교해서 남에 비해 나에게 남은 시간이 적다고 느껴지는 거지 기준을 달리 설정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를 평가절하하지 않는 태도 역시 어려운 것이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겠느뇨?"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짚고 넘어가자. 믿어져서 믿는가, 믿어서 믿어지는가? 나라는 종자가 대단하다고 믿어져서 결과적으로 믿는 것인가, 대단하다고 믿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러하다고 믿어지는 것인가? 전자는 덜 엄밀한 인식론적 입장에서, 외계의 사건을 인지하고, 오직 나의 사고에서 독립적으로 먼저 생성한 것이 아니라, 인지물을 토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이는가이다. 후자는 오직 나의 사고에서 독립적으로 먼저 어떠한 관념을 만들어서 개체나 관념 따위에 자격 부여를 실시하여 정신적인 결과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무엇을 채택하든, 둘 다 선택하든 개인의 자유이다. 후자 같은 자기암시는 잘 먹히기만 한다면 꽤나 효율적이다. 내가 외적으로 잘날 조건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으로 따지면 초기 투자가 적은 사업이다. 물론 정신과 물질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외계를 통제할 수 없다면 통제 가능한 내계를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시작은 후자로 선택하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노력하여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면 그제서야 '믿어짐'을 먼저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믿어져서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믿어서야 믿어지는 경지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종교인은 전자에 해당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믿어지는 계기 없이 오직 믿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으로는 발현되기 힘든 접근 방식이다. 돌아가서, 나를 평가절하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마음으로 '나는 찌질이가 아니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쉽게 그러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든가 애초에 그것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 발현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복합적으로 접근하되 매 순간마다 자신의 선택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에 대해 짚어보자. 관점에 따라 다른데, 인과적으로는 봤을 때 어느 부분에선 맞고 맞지 않기도 하다. 한 번의 특정한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 이후 변동될 선택을 할 사건을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이미 내린 선택은 바뀌지 않는 선택이기 때문에 평생을 통틀어 인생이 좌우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좌우된다'라는 단어의 어감과 사용 맥락이 논리적 인과성의 측면에서 엄밀한 지시를 한다기에는 다소 무류의 소지가 없다. 반면에 한 번의 선택을 선택의 변동성 측면에서 봤을 때, 매 선택마다 그에 맞는 미래가 펼쳐지므로 단지 한 번의 선택으로 고정되는 미래는 없다. 오히려 아무 선택을 하지 않거나,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한다면 (심리적인 관점에서) 그만큼 우리는 한정된 선택지 내에 갇혀버리게 된다. 20대면 젊다. 빚이 산더미라 나를 찾을 여유도 없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잠깐 멈춰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점검해보자. 영원히 찾지 못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가능성의 영원한 잠성만 가정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은 인간 탐구, 개척 정신에 반하지 않는가. 고인 물보단 흐르는 물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