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김정은, 누가 더 악한가?
세종대왕의 성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로서의 세종대왕의 독재 행위는 그 자체로 악행이므로 세종을 악한 자라고 간주해야 하느냐는 의문에서 이 발제가 나왔다. 세종대왕의 독재가 나쁘다고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김정은의 독재를 나쁘다고 할 수 없어야 하는가? 우선 세습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쁜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만약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다면 세종대왕과 김정은의 독재는 똑같이 나쁘다. 그런데 직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는 독재가 그 자체의 나쁨보다는 주변 상황과의 연관에 의해 판단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지 않고 상황 의존적이라면 세종대왕의 독재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용인할 만하고, 김정은의 독재도 마찬가지로 시대적 상황에 의존하여 윤허되지 않는다면, 독재 자체의 선악성은 가변적이거나 아예 없다. 주변의 다수의 국가가 민주정을 채택한다는 사실에 의존하여 독재정이 나빠지고, 다수의 주변국이 독재정이라는 사실에 의존하여 독재정이 용인되는 상황 의존적 가치판단은 물론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김정은의 독재는 그 자체로는 악하지 않다. 이 글에서 나는 김정은이 세종대왕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낼 것이다.
논의에 앞서 우리는 여러 기준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선악의 기준이라든가,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면 독재가 용인되는 시점이라든가, 어떤 근거로 민주정이 그 자체로 옳은 체제인지라든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악한 군주는 세습 독재자보다 어떠한 이유로 덜 나쁘다라든가 말이다. 간단하게 선군이라고 추앙받는 세종과 악인이라고 평가되는 김정은을 비교하자. 두 인물이 존재하는 시대적 배경은 알다시피 다르다. 일반적으로 세종대왕 통치 시기에는 독재가 아닌 나라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주변국 대다수가 민주국가라고 할지라도 교류의 어려움이나 일반적인 조선의 폐쇄성 때문에 다른 국가의 정치 체제가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는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는 것처럼,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예외 없이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간주하자. 물론 김정은이라고 개인의 의지만으로 현 지배체제를 전환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의 경우보다 비교적 체제 전환이 용이하다고 가정하자. 이는 국제 정세로 미루어 보아 주변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수월하고 정권에 대한 내분이나 피의 쟁투가 조선에 비해 덜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 또한 전제하자.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세종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우리의 논의가 심한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쁜지에 대한 기준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다면 독재를 용인한다는 측면에서 세종과 김정은은 똑같이 나쁘고,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면 그러한 유동적인 의미에서 또한 세종과 김정은은 똑같이 나쁘거나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다면, 독재의 나쁨의 정도의 차이가 설령 있을지라도, 최소한의 나쁜 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세종대왕과 김정은은 반드시 악하다.
먼저 세종대왕이 김정은보다 덜 악할 수 있음을 밝히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는가? 사람 자체의 성품, 업적, 국정 결과, 청렴도, 능력, 시민으로부터의 존경 등의 요소는 부차적이다. 이 요소들이 극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독재자의 악성 그 자체를 논리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덮을 수는 있는데, 일례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업적만으로도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의 요소는 남아있기 때문에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다면 세종대왕은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독재자가 아닌 한 반드시 나쁘다.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다면 독재자는 반드시 악하고,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면 독재자는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다. 전자에 따르면 세종과 김정은을 포함한 모든 독재자는 반드시 악하고, 후자에 따르면 세종과 김정은을 포함한 모든 독재자는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독재자가 '악함의 속성(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악하다고 '평가' 받지는 않는다면 나의 시도는 실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악은 다소 평가 의존적인데, 아무도 세종을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종이 악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간주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론은 독재가 굳이 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근거로 타당하게 성립할 수 있다. 독재와 악성을 동치로 간주하지 않고, '독재 = 독재, 악 = 악'이라고 더 항진적이고 공리적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과 김정은은 반드시 독재성을 갖지만, 악성을 갖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고정되고 일관된 기준으로 세종이나 김정은을 악하거나 악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나마 남아있던 악성의 근거가 멸실되었으므로 우리는 새로운 평가 기준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악성이 평가 의존적이라면 현시대의 평가 기준으로 김정은은 높은 확률로 세종대왕보다 더 악하다. 하지만 세종대왕 시기의 평가 기준으로 김정은은 세종대왕보다 덜 악할 수 있다. 