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국 여자 아이돌은 왜 비키니를 입지 않는가?

.,_ 2021. 11. 20. 16:54

X : "비키니를 소화해내지 못하는 여자라면 성적 매력이 없다."

가령 주장 X를, '모든 여자는 비키니를 소화할 수 있다'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필자는 앞의 해석처럼 '소화'의 기준을 매우 유연하게 적용하지만 X의 의도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X가 '모든 여자는 비키니를 소화한다'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감상 어떠한 제한적인 기준이 내포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평생에 걸쳐 비키니를 한 번도 입지 않은 여자를 상정해보자. 그 여자는 비키니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비키니를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기회조차 없다. 단지 비키니를 입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 여자가 성적 매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가령 우리는 비키니를 입은 일본의 여자 아이돌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비키니를 입은 한국의 여자 아이돌을 접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한국의 성 보수성 때문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한국의 여자 아이돌 P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을 평생 보지 못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키니를 입은 일본의 여자 아이돌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비키니를 입지 않은 P에 대해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성적 매력이 비키니에만 귀속되는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키니를 소화하는 기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한국의 여자 아이돌도 이 기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신체의 부위 중에는 주로 가슴, 허리, 골반, 엉덩이가 있는데 이 모든 부위가 남성의 성적 판단 기준에 적절한 비율로 충족되지 않더라도 성적 매력이 반감될지언정 성적 매력이 없다고 치부될 수는 없다. 가령 P가 2차 성징 이전의 아동과 매우 흡사한 몸을 가졌다고 하자. P가 비키니 자태를 대중에 노출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P의 의복으로 둘러 싸인 신체 사이즈를 미루어 P의 비키니 착용 모습이 상상 가능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P가 비키니를 입는다면 소아의 비키니 착용이 연상된다는 것이 자명하다. P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남성의 무리를 가정하자. 이들이 P의 비키니 착용 모습을 상상하지 못한 채로 P를 좋아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글래머러스한 몸으로 승부를 보는 여성 아이돌이 있고 그에 대한 성적인 언사가 난립하는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성적 소비는 그 여성의 상상 가능한 나체의 성적 소비 또한 함축한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 이러한 점에서 반드시 그렇지는 아니하더라도 P에 대한 나체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물론 P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P의 상상 가능한 나체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하여, 후자가 의미 단위가 더 많기 때문에 외연은 더 적다. 즉 후자의 소비자가 전자의 소비자보다 더 적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P의 상상 가능한 나체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P를 성적으로 소비하지만, P를 성적으로 소비한다고 해서 P의 상상 가능한 나체를 성적으로 소비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필자는 바로 앞 문장의 전자의 집단을 논의의 대상으로 설정할 것이다. 이 전자의 집단을 PE라고 하자. PE는 P의 나체까지 상상하므로 P의 비키니 자태까지 상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물론 상식적이고 개연적인 추측에 의해 그렇다는 것이지 P의 나체를 상상한다면 P의 비키니 자태를 상상한다는 조건문이 성립된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P는 PE가 판단하는 X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PE가 P를 성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P가 X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PE는 P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하등의 하자가 없다. PE가 P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반드시 P의 비키니 자태로부터의 성적 충족이 수반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PE에게 P의 X 기준 충족과 불충족은 양립 가능하다. P의 비키니 착용으로부터의 성적 매력 없음은 PE의 P에 대한 성적 소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PE는 P가 평생 비키니를 착용하지 아니하더라도 P를 성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