이는 직관에 반하는 매우 이상한 가정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가능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불어 현대의 기준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의 독재 국가에서 김정은은 그들의 지도자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악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김정은은 시대나 지역, 즉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더 악하거나 덜 악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김정은이 그 자체로 악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선악의 평가는 특정한 행위로 인하여 적용된다. 즉 살인이나, 남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착취하는 등의 특정한 행동을 통해 악성을 도출한다. 이는 다분히 상황 의존적임과 동시에 행위 의존적이다. 악으로부터 악을 도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악 그 자체라고 할만한 것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악 그 자체에 대한 규약을 하지 않는 이상, 현재 시점에서 악 그 자체를 지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악은 행위나 생각에 대한 상황 의존적 평가임을 양지하도록 하자. 특정 시점에 세종대왕이 김정은보다 덜 악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시점에 김정은이 세종대왕보다 덜 악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 분리적인 판단은 시점에 따라서 그 평가 대상의 상황을 설명한다. 시점 총체적 관점에서 세종대왕과 김정은의 악성을 종합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가령 김정은이 특정한 시점 t1에 세종대왕보다 더 악하고, 시점 t2에 세종대왕보다 덜 악하다면 시점 구간 t1 - t2에 김정은은 세종대왕보다 더 악하면서 덜 악하다(더악 ∧ ~더악). 사실 시제 논리가 개입하는 것이 엄밀하지 않지만, 방편적 비교에 불가피하게 차용 가능하다면, 김정은과 세종대왕은 t1 - t2에 시점 총체적으로 더 악하면서 덜 악하다. 물론 이는 김정은이 악해야 가능한 판단이지만, 이 경우는 김정은에 대해 이미 평가된 악성을 평가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판단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박정희의 독재만을 두고 그것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재자가 악하기 위해서는 독재가 악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인데(독재자가 '독재'만으로는 악할 수 없다는 뜻이지 다른 이유로 악할 수는 있다.), 나는 독재 그 자체를 악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의적으로 특정 개념에 가치 부여를 할 수 있고 어떤 행동을 평가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느낄 수는 있지만 '악성' 그 자체가 너무 모호하고 실체가 없고 무규약적이어서, 아무리 그것이 범 감각적이고 상례적으로 통용되는 상식 일반이라고 할지라도, 자신 있게 어떠한 의심도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독재가 매우 높은 확률로 다수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독재의 결과,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합하지 못하는 의사 결정 방식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독재의 결과가 좋거나, 다수의 의사를 결집할 수 있거나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독재 체제는 악하다고 평가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의사 결집'은 독재의 의미에 반하므로 애초에 그것은 독재가 아니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꼭 형태에 국한될 이유는 없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투표자의 41%만 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투표자의 41%이지만, 전 국민의 1/4이다. 만약 나머지 3/4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거나 대통령의 국정에 반감을 가진다면 이를 민주적으로 의견이 수합되었다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법치가 이러한 의견 불균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법치의 모순이다. 민주적인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민주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형태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민주적이기는 하다. 여러 법률가와 정치가들이 최선의 방도라고 찾은 것이 현재의 민주주의이고, 절차적 정당성은 독재보다 공정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만약 독재자의 생각이 대다수 국민의 결집된 내용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대립과 분열로 점철된 현재의 민주주의의 모습보다 결과적으로 나아 보인다. 물론 이는 통치자와 다수 국민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절차적으로나 다른 여러 측면에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문단은 여담이었고, 독재가 그 자체로 나쁘지 않고 평가적, 상황 의존적이라면 김정은과 세종대왕은 동시에 특정 시점들의 구간에서 더 악하면서 덜 악하다. 따라서 특정 시점에 김정은은 세종대왕보다 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애매한 독재 개념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그렇다는 뜻이지, 다른 총체적인 판단에 의해 김정은이 세종대왕보다 언제나 악할 수 있다.
ps.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독재자이며 하나님이 독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악하다고 간주하지는 않는다. 가령 누군가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절대 뒤집어질 수 없지만, 일반적인 독재 군주와 시민의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전자는 필연적으로 정해진 불가항력의 경우이고, 후자는 그 관계가 언제든지 뒤집어질 가능성을 내포하므로 둘의 악성을 차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악성이 차등 적용되어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논리로 따지면 권력 구도를 절대 전복할 수 없는 필연적인 구조가 더 불합리하다고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는 관계 그 자체는 악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냥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신이 절대성을 내포한다면, 신은 그의 백성을 자신의 통치자로 내세울 수 있음이 필연적이다. 이는 절대성의 조건에 의함이다. 절대성은 '무조건'적으로 가능하다는 '조건'을 가진다. 이는 애초에 신과 그의 백성의 권력 구도의 불전복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독재를 떠나서, 어떤 행위나 평가를 매개하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은 다소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