설령 비키니를 입지 않아 비키니 자태로부터의 성적 매력을 판단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착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가령 일반적으로 여성은 팬티와 브래지어라는 속옷을 입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한 비키니 자태의 유추가 가능하다. 비키니와 속옷의 형태는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비키니를 꼭 입지 않더라도 속옷 자태로 비키니 자태를 상상해낼 수 있다. 일반적인 성관계 돌입 전에 여자가 속옷을 입은 모습을 판단자에게 노출하지 않는 이상 판단자는 웬만하면 여성의 속옷 차림을 볼 수 있으며 그로부터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나아가 그 여자가 비키니를 입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속옷은 자주 착용할 것이므로 굳이 비키니로부터의 성적 매력을 기대할 이유가 없다. 비키니와 속옷이 형태적으로 동치라고 간주하고 X에 의하면, 속옷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여자라면 성적 매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성적 매력의 판단은 성적 대상을 성적으로 해석하는 자의 판단에 달려있고, 비키니인지 속옷인지의 유무보다는 그 착물과 신체의 조화에 달려있다고 봄이 일응 합리적이다. 그래서 성적 매력이 없는 몸이 단지 속옷이나 비키니를 입었다고 하여 판단자로 하여금 높은 성적 가치 판단을 이끌어내지는 못할 수도 있고, 매력 있는 몸은 속옷이나 비키니의 착용이 아니더라도 판단자로 하여금 높은 성적 가치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고, 매력이 없는 몸과 속옷이나 비키니가 조화를 이루어 판단자로 하여금 높은 성적 가치 판단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아이돌이 비키니를 반드시 입어야 하는 그 어떠한 이유도 없고 비키니를 입는다고 더 성적으로 잘 소비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왜 다른 직군에 비해 아이돌이 덜 노출하느냐는 의문은 있다(더 노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피트니스 모델이나 폴 댄서, 체조 선수 등의 복장을 보면 그 직군에 맞는 복장 당위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체조선수가 굳이 사타구니가 드러나는 옷을 왜 입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스타킹을 신기 때문에 맨살이 기능적으로 맞는다는 주장은 기각된다. 내가 보기에는 형태적인 이유이다.). 어쨌든 그것은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의 복장 규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많은 여자 아이돌이 비키니를 입는 것 역시 업계의 관행처럼 행해지는 듯이 보인다. 메이저 아이돌인 미야와키 사쿠라도 일본에서는 비키니를 입지 않았는가? 그곳은 메이저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다 입나 보다. 어쨌든 그곳의 관행 역시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여자 아이돌 역시 미래의 비키니의 보편적 착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시기가 도래한다면 X가 적용되기 시작할 것이고 그에 대한 기준은 더 엄격해지고 구체적이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의 X의 판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여성은 대중의 인정으로부터 퇴출될 수 있다. 무관심이나 악플은 대중의 성적 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한 처벌이 될 것인데, X를 통과한 아이돌은 시기와 질투의 처벌을, X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돌은 놀림과 비난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성적 자본의 승리는 시기와 질투를 받더라도 추종심을 불러일으키고 성적으로 소비되는, X를 프리 패스한 아이돌에게 돌아갈 것이다.

비키니는 수치스러운 복장인가? 위의 논의에서처럼 비키니가 속옷과 형태적으로 동치로 취급될 수 있다면 비키니를 꺼릴 만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속옷의 노출은 꺼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수욕장에서 수치가 아닌 비키니라면, 그것이 무대 위에서도 수치스러워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 또한 없다. 물론 이러한 논리적인 이유를 떠나서, 아이돌이 비키니를 무대 위에서 입기를 꺼릴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에는 '비자발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해수욕장에서 비키니를 입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가 대중에 노출되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이는 자신의 신체가 자신이 봤을 때나 남이 보더라도 하자나 부끄러움이 없거나 적다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이다. 만약 어떤 걸그룹에게 무대에서 비키니를 입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자. 이에 걸그룹의 멤버 Q는 자신의 성적 가치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낀다. 가령 가슴이 타 멤버에 비해 빈약하여, 만약 비키니 착용 모습이 노출된다면 자신의 성적 자본의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이때 Q가 비키니를 착용하는 것은 비자발적인 행동이 된다. 명백하게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만약 여자 아이돌의 비키니 착용이 업계의 관행이 된 미래의 시점 t에 Q가 비키니 착용 제의를 받더라도 Q의 자율권은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비키니 착용을 거부하는 Q는 이때에 무언의 착용 압박이나 퇴출 압박을 받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여자 아이돌은 언제든 자신이 비키니를 착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해야 하며, 아이돌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선제된 인지 내용에 입각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여자 아이돌이 특별히 비키니를 입지 않는 이유도, 입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비키니를 입는 특별한 이유(생계형, 자발형, 섹스 어필형 등)는 있지만, '입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는 없다. 그리고 비키니를 입는 것이 업계의 관행도 아니므로, 일반적으로 현재 한국 여자 아이돌은 특별한 사유 없이 비키니를 입지 않는다.